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15명으로 직조작업단이 출발했다. 사람들의 들고 남이 있었지만 매주 목요일 12시면 삼삼오오 밥을 먹기도 하고, 한시부터 넉넉히 네다섯 시까지는 제각기 작업을 하거나 공동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6월, 7월에는 카드직조, 고정잉아베틀 워크숍도 이어갔다. 이미 손작업의 재미를 느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작업단이 품는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물었다. 직조작업에 참여한 당신은 왜, 실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지.
비바
내 눈 앞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가 만들어낸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로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고 더 나아지는 선택을 하는 삶을 추구한다. 나는 요리할 줄도 모르고 글을 잘 써본 적도 없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행위는 내 분야가 아닌 줄 알았다. 그럼에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직조담요, 직조파우치, 직조 악세사리 등을 좋아하는 내가 그것들을 직접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듣고서다. 역시나 소질도 별로 없었고 만든 결과물이 맘에 들진 않았지만 직조를 시작하게 된 건 후회가 없다. 직조의 세상은 아는 것에 비해 훨씬 넓었다. 다양한 직조 기술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 만드는 사람들의 입장도 되어 보았다. 많지는 않지만 창의력을 키웠고 소비로 쉽게 얻는 대신 직접 생산해보는 경험을 얻게 되었다. 이쯤 되면 소질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창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여러 현대인 중 하나로서, 자급의 필요성과 삶의 재미를 얻은 결과물이 그 가치를 대신해준다.
재봉
안녕하세요 재봉이라고 합니다. 세달 전 하자센터와 직조작업단에 들어왔고 직조와 자급에 관심이 있어요.
어느 날 친구에게 직조작업단의 소개를 들었다. 바람 선선한 오후에 만나 가벼운 점심을 먹으며 인사를 나누고 볕 좋은 공간을 선택해 둘러앉아 도란도란 직조를 해보지 않겠냐고 하였다. 나는 평소에는 주어진 일을 하거나 그 일로 벌어들인 돈으로 내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저 소비할 뿐이었기에 창의적인 생각이나 활동을 거의하지 않았고 그래서 기대 반 걱정반이였다. 나의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을까.
직조잡업단에 참여하고 만든 첫 작품은 티코스터였다. 직사각의 형태로 실을 쌓아 올릴 뿐인데도 밑에 쪽은 촘촘하고 빼곡하게, 위에 쪽은 느슨하고 헐렁하게 완성되었다. 일부로 삐뚤빼뚤하게 만든 작품인 듯 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이기에 소중하고 뿌듯했다.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닌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내 손으로 직접 내가 사용할 물건을 만든다는 재미와 필요에서 더 나아가 그 과정에서 생기는 모든 것들에 대한 윤리적인가치도 내가 선택해야한다는 것이 분명 너무 중요한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느새 이번엔 무엇을 만들까라는 생각을 한다. 삐뚤빼뚤한 티코스터 하나가 어느 티코스터 보다 올곧게 보인다. 직조작업단은 어느새 나에게 빠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자야
하자센터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내며 자라온 자야입니다. 지금은 2019년 살림집 살리기 프로젝트매니저로 활동하고 있어요.
우리는 돈을 먹고 살 수 없다. 나는 돈을 쓰지 않고 내 힘으로 자급자족하고 싶었다. 그래서 직조작업단에 들어오게 되었다. 직조는 참 신기하고 재미있다. 하나의 아무 것도 아니던 실이 원단으로 탈바꿈 하는 것.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신경써야하는 직조. 실을 막 잡아당기지 않아도 어느새 면적이 줄어들어있거나, 가장자리가 잘 들어맞지 않는다거나, 색 조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주 다른 작품이 나온다. 모두가 다 다른 것을 만들어낸다. 세상에 같은 존재는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신기하다.
