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글은 하자마을 농사약속입니다. 네? 눈치 채셨어요? 무농약, 무비료, 무제초, 무경운의 농사가 바로 자연농이예요.
2019년 허브텃밭단은 엄마와 함께 온 5살 어린이부터, 아이랑 함께 온 아빠와 청년들까지 말 그대로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져 허브 옥상텃밭, 하자 앞마당 텃밭 등을 돌보고 있어요. 2017년부터 동네 시민들과 함께 자연농 하자며 텃밭을 일구었으니, 벌써 3년의 시간이 흘렸어요. ‘멀칭하지 않는다거나 비료와 제초제를 주지 않는다.’는 어렵지 않게 동의하지만, ‘풀을 뽑지 않는다거나 땅을 갈지 않는다.’는 아 네, 네. 대답은 하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지요. ‘풀은 뽑지 않고 자르고 제자리에 놓는다.’ 해도, 돌아서면 다 뽑고 퇴비간에 버려진 풀들을 볼 수 있었어요.
그래서 말을 건네지요. ‘우리 지구학교 다녀올까요?’ 그렇게 허브텃밭단은 20여년 자연농의 실천과 배움을 함께 나누며 다시 배우는 지구학교에 다녀왔어요. 이른 아침 출발한 사람들은 차창 밖의 5월 싱그러운 바람과 푸르른 풍경을 마주했고, 꿀잠을 자기도 했지요. 그렇게 하루를 보낸 이들은 어떤 풍경을 만났을까요? 그 풍경 속을 나눠봅니다.
언제
5월11일(토) 오전 7시~오후 5시
어디로
홍천 고음실마을 개구리(최성현) 논밭
어떻게
9시 / 열기 모임
9시 30분 / 자연농 곧뿌리기 실습 : 수수와 오크라와 토란 씨앗 뿌리기
10시 30분 / 논밭 돌아보기 : 못자리, 보리밭, 완두콩밭, 숱밭 시중들기, 비빔밥에 넣을 야생초 뜯기
12시 / 점심 식사
12시 40분 / 도깨비 나라
13시 / 참여자 이야기 마당 : 바른 먹거리와 물건강 (반딧불이)
13시 30분 / 선배들의 시간 : 자연농과 요리 (소금쟁이)
14시 / 모(고추, 오이) 아주심기
17시 / 닫기 모임
내가 지구다
여기저기서 자꾸 ‘나’를 찾으라고 한다. 요새는 ‘나’가 중요한 것 같다. 나만의 색, 나만의 일, 나만의 취향, 나만의 취미, 나만 아는 장소, 나를 찾는 여행. SNS에서도 다들 독보적인 ‘나’를 자랑하기에 바쁘다. 1인 방송에서도 ‘나’ 자체가 컨텐츠다. 여기저기서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려 하지만, 사실 어쩐지 서로 별 다를 건 없다. 튀는 머리색이나 패션, 카페에서 찍은 거품이 많은 커피, 동화 같은 여행지도 해시태그를 걸어보면, 얼마나 똑같은 ‘나’들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사막에서 ‘나’라는 모래알을 겨우 찾아냈다가도, 아주 작은 바람에 쓸려가 다른 모래와 섞여버리는 순간 망연자실해 버리는 것처럼. 수억 명의 사람들이 ‘나’는 누구와도 다른 사람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세상에 내가 단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 중요할까.
지구학교에 갔다. 개구리님은 실습을 시작하기 전에, 왜 지구학교인지 말해주었다. 발밑에 있던 냉이를 한 줄기 꺾어서 보여주며, 그중 아주 작은 잎사귀 하나를 가리켰다. 이 작은 부분 하나가 냉이가 아니라고 할 순 없잖아요? 이렇게 작은 일부도 냉이는 냉이잖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사는 지구를 먼 우주에서 바라보면, 우리같이 작은 존재들도 모두 지구인 거라고 했다. 당연한 말인데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지구구나! 개구리님의 밭은 흙을 조금만 파헤쳐도, 수십 마리의 개미 떼와 이를 모를 벌레들과 지렁이가 쏟아지듯 나왔다. 내가 거미, 지렁이, 씀바귀, 토끼풀과 다를 바 없는 지구의 일부라는 사실. 하루에도 내 몸에서 수많은 세포들이 죽고, 새로운 세포들이 만들어져도 나는 알아채지 못한다. 내가 지구에게는 억겁의 세월 동안 태어나고 죽어가는 그런 세포 중에 하나라는 사실. 나는 더 특별할 것도, 더 중요할 것도 없다. 지구학교에서 실습 전에 필요한 것은, 다만 한없이 겸손한 마음인 것 같았다.
