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햇살 아래 나른한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가 떠오르는 계절 봄. 하지만, 미세먼지 수치가 낮은 꽃샘추위가 기다려지고, 비가 내리는 날을 ‘맑은 날’이라고 의심 없이 이야기하는 요즈음이기도 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를 일단 접어두고 ‘봄’이라는 말을 입 속에 넣고 이리저리 굴려 보다보면, ‘새로움’, ‘풋풋함’, ‘설레임’ 등의 단어가 떠오르면서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고 그 온기로 말랑말랑해지는 것 같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3월 12일, <OO(공공)진로학교> 개강 첫 날. 새 교복을 입고 하자센터를 찾아온 문래중학교 1학년 60명이 하자 곳곳을 누비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겨울 군내를 밀어내 주었습니다. 하자이름을 정해 명찰을 만들고 오늘 기분을 나누며 2인부터 15인까지 마주서며 점차 큰 원을 이루어 공동체 게임을 해보고 하자의 메이커스페이스를 탐색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공공진로학교는 하자가 학교와 연계하여 청소년들과 지속적으로 만나며 미래진로역량을 탐색하는 사업입니다. 하자는 중학교 자유학년제(자유학기제) 본격시행과 고교 개방형교육과정 시범운영 등 교육정책 변화에 따라 공교육 현장과 중장기 프로그램으로 협력해 나가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문래중학교와 ‘씨앗학교’라는 이름으로 자유학기제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2015년 <논픽션 뮤지크>와 <길고양이의 자취생활>을, 2016년 <학교는 놀이터>, <버려진 동물을 위한 공생 프로젝트>, 2017년 <게임을 통한 평화교육>으로 이어졌습니다. 2017년에는 고교개방형교육과정과 연계하여 ‘OO진로학교’라는 사업명으로 휘봉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과 여덟 개의 프로젝트를 1년간 진행하였습니다. 2018년부터는 중고등학교 구분 없이 학교 연계 중장기 프로그램을 ‘OO진로학교’라는 사업명으로 통합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문래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세계평화게임> <자전거학개론>을, 대원고등학교 방송반 학생들과 <오합지졸 몽타쥬>를 진행하였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문래중학교 학생들과 세 개의 프로그램으로 만나게 되는데, 세계를 구하는 보드게임 <세계평화게임>, 삶의 기술 목공 <젊은 목수들>, 버려진 보물을 찾아서 <보물섬>이 그것입니다.
<보물섬>은 월광, 알렉스와 함께 일상 속 공간과 버려진 사물을 ‘보물’로 새롭게 바라봄으로써 다양한 상상과 숨겨진 가치를 함께 발견해보는 것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하자센터를 비롯한 주변의 공간과 재료를 탐색하는 활동을 통해 근사한 보물지도가 그려지기를 기대합니다.
<젊은 목수들>은 이름, 한다와 함께 전문 목수만큼의 실력은 아니더라도 만들어보고 싶은 것을 뚝딱뚝딱 작업해나가는 프로그램입니다. 버려진 목재들을 재료로 다듬고, 일상적인 공간인 학교 곳곳을 꼼꼼히 살펴보고, 모두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설계하여 제작하는 재미를 차곡차곡 쌓아갈 것입니다.
<세계평화게임>은 파코루도 소속의 쥬, 세라가 30명의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 4개 국가의 내각과 유엔, 세계은행, 무기상인, 비밀제국 지도자, 날씨의 신이 되어 각자의 이익을 도모하며 무력분쟁, 민족갈등, 핵무기 확산, 기후변화, 물 부족 등 복잡하게 뒤얽힌 전 세계적 위기상황을 진단하고 해결해나가는 보드게임입니다. 가상세계 속에서 전 지구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크고 작은 소통 연습을 하여 쌓인 경험치는 현실세계에서도 갈등요소를 포착하고 해소하는 능력으로 발휘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만남의 자리에서 “OO”에 어떤 말을 넣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대답하기를 머뭇거리는 청소년들에게 단 한 개의 정답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힌트를 건넸습니다. 자신을 탐색하고, 친구와 협력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을 향한 말걸기를 실험한 청소년들이 하자의 봄과 여름 사이에 색과 향이 다른 60개의 OO으로 채워갈 찬란한 7월의 어느 여름날을 손꼽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