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몸과 마음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상해갔다. 상사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진상 손님을 응대하는 것이, 같이 일하는 사람의 불쾌한 농담이 자주 나를 분노하게 했지만 돈 때문에 그만두지는 못했다. 그러자 돈을 벌어 먹고사는 일은 내 일상의 전부가 되고, 하고 싶었던 것은 시간이 안 돼서, 몸이 힘들어서 등의 이유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무래도 돈과 하고 싶은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 같았다. 그래서 마침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하자에서 새롭게 일을 하게 되었다. 아르바이트 같은 것은 아니었다. <10대 연구소> 프로젝트를 서포트 하는 것이 내 역할이었는데, 그것은 내게 무엇보다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는 일이었다. (세 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최소한의 돈.
2.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지 고민하는 시간.
3. 고민을 나누고 실험해보는 공간.
물론 누구는 이런 조건을 따지는 내가 너무 여유를 부리는 것 같다 했다. "아직도? 이미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어?"
하지만 필요했다. 당장 무엇을 해도 캄캄한 기분이 들던 나로서는 반드시 확보하고 싶은 조건이었다. 바로 대학에 가는 것, 취직을 하는 것 외의 다른 것도 생각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른 시작했다.
그렇게 내 고민과 10대 연구소 프로젝트의 일은 함께 시작되었다. 10대 연구소 프로젝트는 매주 토요일, 마을 서당에서 진행되었다. 각기 다른 10대가 그곳에 모여 있었다. 나이부터 시작해 기질과 취미가 전부 달랐다. 하나 있는 공통점이라면 모두 너무나 말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는데, 대개 오랫동안 말하기를 기다린 사람처럼, 늘 말이 목 끝까지 차올라있던 사람처럼 열렬하게 말을 했다. 오고 가는 말과 말 사이에 공백이 없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0대 연구소 진행 풍경
특히 사회의 부조리, 예를 들면 가부장제, 대학입시 제도 등에 관한 주제가 나왔다 하면 시간이 모자랐다. 서로 마구 울분을 터트리고 공감하며 반응했다. 눈 깜짝하는 사이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잘 알고 있겠지만, 매일 같이 사건 사고가 터지고, 비상식이 상식이 되는 세상에서는 무감해지는 것이 사실 가장 쉽다. 그런 소식에 시간과 마음을 내려고 하기 전부터 우리는 이미 피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을 보고 있을 때, 나는 가끔 의아한 기분이 들고는 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무감해지지도, 무섭고 무겁게 분노하지도 않는 명랑함이, 태연하고 발랄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발화하는 열렬함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궁금했다. 괜히 내 지난 시절은 어땠는지 돌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은 동시에 일반 학교 청소년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청소년 직업 체험 센터라는 하자의 특성상, 하자 안에 있는 대안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하자에서 일을 하는 동안에도 교복 입은 일반 학교 청소년 무리는 자주 만나게 되었다. 머리 스타일, 걸치고 있는 잠바 같은 것이 전부 비슷해서 잔상 정도만 남아있는데, 예를 들면 소파에 죽치고 앉아있는 모습, 센터의 입구를 가로 막은 채 떠들고 있는 모습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특히 학교를 다니고 있던 당시는 그런 것이 불편해서 얼른 가기만을 자주 바랬다. 내 공간을 침해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대안 학교를 다니기 전까지 일반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서로 비슷하게 하고 있는 것은 왜인지, 무방비하게 퍼질러 있는 것은 왜인지, 소란스럽게 하는 것은 왜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면서 공연히 심술궂은 마음을 먹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는 다른 길을 선택했어. 더 이상 너희와 같지 않아.’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일종의 자기 부정 심리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그리고 이런 심리를 바탕으로 그들을 타자화 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10대 연구소 덕분이었다. 열한 명의 연구원이 고통과 슬픔의 언어로 자신의 일상에 대해 내밀하게 말하는 것을 들으며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이 굴었던 것인지, 너무 부끄러워지는 시간을 잠시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주 다른 것만 같았던 우리가 결국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을 고민하는 삼색과 내가, 대학 말고 다른 것을 고민하는 나무와 내가, 그리고 다른 아홉 명의 연구원과 내가 같았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으로서, 우리는 각자의 교실에서 분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10대 연구소 시즌 2가 시작되는 봄의 초입에서 나는 이제 우리가 무슨 학교, 어떤 교육의 영역에서 말고, 그저 ‘10대 청소년’으로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런 자리가 앞으로 자주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끝내 명랑함과 열렬함의 출처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어디에라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면 심각하게 골몰하지 않으면서 즐겁게 고민하고, 행동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든든한 동료 여럿이 생긴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