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모두는 정원사이다. 올해 허브텃밭단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연초 텃밭단을 모신다는 공지 글을 보고 ‘허브텃밭단’이 허브를 키우는 곳으로 여겨 얼른 신청서를 냈다고 했다. 그런 그녀는 공유카페에 있던 <게릴라 가드닝>이라는 책을 발견하곤 ‘꺅, 이 책이 있다니’ 소리쳐 좋아라 하며, 도시 자투리땅에 식물을 심는 것이 또 하나의 꿈이라 했다. 때마침 휭하니 비워있던 원형텃밭, 허브를 가꾸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 망연자실하던 모두는 올해 내내 원형정원을 돌보고 가꾸고 있다.
자, 이제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모두의 정원” 식물들은 계절마다 계속 다른 꽃들이 피고 지며 뽐냈다. 계절의 맛과 색, 느낌이 각양각색이었다. 몇 가지 식물만 소개하면, 원형 중앙에는 봄에 새하얀 꽃이 귀엽게 피어준 병아리꽃나무가 자란다. 장미과 관목으로 가을이 되니 까만 콩처럼 생긴 씨앗이 맺혔다. 옆에는 수수꽃다리다. 물푸레나뭇과의 관목인 수수꽃다리는 “미스김 라일락”이라고 불리는 한국이 원산지다. 봄에 연보라색 꽃이 피고, 향이 좋다. 이주해오면서 가지치기를 했더니 올해에는 예쁜 꽃을 보지 못해 아쉽다. 새로운 가지들이 많이 올라왔으나 비좁은 탓에 눈물을 머금고 가지들은 솎아주었다. 그래도 남은 가지에서 잎이 풍성히 나와 가을이 되자 단풍이든 이파리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오후 4시의 식물” 이라는 별명이 있는 억새는 빛을 가장 많이 받고 석양을 배경으로 감상할 수 있는 서쪽에 심었다. 벼과 식물로 품종명은 그라실리무스이다. 봄여름가을겨울 길고 가는 선모양의 풍성한 이파리는 다른 식물들과 잘 어울리고 좋은 배경이 되어준다. 가을이 되면서 의외의 멋짐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녀석이다. 억새가 바람 부는 이 옥상에서 그 매력을 한껏 발휘한다.
억새주변에는 에키네시아를 심었다. 에키네시아는 추위나 더위, 가뭄에 강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약용식물이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이고 국화과에 속한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북미원주민들이 400년 이상 만병통치나 다름없는 귀한 허브로 여겨왔다고 한다. 감기나 독감, 폐렴, 기관지염은 물론 크고 작은 상처부터 홍역이나 볼거리 등의 전염성 열병이나 치통에도 사용했단다. 신대륙에 처음 정착한 이민자들이 혹독한 풍토병으로 고생하다가 인디언들이 권한 에키네시아를 복용한 후 그 효능이 유럽과 서구사회에 전파되었다한다, 에케네시아라는 이름은 꽃 중앙의 꽃수술부분에서 가시가 비죽비죽 돋은 성게 같아 그리스어로 성게를 의미하는 echinos에 유례한 Echinacea 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효능만큼이나 키도 크고 꽃의 형태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식물인데 모두의 정원에서도 오랜 동안 아름다운 꽃을 피워주었다. 마른 꽃도 억새와 잘 어우러진다.
남쪽화단에서 햇볕을 잘 받고 자란 큰꿩의비름도 통통한 이파리가 독특해 텃밭식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가을엔 핑크색 꽃으로 즐거움을 주었다. 여름 휴면기에 들어간 식물도 있다. 땅속뿌리로 겨울을 나는 키 작은 앵초와 향후록스, 튤립은 이른 봄 차가운 땅을 뚫고나와 귀여운 잎과 꽃으로 생명의 위대함을 말해줄 것이다. 언제인지 숨어있던 씨앗으로 초가을 존재감을 드러낸 메리골드도 예기치 못하게 가을정원을 아름답게 해주었다.
모두의 정원에 자라는 식물은 작건 크건 지금의 모습에 다 이유가 있다.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살아 남을수 없다는 걸 잘 알고 각자의 자리를 잡고 피고 진다. 생명체들은 모두 위대하며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 살아줘서 또 고맙다.
추운 바람이 불고, 눈이 오는 어느 날, 모두의 정원에 숨겨진 녹색동물들의 숨결을 느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