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시작한 시유공은 8월이 되어서야 첫 손님을 맞이했다. 같은 주소를 쓰고 있는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의 청소년운영위원회 '청나비'였다. 우리는 이웃인 청나비를 만나면서 우리가 서로의 기관에 대해서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알았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를 마치고 나자 같이 할 수 있는 일에 관해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우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할 수 있는 일도 많았고, 하고픈 일도 많았다. 우리가 지금 얼마나 바쁜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첫 만남은 어색했지만 서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 별도의 레크레이션 없이도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9월 6일 우리는 두 번째 손님 광주 삶디자인센터 청소년운영위원회 '삶디씨'를 맞이했다. 앞서 말한 청나비와의 만남에서는 어렵지 않게 가까워지고, 생각을 나눌 수 있었는데 삶디씨는 조금 달랐다. 청나비는 어디까지나 자주 마주치는 이웃이기때문에 여러가지 상상하기 쉬웠던 부분이 있었다. 누군가의 비유를 빌리자면 청나비는 이웃이고 삶디씨는 친척 관계이다. 얼핏 생각하기엔 이웃보단 친척이 가까울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웃이 친척보다 물리적 거리도 가깝고 자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친척은 방금 만든 따뜻한 음식을 나누기도 어렵고 눈이 펑펑 오는 날 마당 청소라는 추억을 공유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청나비를 만날 때보다 준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같이 무언가를 하자고 약속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라서.
사람과 말을 나누려면 밥을 함께 먹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하는 첫 일정으로 밥을 먹었다. 같이 손님을 맞이하는 오디세이하자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깊은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얼굴을 익힐 수 있었다. 저녁에는 오디세이가 준비한 서울 탐방이 있었지만, 얄궂은 하늘은 심술난 듯 비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오디세이 죽돌이 울상인 표정으로 보여준 보물찾기 종이가 준비한 시간을 말해줬다. 물거품이 된 우리의 일정은 너랑(시유공 5기)이 급하게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했던 레크레이션으로 대체를 했다. 그렇게 어색하고 반가운 낯선 감정의 첫날이 지나갔다.
다음 날 우리는 그동안 갈고 닦아온 하자투어를 진행했다. 우리가 하는 하자투어는 그동안 판돌들이 해왔던 하자투어와는 달리, 청소년이 처음 하자에 온 청소년을 위해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장소와 사용 방법을 간추려서 전달한다는 점이 의미 있다. 무더운 여름부터 준비하기 시작해 몇 달을 시유공 모두가 함께 고생하며 준비했던 투어의 첫 시작이기에 기분 좋은 긴장과 설렘이 있었다.
그러나 태풍의 영향으로 신청자들의 전날, 당일 취소가 줄을 이었다. 불가피한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하필이면 왜 오늘이었을까’ 하는 마음을 내심 지울 수가 없었다. 멀리서 온 우리의 친척마저 없었다면 헛헛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자투어를 진행하면서 곧 이들이 가까운 곳에 사는 이웃이 아닌 먼 곳에 사는 친척이라는 것을 다시 실감했다. 대본에 “이곳을 이용하시려면~”, “다음에는 미리 문의하시면~” 이라는 말이 많았는데, 이런 말들이 가까운 이웃인 청나비를 대상으로 했을 때는 유연하게 넘길 수 있었지만 삶디씨 앞에서는 어색한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투어 후 함께 밥을 먹고 이후 일정은 각자가 관심 있는 섹션을 참가하는 등 자율적으로 움직였다. 서밋에 참가한 모두가 함께 식사를 하는 모두의 식탁이후, 서밋 마지막 일정인 ‘간보기’를 참석했다.
'간보기'는 하자 내 춤 동아리들이 간만에 자신들의 기량을 보여주며 그간 약한 연결고리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보는 자리였다. 여기서 <선플 심사단>이라는 역할을 맡을 사람들이 필요했는데, 이들 중 대부분을 삶디씨가 맡아서 했다. 미라클이 당일 요청한 자리였는데 삶디씨는 흔쾌히 승낙했다. 만약 삶디씨가 없었더라면 몇 없는 선플심사단은 재미를 더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덕분에 성공적인 서밋 마무리가 가능했다.
모든 일정이 끝난 후 졸림을 이겨내며 우리는 리뷰를 했다. 생각해보니 이때 우리는 삶디씨와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2박 3일이라고 하지만 서밋 일정 외에 직접 우리가 나누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을 나누니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점들도 많았고, 마지막 일정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시간만 더 있으면 더 가까워지고 재미난 일을 같이할 수 있을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늘 친척을 보낼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반가운 듯 어색하면서도 떠날 때 아쉬운 사람들. 삶디씨도 처음 볼 때는 어색했지만 헤어질 때쯤 어색함이 풀려 헤어지기 아쉬운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삶디씨는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할 때 도움이 되었다.
친척은 이웃처럼 항상 옆에서 도움을 주고받기는 어렵지만, 언젠가 내가 고민이 있거나 이웃과 나누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기꺼이 품을 내어주는 그러한 존재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 서밋 때 그러한 친척을 만났다. 미리 추석을 맞이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