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명이 8~20주에 걸쳐서 세계의 50가지 위기들을 해결하는 게임. 각자 나라를 정하고, UN, 세계은행, 무기상인 등의 역할도 정한다. 나라마다 자원과 인구상황이 다르다. 4개의 층(게임에서는 아크릴판)이 있고 우주, 하늘, 지상, 해저로 나뉜다. 모든 위기들을 해결하고, 모든 나라들의 경제 상태가 시작할 때보다 나아지는 것이 목표다. 누군가 소수의 병력으로 전쟁을 일으킨다든지, 나라들을 서로 이간질하는 방해꾼도 있고, 우연적인 요소로 날씨의 여신이 존재하는 등 정말 복잡한 게임이다.
[2015.12.08. 더 플랜B] 3차원을 향해, 사회적경제 - ⑦ 세계평화를 위해 게임을 만드는 파코루도(Paco Ludo) 중 발췌.
하자에서 세계평화게임을 삼 년째 진행해 오면서 참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왔다. 그러면서 적잖이 당황한 적도 많았고 깊은 고민에 빠지게 하는 문제들이 매번 있었다. 언제나 가장 큰 고민은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였다. 사실 세계평화게임은 얼마나 명민한 학생들이 참가하느냐에 승패가 달려있지 않다. 뭐든 그렇겠지만, 참가자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세계의 위기들을 해결하고 싶어하는지에 따라 -때로는 여러 번 진행해온 내가 볼 때에도- 감탄할 만큼 훌륭한 해결책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학생들은 혹여 위기 해결에 몰두하지 않더라도 하자에 와 있는 시간만큼은 마음껏 게임을 즐기고 갈 수 있다.
반면에 비자발적으로 참여한 학생들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고 불만이다. 나아가 다른 참가자들이 게임을 진행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것이 잡담을 나누면서 집중을 떨어트리는 일이든, 협상에 아무런 의지를 보이지 않는 일이든. 이런 학생들은 언제나 있어왔지만 이번 그룹은 문제가 다른 때보다 해결이 요원해 보였다. 어쩌다 보니 가장 의지가 없던 학생들 4명이 같은 나라가 되었고 그 중 2명은 같이 온 친구조차 없어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나마 4명 중 한 명은 적극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자국을 파멸하는 쪽으로 진행을 하고 있었다.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 나라 구성원들은 게임에 참여를 하지 않았고 나의 고민은 점점 깊어졌다. 설상가상으로 협상에 비협조적이었던 그 나라를 나머지 세 나라가 연합으로 총 공격하면서 안 그래도 없던 그들의 의지는 더욱 희미해 졌고 나머지 참가자들은 위기 해결보다는 전쟁에 집중하였다.
여기서 잠깐, 세계평화게임에서 진행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행동을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바로 게임에 ‘개입’하는 것이다. 진행자로서 얼마나 개입을 해야 될지 가장 고민하게 되는 것이 바로 위와 같은 경우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이라면 참여한 청소년들이 그 프로그램을 통해 목적한 어떤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이 게임은 진행자의 그런 태도를 경계하고 오히려 그 ‘바람직함’이란 것이 무엇인지 참가자 스스로 찾는 것이 목적인 게임이다. 진행자의 몫은 참가자들 안에 이미 그런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믿고 그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구를 제공하는 것뿐이다.
게임 참가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두 가지 있는데 첫번째는 “이렇게 해도 돼요?”이고 두번째는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요?”이다. 그럴 때 이야기 해주는 것이 게임 내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이 세가지 원칙이다.
1. 실현 가능하고(또는 논리적으로 말이 되고)
2. 그에 대한 비용을 지불 할 수 있고(비용은 꼭 돈이 아닐 수 있다)
3.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아무리 이 원칙들을 강조하고 반복해도 ‘정답’을 찾는 것에 익숙한 학생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 해결책이 혹시나 틀렸을까 확인을 받고자 한다. 그럴 때마다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마음을 다잡고 세가지 원칙을 다시 이야기 해준다. 그럴 때면 매번 훌륭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해결책을 들고 와서 나를 놀라게 하는 경우도 꽤 많다.
중등 자유학기제: 공공진로학교 세계평화게임 with 파코루도, 문래중학교
이번 고민도 마찬가지였다. 그 4명의 학생들을 억지로 게임에 참여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는 일이었고 그렇다고 마냥 아무것도 안하고 게임을 망치도록 둘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이들을 열외로 두고 다른 참가자들을 그림으로나 글로나 기록하도록 하는 대안까지 마련했었다. 너무도 답답한 마음에 이 학생들에게 몇가지 제안을 하는 우를 범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모두가 협력해 나는 생각 하지도 못했던 해결방안을 가지고 왔다.
그나마 조금 의지가 있던 두 명의 학생들은 유엔에 들어가 새로운 역할을 맡고, 가장 말이 없고 참여 의사가 없던 두 학생만 남았던 국가는 다른 국가들이 연합을 만들고 이들의 주권을 넘겨 받아 대신 위기들을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모두의 파멸 대신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의 몫까지 서로 나눠 가진 상태로 지난 주 수업이 끝났다.
세계평화게임을 진행하면서 진행자인 내가 오히려 더 많이 배우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위기 해결이 위탁 통치의 주된 목적이 아니라 자원과 군사의 공유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이제 앞으로는 전쟁이 아닌 위기해결에 집중하겠다는 한 대통령의 약속이 어떻게 지켜질지 걱정보다는 기대가 커진 세계평화게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