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 ‘청소년’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성차별적 시선을 경험으로 말합니다. 부당하게 겪어내는 여성으로서의 이미지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재생산 중인 불편한 시선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어리고 순수한 소녀처럼, 때로는 성적으로 매력적인 숙녀처럼 변신할 수 있어야 하는 여성들은, 모든 삶의 과정에서 ‘성적 존재로서 여성’이라는 코르셋을 입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여성성’은 획일적이고 혐오적인 방식으로 생산됩니다. 이러한 틀에서 벗어나, 모두가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하 세바시) 방송 안내 문구
세바시 섭외를 받던 그날은, 신이 나서 여기저기 알리기 바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마냥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내 안에 ‘나는 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답이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원래의 ‘나’는 이런 도전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나에게 이런 기회가 왔다는 사실만 생각하며 마냥 기뻐할 수 있었다. 문득 ‘정말 나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처음의 즐거움이 점차 사라지고 불안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나를 드러내는 것,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것, 더 나아가 이러한 공적인 방송에 노출되는 것. 이 모든 것이 현실이 된다고 상상하니 불현듯 두려움이 몰려왔다. ‘너무 예민한 주제이지 않나?’ ‘질타를 받지는 않을까?’ ‘아직 준비가 너무 부족한 사람이지 않나?’ 섭외를 거절할 이유들이 계속해서 머리를 스쳤다. 그럼에도 내가 출연을 결정한 것은 이전의 발제 경험에서 배운 것들 때문이다. 두 번의 발제를 통해 나는 이러한 기회를 얻었고 함께 나아갈 인연들을 만났다.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만큼 더 많이 공부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채워 나갈 수 있었다. 이것들을 떠올리니 세바시를 통해서 또 나는 어떤 다른 삶을 살게 될지, 어떤 페미니즘을 만들어 나갈지, 어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지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강연을 준비할 때도, 무대 위에서도,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 ‘강연’보다는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청중들이 집으로 돌아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볼 여지가 있는 화제를 던지고, 지인과 대화하는 듯한 시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정신없이 지나간 강연회 뒤, 청중들이 다가와 건네주던 말들에, 나는 ‘대화’에 성공했음을 느꼈다. ‘공감했어요’, ‘연사님과 동갑인데 저도 그런 경험 많이 했어요.’, ‘멋져요’, ‘앞으로도 계속 지켜볼게요.’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고 있는 ‘성적 대상화’에 대해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이 전달된 느낌이었다. 특히 한 남성 청소년이 다가와 강연이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를 건넬 때는 정말 짜릿했다. 현실의 객관적인 차별에 대해 언급하기만 해도 성별갈등으로 이어지는 세상이다. 여성과 남성의 갈등을 부추기는 꼴이 되지는 않을까, 여성들의 입장도 대변하지 못하면서 남성들에게 무작정 공격받지는 않을까 고민했던 나로서는 정말 감사한 순간이었다.
강연이 끝난 지금, 나는 도전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출연을 결정하며, 대본을 쓰며, 학창시절 경험을 떠올리며, 나의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드러낼 지 고민하며(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들고 나오면서 어느 정도 꾸밀 것인지, 애교 섞인 말투는 아닌지 등 나를 드러내는 여러 가지 요소들에 대해 고민했다) 제목처럼 ‘나 다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쉽게 인식하지 못했던 나의 ‘여성적 모습’,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하나 둘씩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발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준비된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말’해보며 그런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을 느낀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성장한 만큼, 세바시 이전과 지금 나의 페미니즘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멈추지 않고 ‘말’하는 나의 페미니즘은 1년 뒤 어떤 모습일까?
글을 마무리하며, 청소년카페 ‘그냥’과 카페운영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지난 1년간 ‘페미니즘’을 주제로 세 번의 발제를 하며, 정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나’를 오픈하는 것이 두려워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버겁던 제가, 이런 민감한 주제에 대해 소신 있게 발언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서 감사합니다. ‘하자 창의서밋’에서 발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더 좋은 발제 내용을 위해 함께 고민해준 동료들 덕분에 또 다른 기회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의 활동을 언제나 응원해 주시고 함께 만들어 주시는 청카운2기 그리고 판돌 들레, 정말 고맙습니다!