개구리님은 대지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모든 생명은 ‘그 님’이라고 불렀다. 개구리님은 땅을 어루만지듯 괭이질을 하고, 손가락으로 톡톡 얕게 고랑을 냈다. 맨손으로 씨앗을 심고, 흙을 솔솔 뿌려주었다. 흙 위에 차렵이불처럼 덮어줄 풀은 아주 잘게 썰었다. 여린 씨앗이 뚫고 올라올 때 힘이 들지 않도록.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풀 이불들이, 꼭 어머니 대지에게 올리는 제단 같았다. 개구리님은 매일 매일 밭에 나와서 씨앗들을 보라고 했다. 싹이 트라고 노래를 해주고 춤도 춰주라고 했다. 틈틈이 김매어주며 시중을 들라고 했다. ‘그 님’들이 감동하면 우리 같이 덩치 큰 동물들도 먹고 살만한 양식을 주실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성을 다하는 일밖에 없었다. 실습을 마치고 나니, 손톱마다 흙이 끼고 손가락 마디마다 풀 향기가 났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꾸 우릴 원자화한다. 저마다의 경쟁력을 갖추라 하고, 끝이 없는 불안을 달리게 한다. 우린 왜 남과는 달라야 하고, 남보다 나아야 할까. 모두가 같은 지구가 될 수 없을까. 매일 흙과 인사를 하고, 시중을 들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땀을 흘리는 삶. 심심할 새가 없을 것 같았다.
::글_ 칩코(2019 허브텃밭단)
보고 듣고 배우다
오늘 아침 5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고 꽉 찬 일정을 모두 소화하느라 힘은 좀 들었지만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웠습니다. 못 오신 분들을 위해 오늘 배운 것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나와 네가 같은 그님이라는 개구리님의 말씀이 제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풀 한 포기도 헛된 것이 없다는 것을 글이 아닌 논과 밭 그리고 숱밭을 보니 알겠더군요. 풀은 하늘이 주신 영양분인데 실은 그것도 모르고 풀을 다 뽑아서 제 텃밭은 민둥산이랍니다.
처음 수수 씨앗을 심을 때 대충 심었는데 개구리님이 우리들이 가고 나면 제대로 싹이 트지 않아 농사를 망치기도 한다며 심을 때,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하시는데, 부끄러워 고개를 못 들었습니다. 씨앗을 심고 풀을 위에 덮을 때는 잎이 가는 벼과식물 같은 풀을 잘게 썰어 올려야 한다고 합니다. 잎이 넓은 풀은 마르더라도 넓이가 줄지 않아 싹이 나오기가 힘들다 합니다. 토란은 물기가 많은 흙에서 잘 자라서 약간 고랑 쪽에 심으시는 게 좋다고 합니다. 모종 심을 때도 그 부근의 풀만 베어주고 나머지는 놔둡니다. 그리고 구멍을 파고 물을 부어 물이 다 스며들면 그다음 모종을 심습니다. 역시 마지막엔 풀을 올려줍니다.
시중들기(김매기 등 밭을 돌보는 것)하며 숱밭에서는 왕고들빼기, 눈개승마, 파드득(이름이 특이해요 ^^;;) 등 여러 산나물을 직접 캐서 비빔밥을 해먹었습니다. 맛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직접 드셔봐야 할 듯. 암튼 너무 맛있었어요. 참 그리고 도깨비나라도 했는데요. 재미있었습니다. 낙찰 받으려고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가위바위보도 하고ㅎㅎ 전 바람님의 멋진 옷을 받아서 기분 좋습니다^^
기억나는 것만 말씀드렸습니다. 틀린 부분 있으면 수정해주세요. 끝으로 좋은 기회를 주신 지구학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운전하시느라 고생하신 거인님께 정말 고맙다는 말씀 다시 한 번 드립니다.
::글_ 먼지(2019 허브텃밭단)
티가 안 나는 자연농
예전부터 자연농 책도 읽어보고 어떻게 하는 건지 조금은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직접 가본다니 기대가 되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지도해주시던 개구리 선생님에게 무경운. 풀멀칭. 작물이 벌레, 잡초와 함께 자라는 게 자연농의 기본이라는 설명을 반복적으로 들었는데, 생태농업을 한다했을 때 많이 본 방법들이라서 자연농이라고 새로울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다수확, 편리성 위주인 인간 중심적 농사법에서 탈피하여 자연의 관점으로 보는 세계관 자체가 자연농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사실 오랜만에 몸을 써보는 거라 앉아있기도 너무 힘들고 사람이 아주 많아서 일도 많지 않다보니 재미가 덜했어요. 열심히 일하고 티 나게 일하는 걸 좋아하는데 자연농은 해도 티가 안 나는 농사법인 것 같아요. 오랜만에 평화로운 산골에 갔는데 초반에 어색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돌아올 때 쯤 되어야 아름다운 경치도 느끼고 산들바람도 느끼면서 조금 즐겼던 것 같아요. 지구학교 프로그램에 함께 하는 것보다 하자 사람들과 함께 산책을 하거나 이야기를 하며 점심시간을 보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색함을 풀었다면 더 좋은 하루가 되었을 것 같아요.
