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왕왕이들의 친구 '모모'입니다. 왕왕이들의 호칭은 왕왕(시간의 간격을 두고 이따금) 만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저는 왕왕이들과도 ‘왕왕’ 만나며 평화 책 활동을 드문드문 지켜봤습니다.
처음 우리의 활동은 ‘나를 평화롭게 만드는 것, 그리고 평화롭지 않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나누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이 때 평화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 처음으로 곰곰이 생각해봤던 것 같아요. 일상, 그리고 일상의 파괴, 조용함, 그리고 소음 등등. 각자가 생각하는 평화에 대한 정의는 훨씬 다양하고, 더불어 '평화롭다' 고 느끼는 순간이 거창한 순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아도 평화의 모습을, 혹은 그 역의 모습을 지니는 순간들이 많았거든요. 평화롭기 위해서 물구나무를 선다던 효효의 말이 가장 인상 깊은데, 어쩌면 평화라는 것이 잔잔하게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애써서 지켜내야 하는 것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전시를 즐기는 관람객들
이번 여름 왕왕이들과 만나 책이나 영화를 보고,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혹은 간식을 먹으며(!) 저는 작은 평화를 느꼈습니다. 또, 왕왕이들을 만나기 위해 폭염에 지하철 환승역에서 낯선 이들의 가슴팍에서 애써 시선을 돌리던 아침엔 평화를 찾기가 정말 어려웠지요. 평화를 향한 험난한 여정! 하지만, 평화를 만나기 위해 평화롭지 않은 순간을 견뎌낼 수 있었고, 그 둘은 사실 종이 한 장 차이로 뒤집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떼어 놓을 수 없이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파주 평화책 도서관에서
파주에 위치한 평화를 품은 집 <평화책 도서관>은 평화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평화롭지 않은 제노사이드 사건들을 전시하고, 분류하고, 기억합니다. 평화에 대해서 설명하려면 평화롭지 않은 순간들에 대해서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11월 3일,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 도서관에는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가득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다락방부터, 제노사이드 역사 자료관, 그리고 계단을 따라 쭉 비치된 다양한 평화 책들. 저희는 다 함께 도서관을 둘러본 뒤 관련된 책을 몇 권 가져다가 함께 읽고, 궁금했던 것을 관장님께 하나씩 질문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평화잼 전시에서
평화잼 전시 1일차 도슨트를 담당한 식빵, 구름, 콜라
평화잼 전시 2일차 도슨트를 담당한 콜라, 제니, 현이, 식빵
마포동네책축제에서 <평화잼> 전시 중인 왕왕이들
앞서 왕왕이들은 2018 ‘창의서밋’과 ‘마포동네책축제’, 총 두 차례에 걸쳐 평화책 전시를 진행했고,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도슨트 활동을 했습니다. 전시를 구성하는 책을 선정하는 것부터, 함께 읽고, 인상 깊은 내용을 이야기하고, 또 이 내용을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해 만든 소품(종이상자 탈, 얼굴인형, 질문서랍장)을 전시하기까지, 모두 왕왕이들이 직접 준비한 내용이지요! 어떠한 바를 소개하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하고, 스스로 준비한 설명으로 낯선 사람들 앞에서 용기를 내어 목소리 낸 왕왕이들의 활동이 누군가에겐 작게나마 평화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역할을 했을 거라고 믿습니다.
제가 관찰한 왕왕이들의 작업은 대개 ‘같이’ ’즐겁게 노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대부분 눕거나 엎드려서 뒹굴었어요. 처음에는 앉아 있다가,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다가, 조금씩 더 편해지면 누워서 그림을 그렸어요. ‘시간만 충분히 주어지면 얼마든지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도 다 해낼 수 있구나’ 싶었던 그 과정이 신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같은 선을 그려도 누군가는 선 하나하나를 그리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렸고, 누군가는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후다닥 그려냈습니다. 전체의 윤곽에 신경 쓰는 사람이 있었고, 디테일에 신경을 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림을 좋아하는 등 기호에 있어서도 차이가 났고요.
예를 들어 현이는 한 획으로 거침없이 슥슥, 콜라는 하나하나 집중해 가늘고 많은 선을 그려서 그림을 완성시켰습니다. 그림은 자신이 없다며 걱정하던 콜라와 구름, 그림을 싫어한다던 제니도 모두 단지 저마다의 속도를 가지고 있을 뿐, 막상 시도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자기를 닮은 멋진 그림들을 그렸습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식빵은 거침없이 선을 그어가며 특징을 잡아낸 그림을 완성시켰는데요, 그림 옆에 또 다른 그림들이 잔뜩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식빵의 그림이 거침없었던 건 아마 많이 그려봤기 때문이고, 그 경험 덕분에 덜 두려워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귀퉁이에 그려놓은 그림들이 단단하게 쌓여 식빵이에게 완충재가 되어준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나의 주제를 생각하며 만나도 각자가 가진 것이 다르고, 서로의 생각과 속도가 모두 달랐습니다.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나아가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 이해해보는 과정을 통해 변화하는 모습을 가끔이나마 옆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괜히 제가 더 반갑고 즐거운 시간이었답니다.
덧붙여보면, 제 닉네임 모모는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 모모와 미하엘 엔데의 동화책 <모모> 그 어딘가의 모모인데요. 두 책 모두 ‘평화’ 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담고 있지는 않지만, 어떤 평화책 만큼이나 ‘평화’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우연히 함께 하게 된 [평화책 큐레이터 왕왕]이 의미하는 바도 이 두 책과 같았습니다. 단순히 한 단어로, 혹은 단면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평화’에 대해, 각자가 다양하게 정의하는 바를 나누고,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그리고 새로운 평화에 대해 상상해보는 활동이었답니다. 모두들 감사하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왕왕, 다음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