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파견지원사업을 통해 하자에 오게 된 5명의 예술인, 그 중 싱어송라이터인 띠용(신승은)은 6명의 청소년과 함께 자기의 이야기를 노래로 기록하는 송라이팅 워크숍 <부르는 일기>를 6회에 걸쳐 진행했습니다. 그 워크숍에 참관한 예술인 퍼실리테이터 11(김지연)이 섬세하게 적어 내려간 <부르는 일기>의 일지와 <부르는 일기>를 통해 참가자들이 만들었던 노래를 공개합니다. (일지는 1회에서 4회까지의 기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워크숍 진행자 띠용과 참가자 나무
<부르는 일기> 첫째날. 2018년 9월 18일
화요일 저녁 6시 반. 하자의 스튜디오301로 기타를 맨 이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가파견사업을 통해 하자센터에 오게 된 싱어송라이터 신승은(이하 띠용)의 <부르는 일기> 워크숍에 참여하러 온 청소년들이다. 조금은 어색했던 첫 대면은 이내 참여자들의 닉네임과 짧은 소개로 부드러워졌다. 이번 워크숍 공지를 보고 하자센터에 처음 오게 된 비누와 지구, 소행단 멤버이자 이번에 재밌는 곡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왔다는 호, 관악라디오에서 디제이를 했던 벌새, 노래는 미지의 영역이지만 일기쓰는 걸 좋아하는 하자 10대연구소의 나무.
띠용은 간결하지만 확신있는 말투로 말했다.
”곡 만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노래만들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남 흉내내지 않기,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지 않기에요. 폼나보이는 언어를 따라하게 되면 자기 말로 자기 얘기를 못한다고 생각해요. 글씨체처럼 목소리도 다르고. 말투도 다 다르죠.”
"하고픈 얘기가 있을 때 리듬에 맞춰, 박자에 맞춰 말하기를 습관화하다 보면 편해요. 하다보면 되게 쉽습니다.“
이어 같은 코드를 반복하면서 여섯 명이 돌아가며 노래를 이어 불러보았다. 한 소절씩 즉흥적으로 노래를 이어 부르는 식이었는데, 자연스러우면서도 우연적으로 노래가 형성되는 경험에 모두들 신기해했다.
<부르는 일기> 둘째날. 2018년 9월 27일
비누가 지난주 첫 워크숍이 끝난 날 집에 가는 길에 피곤한 심신으로 가사를 썼다고 했다. 낭독을 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호가 기타를 잡고 즉흥으로 치기 시작했다. 비누와 호의 호흡은 놀랍게도 잘 맞았다.
“녹음을 왜 안 했지!!”
“소름끼쳐요. 이렇게 잘 풀릴지 몰랐어요. 노래 이렇게 만드는 거군요. 아 대박이다... “
참여자들은 비누의 노래에 눕고 싶다, 침대는 나의 배터리, 종이인간 등의 제목을 제안했다.
나쁜 애 by 비누
왜인지 어릴 때부터 착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을 가지고 살았는데요, 아마 누군가에게 미움 받기 싫어서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그런 마음이 제 스스로를 무척 갉아먹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그때부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착한 척을 관두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곡이에요. 또 세상에 저와 같은 분들이 굉장히 많을 것 같다고 느끼구요. 그런 분들에게 바칩니다, 모두 나쁜 애가 됩시다!
돌아가며 서로의 작업물을 들려주는 시간을 가졌다. 지구는 친구와 맛집에서 마라탕을 먹었고, 호는 친한 친구와 한강 잔디밭에서 오랜 친구와 기타곡을 주거니 받거니 했던 이야기, 나무는 약간 실패로 끝난 엄마와의 명절탈출 이야기, 벌새는 약을 사렸는데 지갑에 3만원밖에 없었던 일화, 비누는 넷플릭스와 우정링에 대한 노래를 지었다. 띠용은 서로 가사를 지어 부르는 것을 들으니 각자의 말투로 말하고, 또 각자 만든 노래의 구조나 배치도 다른 것이 흥미롭다고 얘기해주었다.