:: 글_달(장유정, 청카운 2기)
세바시 <학교에 성평등이 필요합니다> 참관 후기 - 냥은
세바시 방청은 처음이어서 신기했다. 그간 잘 모르던 페미니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환경을 같이 바꾸어야 된다는 말과 "누가 아닌 우리" "나중 말고 지금이 먼저"라는 말이 기억난다. 나도 곧 중학생이 되기 때문에 달의 발표 중 교복에 성차별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어서 특히 좋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페미니스트가 폭력적이고 남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페미니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같이 세바시 강의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반 아이들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을 알고 싶은 사람, 페미니즘을 잘 모르는 사람,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은 사람도 이번 세바시 강의를 꼭 봤으면 좋겠다
:: 글_냥은(임도현, 청카운 2기)
남자청소년 성교육 세미나 <미투 시대, 백래시에 휩싸인 남자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 대안 모색> 참가 후기 - 주난
세미나 당일, 교사 분들이 발표한 자료와 사례들을 통해 차별적인 문화가 일상 전반에 깔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변화해야 할 교육 방법과 방식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교과서나 수업에서 발생하는 사건, 학생들 사이에서 문화에 전반적으로 성평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들과도 이런 고민을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 있어야 자신들이 만들어 가는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반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스마트폰을 들기만 해도 성차별이 만연한 문화를 볼 수 있는 현재의 저는 미래를 더 걱정스럽게 상상하게 됩니다.
제가 참여한 행사를 짧게 설명하자면, 아하센터(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성차별에 대한 청소년의 생각을 조사한 설문 결과를 발표했고 성교육 수업을 진행하며 겪은 어려움과 사건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후에 주윤아 선생님께서 교과적으로 문제적인 부분과 잘못된 성교육 표준안, 그리고 동료 교육자들 사이에서도 필요한 성평등 문화에 대해 발표했고 비온뒤무지개재단 한채윤 상임이사님께서 현재 남성 청소년들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 교육해야 할지 그 방향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그 다음에 저는 페미니즘 교육을 받은 남자 청소년으로서 발표를 하였습니다. 후회가 많은 발표이긴 했지만 세미나에 참석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할 변화에 대해 알 수 있었기에, 성 교육만이 아닌 모든 수업에서 성평등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학생들이 영향 받는 사회 문화 또한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어떤 언어와 행동이 다른 사람과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발휘하고 책임을 지는지 무게를 알 수 있기도 했습니다. 또한 나의 의견과 주장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더 신뢰할 수 있는 배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발표를 마무리했습니다.
:: 글_주난(김민준, 청카운 2기)
남자청소년 성교육 세미나 <미투 시대, 백래시에 휩싸인 남자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 대안 모색> 참가 후기 - 오디
아쉬웠다. 나는 지난해 오디세이를 다니면서 간접적으로 나마 페미니즘에 대해 경험을 했었고, 올해 또한 하자 안에서 시유공과 카페그냥 활동을 통해 나름대로의 성적 가치관과 감수성을 길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며 성교육과 페미니즘 성에 관련된 정보들을 무작정 찾아봤다. 생각 외로 성교육에 관심 있는 청소년이 많았다. 성 지식을 공부하고 그것을 영상으로 담아내 유튜브로 공유하는 청소년, 성교육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하며 직접 새로운 성교육을 만드는 청소년,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섹스와 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질문할 수 있는 섹슈얼 파티를 기획하는 청소년 등 주체성을 갖고 활동하는 다양한 청소년들이 있었다.
나는 청소년의 주체성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성교육을 제외하고도 학교 내 교육은 주입식, 성적순, 그리고 마치 대량 사육하는 닭장같이 변했다. 의미 없이 졸업장을 받기 위해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수두룩하고, 대학 진학이 인생의 전부인 친구도 있었다. 성적이 되지 않는 활동은 필요 없어지고 봉사활동 또한 성적에 들어가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지 본질적인 의미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학교에서 청소년이 주체가 되는 것은 죄였다. “어딜 감히 학생이 선생한테”, “학교에는 교칙이 있고 너는 그걸 따르면 돼!” 이의 제기하는 학생은학교 내에서 이단아로 찍히고 만다. 이미 만들어진 교육 시스템이 있고 학생은 그것에 따라야 한다고 한다. 그게 학생다운 것이라고 하면서. 그래서 위에 언급한 청소년들을 포함해 많은 청소년들이 학교 안에서 학교의 변화를 포기하고, 학교 밖으로 나와 이야기한다.
이미 주입식 학습과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나열하는 학교에선 변화는 힘든 문제였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교육에 대한 실험을 기피한다. 이미 학교에 있는 교육만으로 충분하다고 교사, 학생, 학부모 들은 생각하고 있다. 정말 필요한 교육은 대학에 가서 배우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무교육의 의미가 사라진 것이다. 이 가운데 제대로 된 성교육이 학교 속에서 비집고 나올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졸업한 뒤엔 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