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행이 이후에 도리어 복이 된다는 뜻의 ‘전화위복’이라는 사자성어 보다는 ‘새옹지마’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도망쳤던 노인의 말이 암말을 데리고 돌아오고, 그 말을 타던 노인의 아들이 다리를 다쳤는데 그 덕분에 징집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이야기. 눈앞에 보이는 결과만 가지고 일희일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지만 나에게는 흥미로운 세상사를 보여주는 네 글자로 다가온다.
의욕 없이 수업에 참가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게임 초반에서 참여자들이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하러 나서기 시작했을 때에는 ‘전화위복’이 되었구나 싶었다. 드디어 학생들이 게임의 주도권을 잡고 신나는 리듬을 타면서 클라이막스로 향해 갈 것을 기대하였다. 이때부터는 진행자들은 할 일이 없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위기들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흥미롭게 살펴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현재 게임 내의 상황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네 개의 가상국가 중 가장 가난했던 치킨나라의 대통령이 부유한 강국인 CNLS와 연맹을 맺어 CC연합을 만들고, 석유자원이 풍부하고 무기가 많지만 가장 참여의욕이 없고 소심한 성격의 내각구성원을 지닌 나나라의 주권을 양도받아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로 했었다. 네 개의 국가 중 나머지 한 나라인 저리가나라는 두 번의 쿠데타를 겪고 내각이 초토화 되어, 구성원들은 세계은행으로 편입되고 유엔에게 위임통치를 요청하게 되면서 국가 이름을 어서와나라로 바꾸어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특히 이 모든 행보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 온 치킨나라의 대통령은 지난 시간 더 이상 세계 연합이 아닌 위기해결에 집중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가 있었다.
이제 앞으로 평화롭게 위기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다음에 모여 진행한 게임은 어서와나라에 대한 연합국의 맹공격이 중심이 되었다. 발단은 여러 위기 중에서도 미해결 시 가장 결과가 끔찍한 ‘지구온난화’ 문제였다. 각 국가마다 대체 에너지인 수소연료전지공장을 5일 안에 15씩 마련해야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데, 문제는 이 기술 이전은 특정한 한 나라에서(여기서는 치킨나라)만 가능하며 그 비용이 막대하다는 데에 있다. 초기보다 무조건 국가 자산을 늘려야 승리하는 게임에서 투자하기 만만치 않은 비용이기는 하지만 실행하지 않을 경우 전 지구에 재앙이 닥치게 되는 문제이다.
유엔의 위탁통치를 받고 있는 어서와나라에게 수소연료전지공장 구입이 부담이라는 것을 눈치챈 치킨나라 대통령이 연합국의 소속이 된다면 저렴한 가격에 기술을 이전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를 협박이라고 느낀 유엔과 어서와나라에서는 최후에는 무료로 수소연료전지공장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에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하며 연합국 가입을 거부하였다.
안녕하세요. 어서와나라 총독이자 UN 소속인 OOO입니다. 저는 최근 CC 연합의 행보에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지구 온난화라는 매우 중요한 이슈가 지금 우리 코앞에 들이닥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위급한 상황에 CC 연합은 서로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사실상 한 개의 나라로 병합하는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거기다 내각이 붕괴되고 영토만 남은 ‘나’나라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주권을 가로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거의 유일한 단체와 국가인 UN을 CC 연합에 들어오라고 권하는 척하고 있죠.
들어오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취하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국주의적 발상은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입니까?
저희는 이러한 CC 연합의 행보에 유감을 표합니다. 저희는 반평화적인 CC 연합에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CC 연합을 해체하고 평화적인 관계를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결국 끝까지 연합국의 제안을 거절한 어서와나라는 막대한 공격을 받아 국토가 초토화되면서 서쪽은 치킨나라, 동쪽은 CNLS에게 점령 당하고 강제로 수소연료전지가 배치되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쓰나미가 어서와나라에 닥쳐 3개의 수소연료전지공장은 날아갔고 결국 지구온난화 문제의 해결은 또 하루가 미뤄지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주도했던 치킨나라의 대통령은 차츰 독재자라는 칭호를 듣게 되었다. 위기해결에는 누구보다 앞장서지만 그 과정에 있어 권력과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동시에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연합국 각 대표들이 모여 민주적인 절차로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게임 내 모든 나라들이 하나가 되었을 때에는 각 지역의 대표들도 민주적으로 선출한다는 원대한 꿈까지 가지고 있었다. (게임 초반에는 각 국가와 기관의 대표들은 진행자가 사전 설문을 통해 지목하는 방식) 그러나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누군가에게는 강압적이나 독단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주도적인 한 명이 게임을 이끌고 나갈 때 발생하는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역할이 축소된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 문제를 억지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이후에 남은 문제들도 아직 산재해 있는 상태에서 한 사람이 그 모든 것을 다 책임지고 맡기에는 벅찬 일임에 분명한 일이다. 위기들이 하나 둘 해결되고 게임은 잘 돌아가는 듯 보였지만 또다시 역할과 동기를 잃어버린 참가자들이 늘어난 상태가 되었다.
연합국의 탄생에 잠시나마 행복한 기대를 가졌던 나의 마음에 다시 한번 ‘새옹지마’라는 말을 새겨 넣었다. 오늘의 이 충격과 아쉬움도 내일의 어떤 자양분이 될지 한번 더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