눈송이
작년 직조작업단 멤버로 발을 들여놓은 눈송이입니다. 벌써 햇수로 2년이 되어가고 있는 작업단에서 타피틀을 이용한 다양한 직조기술 그리고 최근엔 카드위빙과 고정잉아베틀을 경험하게 되었네요. 다양한 도구의 직조 방법을 만나면서 나에게 맞는 직조 틀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 기회였고 시간과 노동을 온전히 들여서 완성된 작품의 가치를 함께 공유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얼음벌레
'길쌈'이라며 노동으로 대접도 받지 못한 아낙들의 일이 얼마나 지난하고도 정성스런 작업이었을지요. 실을 한 올 한 올 이어내고 다시 하나하나 걸어내고 한 땀 한 땀 자아내는 동화에서 보았던 은혜 갚은 청학의 작업을 몸소 체험한 듯 했습니다. 손가락이 구부러지고 마디마디 굳은살 박힌 기나긴 시간 허리 구부러진 여성들의 노동이 느껴졌습니다. 옷 하나하나가 허수히 보여지지 않는 체험이었습니다.
호연
원래 손으로 만드는 거를 잘 못하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노동에 의존하지 않고 내가 만들어 사용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그래서 직조 모임에도 참여하게 됐다. 그런데 나와 거리가 멀어 보이고 어려워만 보이던 실과 직조판으로 처음으로 내가 애정을 갖고 머리띠를 만들어보았고 상상이상으로 즐거웠다. 직조를 통해 내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무언가 만든다는 거 자체가 너무 즐겁고, 만드는 시간에 집중한 채로 생각정리도 할 수 있어서 나에게 정말 좋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낙타
어찌어찌 하자에 굴러들어 와 가끔씩 눈치 보며 왔다 갔다 하고 있는 낙타라고 합니다. 돈 벌어 먹고 살기 싫고 집에서 마냥 뒹굴거리고 싶은데, 그러려면 돈 쓸 일 없이 자급하며 살아야겠다 생각이 들어 여러 가지 기술 익히는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게으른 몸뚱이가 잘 안 움직여져서 몇 번 참여를 못했습니다만, 여러 색상의 실이 서로 얽혀가며 예상치 못한 색감과 형태로 탄생하는 걸 보는 건 신나는 일이지만, 뭔가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아직도 남아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칩코
하자센터에서 작당모임 채식한접시를 진행하는 칩코입니다. 요새는 돈 말고 다른걸 만드는 일이라면 다 신납니다. 내 생활에 가까운 것들은 직접 만들어가는 삶을 살고 싶어서 직조를 시작했어요. 엄청 어려운 작업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쉬웠고, 몇 작품 하다 보니 또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잘한 분들꺼 보며 흉내도 내고, 새로운 무늬와 색 조합을 발견하기도 해요. 질리지도 않고 재밌습니다.
피오나
점이 만나서 선이 되고, 선이 만나서 면이 된다는 내용의 글을 책에서 읽었습니다. 올이 뜯겨져 나가 실이 삐져나와도 여전히 천이 실의 짜임이라는 걸 나는 알지 못했어요.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내가 직접 실을 걸고 엮으니 편편한 조각이 나오는 경험을 했으니까요. 눈이 침침해지고 등짝이 아파도 마무리했던, 성기고 삐뚤고 고르지 못한 나의 직조 천 조각을 자랑 또 자랑하고 싶어집니다. 초반 스피드를 너무 올려서이기도 하고 끈기가 부족하여 요새는 직조참여율이 저조한 저는 하자센터 초근접 주민인 피오나입니다.
한다
저에게 직조작업단에 참여하는 시간은 내게 필요한 것을 ‘내가’ 만들어 나가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는 힘을 키워가는 시간입니다. 내가 내 손을 움직이면서 시간을 들여 목표한 물건을 만들어 내며 기술을 배워갈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의 손으로 직접 꾸려가는 사람들을 만나며 함께 작업하고 요리도 하고 대화도 나누면서, 직조기술 이상으로 말 그대로 ‘자급자족’하는 삶에 필요한 기술들을 익혀갑니다. 내가 직접 짠 직조물로 물건을 만드는 손기술, 내 손으로 직접 음식을 해먹는 기술, 매달 말 회의를 하며 시키는 사람이 없어도 배우고자 마음으로 함께 목표를 세우고, 공부해 나가는 방법까지 직조작업단 멤버들과 함께 배워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과정 속에서 무엇보다 내가 직조작업단에서 배운 다양한 기술들을 작업단 안에서도, 또 그 밖에서도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꽤 촘촘하게 참여하며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