::글_ 하밤(2019 허브텃밭단)
농사보다 쓰레기가 고민
처음엔 강사분의 언어를 이해하기 어려워 자리에 있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점심을 먹을 때 까진 아이들과 놀았어요. 점심이후 활동시간에 삼각 괭이질을 하며 몸 쓰는 것이 재미있지만, 삽질이 저와 잘 맞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농사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마지막 마무리 시간에 자연농에 대해 이야기하며 어제부터 고민에 빠진 쓰레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강사분은 자연농을 하시며 비닐과 농약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셨죠. 시골 할머니 텃밭에도 비닐 멀칭이 되어있던 게 상기되었어요. 또 돌아오는 길 휴게소에서 음료를 텀블러에게 담아 달라고 요청한 텃밭단 분들에게 굳이 플라스틱 용기에 담았던 음료를 텀블러로 옮겨주며, 귀찮아하는 사장님 부부도 씁쓸했고요.
최근에 쓰레기로 쓰레기통을 만들며 18가지로 분리수거를 하면 칭찬과 리워드를 주는 구조물을 만들었는데, 완성 후 다시 쓰레기가 되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작업 후 이후 폐기되는 작품들에 대해 고민 되요. 여러 번 사용 할 수 있는 것을 만들기엔 보관할 장소가 없는데, 그럼 아무것도 안 해야하나 뭐 이런 생각이요.
::글_ 지나(2019 허브텃밭단)
자연을 대하는 마음을 배우는 지구학교
지구학교는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그 곳의 풍경은 여느 농가와 풍경이 달랐다. 같이 간 달고나가 "우리 집 시골이랑 똑같은데"라고 했을 때, 그곳에 가봤던 나는 분명하게 대답했다. "아니, 달라" 그리고 집에 와서도 한참을 생각했다. 뭐였을까? 달고나의 눈에는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이 나에게 다르게 느껴진 건 뭐 때문일까.
영혼이 깃든다는 말이 있다. 이곳은 좋은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자연농으로 모든 생명을 '그 님'이라 부르는 개구리와 소금쟁이의 받드는 마음이, 자연농을 배우러 온 이들의 겸손함과 소박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 이렇게 말하면 "생구라 치고 있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려나? 하지만 이건 내 마음이 들은 소리였다. 그리고 자연스러움. 이곳에서 인공적인 것은 찾아볼수 없었다. 야생 상태의 나무들이 처음부터 이 땅의 주인이었다는 듯이 밭과 논 사이에. 밭과 밭 사이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풀이 나있는 꼬불꼬불 밭고랑은 눈을 편안하게 하였다. 여기서 직선은 찾아볼 수가 없다. 모든 것이 곡선이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직선이 아닌, 자연이 만든 곡선으로 이루어진 풍경이, 중간 중간 야생 상태의 나무들이,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가 나에게 그런 마음을 들게 해주었다.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다!'
잘은 모르지만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최소한의 개입으로 내가 원하는 농작물을 얻는 농법이 자연농이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은 '그 님' 임으로. 그래서 그곳에서는 발끝을 조심해서 내딛어야 한다. 우리 눈에는 풀인지 작물인지 구별하기도 힘들 뿐더러, 모든 것은 '그 님'임으로.
흙을 다루고, 씨앗을 심는 모든 과정이 섬세했다. 흙을 다루는 마음이, 손끝에 만져지는 흙의 감촉이 여느 때와는 달랐다. 땅과 흙을 원하는 것(곡물)을 얻을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배들의 시간'에서 소금쟁이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의 주식은 쌀인데, 벼를 키우는 데는 많은 물이 필요하고 지하수를 사용해요. 땅 속의 지하수도 한정적인데 이렇게 계속 쓰는 것이 맞나 싶어요. 그래서 주식을 통밀로 바꿔보는 실험을 해보고 있어요. 밀은 물도 많이 필요하지 않고 키우기가 수월해요"
아마도 지구학교는 농사를 짓는 방법이 아닌 자연을 대하는 마음을 배우는 학교가 아닌가싶다. 거인이 이곳을 얘기할 때 "그냥 한번 가보는 게 좋아요"라고 한 말의 뜻을 알 것 같다. 농담처럼 '귀촌은 해도 귀농은 못해'라고 늘 말해왔지만 자연농이라면 귀농도 가능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