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알바, 그러니까 돈을 목적으로 구한 첫 일자리를 말할 때 나는 잠시 고민한다. 머릿속엔 두 곳이 떠오른다. 요즘엔 떡볶이 집이라고 대답한다. 반나절도 안 되게 일하고 근로계약서를 쓰기도 전에 잘렸지만 말이다.
유연하게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다는 장점을 내세운 떡볶이 집은 다른 활동을 병행하면서 적게라도 정기적인 돈이 필요한 나의 요구와 맞았다. 나는 돈이 필요했지만 그것보다 내가 활동할 시간이 확보되길 바랐다. 면접을 본 후 나오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떡볶이집의 그 유연한 스케줄 덕분에 보건증이 나오고도 일하기까지 꽤 기다려야 했고, 그사이에 나는 머리를 깎았다. 마침내 일을 시작하고 반나절이 지나서였다. 나는 다음 날 쓰자던 근로계약서를 보지도 못하고 그만 나오라는 말을 들었다. 참고로 그 때 내 머리카락의 길이는 속눈썹 길이보다 조금 더 짧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그 날 하루 배운 대로 일을 하고 집에 돌아간 나는 매니저에게 카톡을 받았다.
[오늘 사장님께서 나무씨 근무하는 모습을 보셨는데 나무씨 헤어스타일 때문에 근무하기 힘들 것 같다고 하시네. 미안해ㅜㅜ]
깎기 전에 각오는 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씁쓸해졌다. 상상했던 것보다 기분이 훨씬 더러웠다. 반삭 머리가 서빙 일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일까, 그 머리를 한 게 나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걸까? 반삭인 나와 긴 머리인 나는 얼마나 다를까. 이 후 아르바이트 구인 어플를 보면서 자격 조건에 ‘용모단정’이 있을 때마다 속으로 코웃음을 치게 됐다. 내가 긴 머리를 풀어 헤치고 다니다가 떡볶이 국물에 내 머리카락이 들어가도 잘리지는 않았을 텐데.
위생적인 머리 스타일이 사업장에서 환영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머리를 기르고 싶은 마음이 없는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해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기로 했다. 다른 알바를 더 알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거부당할 게 빤히 보이는데, 시행착오를 거쳐 가면서까지 알바를 하고 싶지도, 돈이 간절하지도 않았다. 나는 돈이 없는 채로 사는 것이 그럭저럭 익숙했고, 큰 소비가 필요한 순간은 적었다. 무엇보다도 스무 살의 나는 학교 밖으로 나온 뒤 알게 된 재미있고 신기한 활동들에 눈을 빛내고 있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하느라 활동에 지장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때 내가 생각한 아르바이트는, 단지 내 생활을 더 오래, 질 좋게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 하는 것이었다. 있어야 하겠지만 당장은 없어도 그만이라는 거다. 정기적인 수입이 없다는 건 때때로 나를 불안하게 했지만 길게 가지는 않았다. 그렇게 2018년 한 해를 보냈다.
새해가 되고, 고민 끝에 나는 주말여행학교에 다니기로 했다. 다니기로 한 건 좋은데 당장 1학기 등록금을 내야 했고, 모아둔 돈은 부족했다. 다행히도 일 학기는 지인의 도움으로 해결했지만, 2학기 등록금에 조금이라도 보태려면, 아니 적어도 교통비라도 벌려면 얼른 일해야 했다. 머리스타일 때문에 잘린 전적이 있어서 서빙이 아닌 다른 일도 알아봤지만 내가 가능한 시간대에 일이 많지 않았다. 결국 다시 서빙 아르바이트를 구인했다.
[안녕하세요. 00몬 보고 연락드립니다. 나무/21/여성/경력은 없습니다]
그리하여 비로소 제대로 근로계약서를 쓰고 칼국수 집에서 일하게 되었다. 집에서 1시간 거리 사업장에서 나는 청소를 하고 유리창을 닦고 재료를 같이 손질했다. 손님이 오면 서빙을 봤고, 칼국수도 대접했으나 식당일을 하기에는 손이 느려 실수를 종종 했다. 나의 사수가 된 이모님은 너그러운 편이었지만 손님들이 가득 들어차 있을 때 실수를 하면 내가 괜히 죄송스러워 멋쩍어졌다. 그렇지만 처음이니까 익숙해지면 실수가 줄어들겠거니 생각했다.
여기 칼국수 집은 손님이 칼국수를 다 먹고 나면 볶음밥을 볶아줘야 했다. 그런데 어찌 된 게, 내가 볶음밥을 볶을 일은 좀처럼 없었다. 주 3회 일하고 알바가 처음인 알바생이라고 그런가 싶어 일부러 더 나서기도 했지만 영 불안해하시는 거 같아서 일을 알려줄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근무했던 한 달 하고도 일주일 동안 한 번도 볶음밥을 제대로 볶아보지 못했다.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내가 더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한 달하고도 일주일 후 사장님이 매출이 줄어들어 미안하지만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고 얘기하신 날에는, 이왕이면 볶음밥을 한 명이라도 더 볶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허탈했다. 이제 좀 일이 손에 익으려니까 잘려버렸다. 이해는 갔지만 좀 아쉬운 것도 사실이었다. ‘볶음밥을 잘 볶았다면 잘리지 않았을까?’ 배울 의지는 있었는데. ‘내가 실수하는 게 보기 싫으셨나? 그 쪽도 돈 쓰면서 알바 쓰는 건데 위험부담 안고 가르쳐줄 생각은 없었나보지...’ 내가 실수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힘이 빠졌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같이 밥을 먹으며 남사장님으로부터 내가 비건을 하는 것이나 화장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본인 딴에는 ‘악의 없는’ 조언을 들을 일이 없어서 좋았지만, 그래도 일을 계속하길 원했다. 돈을 더 벌어야 할 확실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있다. 이후 돌봄이 필요한 동생과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난 것은 제쳐두더라도 하는 일도 많고 내 애매한 시간대와 맞는 아르바이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계속 하고 있다.
10대 때 나는 일이 곧 돈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돈에 대한 욕심도, 돈을 벌고 싶은 뚜렷한 의지도 없었기에 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있었던 적도 있지만 주위에서 어차피 일은 나중에 평생 할 테니 그 시간에 공부하는 것이 더 좋다고 했다. 그런가 보다하고 어렴풋이 하던 일 생각을 접었다. 그래서 알바라고는 고작 친구가 뷔페에서 접시 나르고 와서 허리가 나가겠다는 진담 같은 농담을 듣던 게 다였다. 요즘 나에게 일이란 무엇일까. 꼭 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재밌고 즐거워서 하는 것에 돈을 주는 것일까, 내가 원하는 일은 대체 어디 있으며 그건 왜 쉽게 할 수 없는 걸까. 그건 내가 반삭임에도 떡볶이 서빙을 하고, 일이 처음이지만 볶음밥 볶는 일을 맡고, 몇 군데 없는데 알바도 안 뽑는 비건 식당에 지원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아 보인다.
나는 되도록 돈이 목적인 일을 하지 않고 살고 싶고, 만약 한다면 적어도 내가 반삭을 하던 밤톨머리를 하던 화장을 하지 않던 비건이던 그저 나로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이 처음이더라도 내게 꾸준히 실수할 기회를 주고, 내 개성이 드러나면 좋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 새로운 영역에 시도해 볼 수 있는 일. 나는 이런 일을 원하고 실은 이게 당연하지 않나 싶다. 반삭으로 서빙하고 일이 처음이지만 밥을 볶을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 당연하게 느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