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날 무렵부터 벚꽃이 활짝 필 때까지, 마을책방 책모임 “유채색”은 매주 토요일마다 마을책방에 모여 앉아, 책 <경애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경애의 마음> 서평과 지난 책모임 리뷰를 나눕니다.
2019년 4월 6일/왼쪽부터 스피릿, 푸른, 수달, 마루
스피릿의 마음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기는 처음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가 사람에 대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치열한 고민을 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곳곳에서 작가가 나에게 생각하기를 요구하고, 질문을 던졌다. 어쩌면 우리 모두 무심코 지나쳐 버렸을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했다. <경애의 마음>은 나 자신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생각하게 했다. 내가 스스로 괴로워했던 시간과 맞닿아 있는 내용이었다.
나는 중학교 때 보통 사람이라면 넘어갔을 문제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한 친구의 나에 대한 시기와 알 수 없는 감정적인 행동이 나에게는 너무나 힘들었다. 그것을 견디고, 맞서 싸울 수도 있었지만 나는 피했다. 뒤로 물러나 도망가 버렸다. 학교를 그만둔 이후에 나를 방어하기 위해, 도망갔던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해서 그 친구를 비난하고, 미워했다. 일종의 자기 합리화였던 것 같다. 나 자신을 싫어하지 않기 위한 합리화.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더 내가 싫어졌다. 작가의 말처럼 자기방어 속에서 나는 갈팡질팡했다. 그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말을 하기 전까지. 그 갈팡질팡한 시간이 나를 방에 웅크리고 앉아 괴로워하게 했지만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 앞으로는 어떤 문제에 부딪치든 절대로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경애의 마음>을 읽으며 내 마음 속에 웅크리고 있던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고정관념과 편견을 꺼내볼 수 있었다. 맥주를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추모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청소년들. 나도 그러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단순한 이유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어떤 사람인지 정하는 사람. 책 속에서 나의 부정적인 모습을 발견하는 게 부끄러웠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앞으로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했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책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시킬 원동력이 되어 줄 것 같다. 나의 단순한 생각, 편견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사건이나 일이 일어났을 때 표면만 보지 않고, 속에 숨어있는 사실을 보려고 노력해보고자 한다. 금요일이 될 때마다 내일 있을 책모임에 설레어하고 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기대했다. 나에게 책모임은, 하자센터는, 진정한 내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인 이채진이 아닌 스피릿으로 행동하고 생각하면서 드넓은 들판을 뛰노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말이 된 것 같았다. 다른 사람과 그저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즐겁고도 신비한 경험이기도 했다. 책모임 “유채색”이 마무리되어 아쉬움이 남지만 괜찮다. 유채색은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고, 앞으로도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일을 계속 해나갈 것이다. 이런 책모임을 만나게 해준 하자센터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2019.04.06. 스피릿
마루의 마음
책모임 이름 ‘유채색’이 마음에 들었던 만큼 그곳 분위기와 사람들도 마음에 들었다. 책모임에 가는 토요일이 ‘미치도록’ 기다려졌던 건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마음의 평안과 소소한 즐거움을 얻어가는 것은 확실했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느꼈던, 이불처럼 나를 따뜻하게 덮어주던 느낌이 그것을 증명했다. 무언가 하나만 틀어졌어도 나는 그러한 느낌을 받지 못했을 것이었다. 고요한 하자마을 분위기, 더 고요한 마을책방 분위기, 서로를 존중하는 책모임 사람들, 유쾌한 책방지기, 그리고 <경애의 마음>. 책모임을 다니며, 우리는 모두가 편하기 위해 각자 조금씩의 불편함을 나눠 가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나와 같지 않음을 인정하는 불편함, 함께 했던 약속을 지키는 불편함, 서로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주는 불편함. 모두의 ‘편함’은 역설적이게도 모두의 ‘불편함’에서 오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경애의 마음>은 유채색에서 읽은 첫 번째이자 마지막 책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겉표지와 간단한 책 설명만 보고, 흔한 연애소설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던 책. 예상과 달리 그 책은 ‘경애의 마음’과 ‘등장인물들의 마음’ 뿐만 아니라 넓게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고 있었다. 사랑에 대한 마음, 그리움에 대한 마음, 좌절에 대한 마음, 그리고 옳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마음이었다. 복잡한 상황 속에 놓여있는 등장인물들의 마음에 내 감정을 이입하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친구를 잃은 내 마음은 어땠을까‘, ’부당한 회사의 조치에 나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나라면 그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었을까‘하는. 여러 답을 내놓을 수 있었지만, 내가 집중했던 건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이렇게 했어야 했다‘라는 생각이었다. 그 ’이렇게‘를 모아보니, 결론적으로 내 답은 ’따뜻한 사람이었어야 했다‘였다. 경애처럼 겉은 차갑고 딱딱할지라도 마음만큼은 따뜻한 사람. 따뜻한 사람은 따뜻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따뜻한 선택은 구체적으로 평화적이고, 감성적이고, 생명을 우선시하는 선택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돌아보았다. 아니었다. 때로 나는 폭력적이고 무차별적이고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침묵하고, 타인을 괴롭히고, 어떨 땐 자신마저 힘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경애의 마음>을 통해 반성하고 다짐했다. 따뜻한 선택을 통해 따뜻한 사람이 되어 따뜻한 삶을 살자. 따뜻한 마루가 되자. 하자마을과 유채색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도, 그 속에 마음을 데우는 따뜻함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차갑고 냉혹하며 무섭도록 현실적이라고 했다. 교통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더라도 보상이 주어지면 그 처리가 얼마 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상수가 보기에 그것은 호찌민 사람들이 지니는 속도라기보다는 자본의 속도처럼 느껴졌다. p.205 』
라는 ‘경애의 마음’ 구절이 떠오른다. 모두가 따뜻한 사람이 되어, 다른 무엇이 아닌 각자의 속도로 걸어간다면 우리 세상도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