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참여한 수요집회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위안부를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이 지점에서, 내가 참여했던 퍼포먼스가 기리고자 했던 일본인 위안부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기독교 단체, 중고등학교, 대학생 연합 모임 등 다양한 단체가 다양한 방식으로 위안부를 기억한다. 그러나 일본인 위안부들은 역사를 부정하는 자국의 정부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지도, 공론화하지도 못한다. 당사자에게조차 이야기되지 못하는 이 일은, 일본 사회에서도 쉽게 다루어 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의 서울 퍼포먼스가 꽤나 성공적이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7월에 도쿄에서 진행될 이 퍼포먼스에 대한 걱정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 걱정을 제쳐 두고 본 서울 퍼포먼스에 대한 소감을 말하자면,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감정이 생기는 경험을 했다. 전에는 위안부 문제가 사회적으로 너무 자주, 그리고 쉽게 말해지는 탓에, 기억해야 할 중요한 역사임은 인지하고 있으나 이에 대해 어떠한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스스로 정리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볼 기회도 갖지 않았다. 그러기에 위안부는 너무나도 자주, 쉽게 거론되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사회가 위안부 문제를 가볍게 생각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청카운이 세월호 기억 주간에 대한 회의를 하며 ‘많은 이들이 세월호를 기억하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기억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라는 고민이 나왔던 맥락과 비슷하다) 그런데 동상으로 분장을 한 요시코 시마다씨에게 헌화를 하고, 그를 안아주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위안부에 대한 어떠한 개인적인 감정 같은 것이 생겨났다. 사회적으로 ‘위안부를 생각하면 모름지기 이런 감정이, 이런 생각이 들지’ 라는 것을 배워서 느끼는 것이 아닌, 모종의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생겨났다. 실제 여성이 테이프로 입막음을 당하고, 차가운 동상이 된 모습을 시각화 하는 이 퍼포먼스의 가장 큰 의의도 이것에 있지 않나 싶다. 사람들이 동상이라고 착각할 만큼 위안부 소녀상과 흡사했으나, 중간중간 눈을 깜박이는 요시코 시마다 씨를 보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경험이 좀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떤 단체는 진상규명을 외치며, 어떤 단체는 자유발언을 하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위안부를 기억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이번 집회 때는 우리의 예술 퍼포먼스가 있었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위안부가 기억될 수 있다면, 나처럼 위안부에 대해 잠시 머물러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