<나 그대를> by 지구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 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 이름이 무뎌질 즈음에 그대를 잊을 수 있다.
<널 좋아해> by 지구
너를 너무 좋아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을 때가 있잖아요 답답한 마음에 한 번 마음을 털어놓아봤어요.
<부르는 일기> 셋째날. 2018년 10월 2일
오늘은 3가지 주어진 코드 중 하나를 골라서 30초정도 되는 노래를 만드는 활동을 하기로 했다. 각자 가사를 직접 쓰는데 주제는 ‘나의 변화’이고 제목은 각자 붙이면 좋겠다고 했다. 개인 작업 시간이 주어지자 각자 편한 방식으로 골몰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자기 노래를 만드는 시간 동안 손도 입도 눈도 움직였다.
얼마가 지났을까. 띠용부터 시작했다.
“동물의 내일 같은 것. 아빠의 반성 같은 것.”
“인류의 미래 같은 것. 엄마의 다음 생 같은 것.”
호의 노래에서는 환절기 느낌이 났다. 띠용은 호가 노래가 전개되면서 주법을 처음과 달리 바꾸자 바람이 확 부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환절기 by 호
환절기는 두 계절 사이의 화자가 그 무렵 느꼈던 것에 대한 노래입니다. 지나가는 것과 다가오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주세요.
나무는 낭송을 했다. 글의 제목은 ‘꼭 행복했으면 하는 친구’였다. 나무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낭송으로 시작해서 노래로 이어지는 아주 자연스럽게 경계가 없어지는 목소리의 움직임이 연상되었다.
꼭 행복했으면 하는 친구 by 나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친구의 삶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다들 자기 차례가 되니 떨리고 긴장된다고 했다. 비누는 띠용의 기타반주를 타고 불렀다. 이어 우엉은 ‘데덴찌’, 지구는 ‘표정’을, 보나는 ‘일기장’을 불렀다.
om11시 by 우엉
꿈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사람들에 관한 노래입니다. 김선우 시인의 <나들의 시 om11시>라는 시가 있는데, 제가 그 시를 읽을때 떠오르는 이미지와 가사의 이미지가 겹쳐서 제목을 따왔습니다.
<부르는 일기> 넷째날. 2018년 10월 11일
벌새가 ‘속에서’라고 제목붙인 짓고 있는 노래의 가사를 들려주었다. 벌새는 본인이 쓴 노래가사가 모두 우울한 정서라서 관객들이 너무 쳐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는데 오히려 띠용은 우리는 누군가를 즐겁게 하려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속에서 by 벌새
항상 전 우울과 함께였습니다. 그래서 곁에 무엇인가가 항상 같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우울에서 헤어 나오면서 무엇인가가 항상 같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느낌을 표현한 노래입니다.
한명씩 정성스럽게 한명씩 음악을 듣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서 띠용은 이렇게 말을 꺼냈다. “저한테도 그냥 놔둔, 머리카락 한 가닥 빠진 걸 안 치운 것 같은 노래가 있어요.” 그리고는 한 호흡으로 한 주의 일들을 노래에 실어 불러주었다. “최근에 있었던 일들로 가사를 썼어요. 오늘 느낀 걸 한번 부르면 기분이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아, 내가 왜 이렇게 힘들고 아프지? 그러는데 ‘당신 감기야’ 그러면 좀 나은 느낌. 이빨이 왜 이렇게 아프지 하는데 고개를 들어서 충치를 본 것 같은 느낌. 조금 개운한 느낌이 있더라고요. 노래하는 거가요.”
띠용의 이 말들은 한 문장 한 문장 매우 기억하고 싶어지는 문장들이었다. 띠용이 첫날 워크숍에서 좋은 노래, 노랫말을 지으려면 자기 상태를 잘 알아야 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