내가 많이 하던 생각이었다. ‘거른다.’라는 것은 필터링한다는 의미이다. 누군가가 페미니즘이나 성 소수자에 대해 반감을 보일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거른다.
이 말은 ‘이 사람과는 인권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말자!’라고 생각해버리는 위험한 말이지만 나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페미니즘이나 인권에 관심이 없는 사람과 인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나를 지치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점점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과만 인권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하지만 10대 연구소에서 10대 페미니스트로 살아간다는 것에 관한 연구를 하며, 나는 페미니즘에 반감을 보인, 혹은 관심이 없다는 사람들을 인터뷰해야 했다. 내가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랬구나’, ‘왜 그렇게 느꼈어?’하고 그들이 더 말할 수 있도록 고개 끄덕이는 일은 나에게 무척 새로웠다. 솔직히 힘들기도 했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나 역시도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입시 외의 것을 생각할 수 없는 학교 안 분위기와 친구들 사이에서의 반응 등에 대해 들으며 왜 관심을 두지 못하는지, 혹은 왜 반감을 갖거나 가진 것처럼 행동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지만, 없는 것처럼 행동해야 했다는 친구도 있었다.
‘10대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은’의 키워드 중 하나는 ‘침묵의 교실’이다. 누구도 불평등과 폭력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친한 사람들과만 이야기하는, 침묵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어떻게 한 시간 동안 페미니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지? 라고 걱정한 사람들과 막상 이야기하고 나니 서로를 조금 이해한 기분이 들었고,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거른다’고 생각해온 사람들에 대해 ‘더 이야기해볼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전히 인권에 관해 생각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나에게 힘든 일이다. 반응이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나는 누군가를 ‘거른다’고 생각하지는 않게 되었다. 한 번 이야기를 꺼내면 대화를 하게 되고, 대화를 하면 서로를 조금 이해하게 되고, 서로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면 다시 이야기 꺼내기가 조금 더 쉬워지지 않을까? 그렇게 조금씩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