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의 끝 무렵, 함께 놀며 작업하는 어린이 모임 ‘청개구리 작업장’의 ‘쇼하자’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약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스케이트 보드를 중심으로 바퀴로 굴러가는 여러 가지 탈 것을 만들고 놀았는데요, 자신들을 ‘산으로 가는 청개구리 라이더’라고 이름 붙인 이들의 1년간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하자’라는 커다란 메이커스페이스
어린이들과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전제 중의 하나는 ‘하자’라는 마을을 어린이들이 누비며, 그 속에서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발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7년도 1기 어린이들은 하자를 비밀공간과 아지트 삼아 탐험하다, 본인들만의 아지트를 짓는 경험을 했지요. 사실 2기 어린이들 역시 또래가 지은 아지트를 보고 자극을 받아, 같은 곳에서 프로젝트가 시작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는데, 초반부터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내가 작년에 저 아지트를 만들면서 생각한 건데, 하자 자체가 그냥 아지트라는 거야.”
“하자는 우리가 만든 게 아니잖아.”
“잘 만들기는 만들었는데, 우리만의 것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예전부터 하자를 드나들어 ‘아지트 공간’으로 인식해오던 동네 어린이들과, ‘작업장/메이커스페이스’로 하자를 받아들인 새로운 방문자들의 접근은 다를 수밖에 없었지요. 이들은 공방에서 작업을 권하는 어른들과 만나면서 무엇이든 만들 수 있겠다는 인식이 생겼고, 이후 ’우리들의 것‘을 만드는 일에 대해 판돌들을 설득하였어요. 자전거공방의 바퀴 달린 물건들에 자극을 받고는 ’보드‘를 만들자는 구체적으로 제안을 해주었습니다.
난관의 힘
보드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했지만 쉽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부품도 찾기 어렵고, 따로 구입해 조립하려니 가격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결국 기성품을 사서 해체하고 자신의 것을 만드는 커스터마이징 작업을 하게 되었지요.
"고지가 먼 산”
“ 한 명씩 난관에 부딪히네. 저번에는 제가 난관에 부딪혔는데, 이번에는 얘가.”
이후에도 노동강도와 작업시간의 한계를 만나는 등 작업은 지속적인 난관을 만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골몰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때마다 새로운 모델을 개발한다거나 대안을 마련하는 등 난관이 새로운 동력과 실험의 기회가 된다는 것이었어요. 일부만 보드를 만들어 타고 놀면서 일어난 갈등과 싸움이 결국 모두를 위한 보드장, 대여소를 기획하게 되는 배경이 된 것처럼요.
“자전거 대여소처럼, (보드) 대여소를 만드는 게 어때요? 한강 같은 데 보면 있잖아요.”
“만약에 3명이 보드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럼 4개를 만드는 거예요. 하나씩 갖고 하나는 남겨두는 거예요.
깨끗이 만들어서 다른 사람이 놀 수 있게 해두면 좋을 것 같아요.”
돌아보면, 지난해 청개구리 작업장의 모든 과정은 난관 봉착과 문제 해결의 끝없는 순환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망의 보드보관함(쏙쏙보관소) 작업 또한, 만든 보드가 늘어나자 운반이 어려워지고, 심지어 수레가 부서지면서 발생한 문제 해결의 결과였으니까요. 청개구리 작업장의 지민이는 이러한 과정을 ‘작전회의’라고 불렀습니다.
‘공장표 아닌 토토표’를 만드는 이유
어린이들이 완성도 높은 기성품 보드를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도, 굳이 한 큐에 해결되지 않는 지난한 작업을 하며 ‘사서 고생’하는 모습은 놀라운 광경이었어요. 보드 제작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장 먼저 꺼냈던 토토는 “공장표 말고 토토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손수 만드는 삶’이란 ‘낙’이기도 하고, 노동이자 놀이이기도 하고, 놀이를 위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만드는 건 낙이에요."
“놀이도 작업의 과정이에요. 저희가 놀려고 만드는 거니까.”
그 뿐만이 아닙니다. 작업의 성취감은 다른 부분으로 전이되기도 합니다.
“옛날에 보드 타봤는데 안 되는 거에요. 포기를 하고 도전을 안했거든요.
근데 이번에 한 건 제가 만든 것이기 때문에 훨씬 더 자신감이 붙었던 거 같아요.
이런 생각이 있었나 봐요. 내가 만들었으면 탈 수도 있지 않을까?
보드를 만들었는데 왜 못 타겠어?"
관계의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설계 : 공간을 스스로 열고 짓는 경험
가을 무렵, 어린이들은 보드 대여소와 보드장을 두 차례 열고, 메이커페어에 초대되어 보드체험 부스를 열었습니다. 보드장을 직접 설계해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서로 역할을 정해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청개구리 작업장을 진행하며, 어린이들이 직접 공간을 열어보는 경험(일시적 공간이라도)이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나’, ‘우리(청개구리 작업장)’이라는 바운더리를 넘어선 공공의 공간을 만들 때, 모르는 사람들과의 우연한 해프닝, 관계의 역동성이 생기는 걸 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상황을 조율하고 대처하며 협력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요. 자신들이 만든 ‘판’에 누군가가 들어와 즐기며 상호작용하는 모습은 어린이들에게 ‘결정적 순간’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만들면 만들수록 보드가 많아지고 타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즐거워져요.
제가 만든 걸 다른 사람이 타니까 뿌듯하고 보람이 있죠.”
자신의 정체성을 ‘메이커/작업자’라고 자신 있게 말한 적 있는 나무는, ‘메이커페어’에 나간 경험이 그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공간이 열리는 모습은 어린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유의미합니다. 잘 보이지 않는 어린이의 존재와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경험이기 때문이지요.
산으로 가는 청개구리 라이더들
“우리는 ‘산으로 가는 청개구리 라이더’에요.” 쇼하자와 보관소를 두고 회의하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말인데, 어린이들 대부분의 열렬한 반응을 얻어, 결국 쇼하자와 매거진의 제목이 된 이름입니다. 회의를 하면 의견이 절대 하나로 모이지 않고, 이 얘기 하다가 산으로 바다로 우주로 간다는 뜻이죠. 이 이름은 어린이들이 느낀 청개구리 작업장의 모습과도 연결이 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는 정해진 틀이 있는데 하자는 범위를 넓히면서 여러 개를 배우니까, 다른 친구들에게도 필요해요.”
"청개구리 작업장은 자유로운 학교에요"
“(우리 회의가) 산으로 가는 건 당연할 수 있어요. 어린이들 머릿속엔 많은 생각이 있고 많은 상상이 있으니까. 근데 막상 보면 짜증나죠.”
청개구리 작업장 어린이들은 때때로 의견이 충돌해 가열차게 싸우기도 하고, 씩씩거리며 울기도 합니다. 서로 갈등을 마주하고 해결해가는 것, 다른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중재하고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것 모두 중요한 과정입니다. 관계를 단절시키지 않고 마주하는 자리를 두면 당장은 아니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서로를 배려해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지요.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약속을 지키는 범위에서 어린이들이 가진 풍부한 상상, 궁리와 질문의 힘이 발휘되는 배움의 장이 되기를 바라며, 쇼하자에서 소감을 나누어주신 한 부모님의 리뷰로 글을 마감합니다.
“아이가 하자에 갔다가 집에 왔을 때 짓는 표정, 마치 ‘자신이 원하는 걸 다 꺼내 해보고 왔다’고 느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