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이 되었다. 다들 이제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했다. 나는 자취가 하고 싶었다. 나만의 공간, 자유, 독립. 최소 오백만원이 필요했다.
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빵집이었다. 그 집 앙버터와 생크림 케이크는 동네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 곳이었다. 빵 쟁반을 든 손님들은 줄을 길게 서있고, 철저한 분업 아래 나는 온종일 빵을 썰고 포장하는 일을 했다. 유동적인 근무 시간 탓에 오픈, 미들, 마감을 왔다갔다하니 하지 않는 일은 빵 굽는 일 밖에 없었다. 주 2일, 일곱 시간 씩 일하면 다음 달 손에 쥐는 돈은 40만원 남짓이었다.
그 해 여름, 친구의 소개로 이태원 고깃집에서 일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주휴수당과 야간수당까지 포함되는 꽤 괜찮은 일자리였다. 삼층짜리 건물에 루프탑까지 있지만 항상 삼십 분 씩 대기시간이 있는 고깃집. 한 달 쯤 일하자 ‘이 돈 안 받으면 아무도 일 안하겠다’ 싶었고, 세 달이 지나자 간절하게 관두고 싶었다. 하지만 세 달을 더 일했다. 이런 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는 구하기 어려웠다. 주 4일, 다섯 시간 씩 일하면 다음 달 손에 쥐는 돈은 70만원 남짓이었다.
사람들은 스무살이 하는 일이면 다 대단하다고 생각하나보다.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이들은 항상 내 나이를 칭송(?)했다. 참 어리고, 생기있고, 예쁘고, 좋을 때고, 자신의 스무살 시절이 떠올라 아련해지고,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라고 응원해주고 싶은, 청춘. 왜 벌써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냐는 물음에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하고 싶은 걸 하려면 돈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그렇지. 벌써 하고 싶은 걸 하려고 스스로 돈을 벌다니! 게다가 인생의 진리도 깨달았구나. 정말 대-단해!”
‘...?’
사람들 마음 속의 스무살은 도대체 누구일까. 아르바이트를 하는 내내 이런 고민들이 나를 쫓아다녔고 가끔은 관두고 싶었다. 아르바이트 말고 스무살을. 적어도 내 마음 속의 스무살은 아등바등하며 악착같이 버텨 돈을 버는 것이었다.
해가 넘어가고, 나는 자취를 시작했으며, 최저시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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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은 아르바이트 하지마(2019년)
A는 성년이 되었다. 그는 여행학교에 들어갔고 학교를 가지 않는 날에는 강의를 듣고 외부활동을 했다. 그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학교 등록금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교통비, 식비라도 벌어서 쓰고 싶었다. 그는 첫 아르바이트를 여의도의 한 칼국수 집에서 시작했다. 점심시간이면 그는 바쁘게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날랐다. 손이 조금 느린 탓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그를 자꾸 재촉했다. 2주 쯤 지나자 그는 내게 다음 달에 잘릴 것 같다고 말했다. 어리둥절한 내가 이유를 묻자 그는 자기가 아직 볶음밥을 못 한다고 대답했다.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시켜주지 않는다고. 그리고 정말 다음 달에 잘렸다. 사장은 그에게 ‘볶음밥을 볶을 수 있는 사람을 고용하고 싶다’고 했다.
B는 성년이 되었다. 아르바이트 어플에는 수백 개의 일자리가 뜨지만, 나이를 설정한 순간 절반 이상이 없어졌다. 그가 사는 동네에서 일할 수 있는 곳은 고깃집 뿐이었다. 24시간 운영하는 식당에서 오전 열 시부터 네 시간 동안 주 6일을 일하고, 다음주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실장은 메세지로 장사가 시원찮아서 세 명을 쓰긴 힘들다는 둥 형식적인 이야기를 했다. B는 억울하고 화가 치밀었다. 이런 식으로 잘린 것보다, 다시 일을 구해야한다는 상황이 그를 더 막막하게 만들었다. 이력서를 보내도 답장이 없는 업주들, 내 자신을 증명하고 평가 받는 과정들, 운좋게 일자리를 얻어도 다시 적응해야 하는 일과 사람들. 이 모든 건 그가 ‘제대로 일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다시 걱정하게 될 문제들이었다.
C는 성년이 되었다. 그는 의류매장이나 편집샵에서 일하고 싶었다. 주휴수당을 챙겨주는 대형 의류 매장 공고에 탈락하고 집 근처 서른 한 가지 맛 아이스크림 가게에 겨우 일을 구했다. 면접 때 아저씨 사장이 ‘제대로 일 못하면 바로 잘라버릴 거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오후 다섯시간 동안 C는 혼자 매장을 보고, 납작한 스쿱이 둥근 스쿱보다 아이스크림을 퍼는 데 덜 힘들다고 했다. 그래도 매일 저녁에는 팔이 얼얼하다고.
“최저시급은 올랐는데 내 노동의 가치는 낮아진 기분이야”
그는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나는 슬펐다. 사실이어서일까. 왜 이 말이 사실인 걸까. 사실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 거지. 이런 순간마다 혀 끝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맴돈다. 정말 피하려 하는 표현이지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뻔 하는 그 순간. 숨을 멈추고 말을 목 뒤로 삼키면 입 안에 남은 말이 없다. 그의 말이 가진 슬픔이 가져오는 정적. 이럴 때는 뭘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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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 8,350원과 스무살의 노동
참 좋을 나이라고 스무살을 부러워하던 사람들은
요즘 애들은 버릇 없고 책임감도 없다며 스무살을 뽑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라고 덕담 한 마디 씩 하던 사람들은
스무살은 하고 싶은 것만 하려하고 해야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일 경험의 기회를 빼앗는다.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돈을 번다는 스무살을 칭찬하던 사람들은
스무살에게 돈을 주고 일을 시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라고 어른 흉내를 내던 사람들은
스무살은 일머리가 없어 실수가 잦다며 같이 일하기를 거부한다.
해방과 자유로움-
이제야 뭔가 해보려 하는 스무살들을
어쩌면 세상은 반기지 않는 것 같다.
적어도 돈을 버는 것에서는.
올해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만 해도 다섯 명 중 네 명은 억울하게 아르바이트에서 잘리거나 혹은 언제든지 잘릴 두려움을 가지고 일한다. 그들에게 일을 시키려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급 8,350원은 뭣도 없는 스무살 짜리 아르바이트생에게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9일,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해 최저임금위원회가 본격적으로 심의에 착수했다고 한다. 사용자 집단은 동결(0%)을, 근로자 집단은 만 원 이상(19.7%)을 주장하고 있다. 팽팽한 의견 대립을 보이는 가운데 언론은 7월 중순에서 8월 초에 최종 결론이 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한낱 알바생의 신분으로 대한민국 경제가 달려있는 내년도 최저임금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 없다. 그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민했던 건 한 가지였다.
매년 성년이 된 이들이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돈을 벌고 싶어 할테지만, 그들에게 일을 경험하고 실패할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 사회가 허락하지 않으니까. 이런 상황에 과연 어떤 결정이 나와 내 주변인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최저임금이 동결되든, 상승되든 그것이 또 어떤 이야기들을 불러올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나도 결국 잘리는 걸까?)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둘 중 어느 것도 기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 끝까지 사람들이 자신 마음 속의 스무살만 믿는다면, 그래서 눈 앞의 스무살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말이다.
사실 시도하고 실패할 기회를 원하는 사람들은 스무살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아닌가?
그러니 부디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마음을 내어 주길 바란다. 성년이 된 이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사회로 이행하기 위해서. 우리의 새로운 시도와 실패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