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단체연합의 초청으로, 9월 15일 <우리는 매일 학교를 바꾼다-차별과 싸우는 십대 여성 이야기> 행사의 발제자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정신없이 준비했던 터라, 발제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의 라운드테이블만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곳은 하자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하자에서 제가 여성청소년으로서 겪는 차별 경험을 이야기하면, 놀란 반응을 보이는 청소년들이 종종 있습니다. 특히 어릴 때부터 하자에서 활동해왔고, 부모님 역시 하자의 가치관에 동의하는 청소년들의 경우 더더욱 놀라곤 합니다. 그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사회는 나이 차별, 성차별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실 사회에 더 많이 몸담고 있는 저와는 조금 다르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행사에서 만난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대신, 현실의 차별과 싸우는 방법으로 그만의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과 함께했던 라운드 테이블은 저에게 위로였습니다. 같은 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그 자체에서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또,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스쿨 미투를 외치고 있는지 보며, 제가 앞으로 행동해 나가야 할 방향성도 보았습니다. 하자에서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보며 희망을 얻었다면, 이곳에서는 현실을 직시하며 지금 당장 실천해 나가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사회, 그리고 현실사회를 모두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새로운 페미니즘 목표가 생겼습니다. 10년 후에 나의 페미니즘은 이런 모습에 좀 더 가까워져 있을까요?
아래는 발제 전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청소년 페미니즘 교육, 왜 필요한가?’ 발제를 맡게 된 후기 청소년, 달(장유정)입니다.
혹시 이 중에서 페미니스트 계시나요? (대답 듣고, 손을 들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렇다면, 여러분은 성차별주의자입니까?
페미니스트라는 용어를 떠올리면 우리는 뭔가 열 띄게 운동하고 화가 나 있고,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선 이미지를 떠올리죠. 그래서 선뜻,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기가 꺼려져요. 그런데,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나는,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예요.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는 거죠. 그럼 다시 여쭤 볼게요. 이 중에서 페미니스트 계시나요?
이렇게 페미니즘이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뉴스에 나오는 소수의 자극적인 집단이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사실 이들은 페미니스트의 한 갈래일 뿐, 페미니스트의 대표는 아니에요. 페미니즘도 다른 여타 학문처럼 여러 갈래가 있고, 각자의 페미니즘이 다 다르거든요. 이런 것처럼,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가 굉장히 많아요. 때문에 인터넷상에서 남녀가 대립하여 무의미한 논쟁을 벌이는 상황도 자주 일어나죠. 이런 상황들을 넘어서, 우리가 보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저는 ‘청소년 페미니즘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내가 잘살기 위해서. 그리고 둘째,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먼저 첫째로 내가 잘 살려면, 페미니즘 교육이 꼭 필요해요. 누군가가 나에게, 사회의 잘못된 관습을 들이대며 지적할 때,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요. 저는 여고를 다녔지만, 남녀공학을 다니던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자주 들었어요. “오늘 우리 학교에 어떤 남자애 엄마가 전화했어. 자기 애가, 친구들이랑 여자 선생님들 치마가 너무 짧아서 공부에 집중이 안 된다고 했다는 거야.” 여기서 이상한 점은 뭘까요? 여성의 옷차림을 단속할 것이 아니라, 남학생을 단속해야죠. 여성의 몸에 폭력적인 시선을 보내는 그 남학생이 잘못된 거잖아요. 이건 성폭행 사건이 벌어졌는데 여성에게 ‘네가 강간당할 만하게 입고 다녔네’라고 말하는 거랑 같은 거예요. 그런데 저는 청소년 시기에, ‘여자를 보면 무조건 반응하는 것이 남자의 본능이다. 그러니까 너희가 스스로 몸가짐을 단정히 해라’라는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예요. 그래서, ‘내 옷차림이 아니고, 저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된 거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데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이런 것처럼, 저는 청소년기에 성차별적 교육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왔기에, 우리 사회에 차별이 만연해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리고 그런 것들이 차별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제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이전의 저처럼 차별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었거든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같은 대학교 친구들과 대화를 하는데, 한 남자 친구가 ‘그런데 여자가 꾸미는 건 본능 아니야? 남자보다 확실히 꾸미고 싶어 하는 유전자가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그 친구가 잘못됐다는 것을, 사실은 사회에 여성에게 꾸밈 노동을 강요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함께 이야기하고 있던 친구들이 그 친구의 이야기에 동조하는 분위기였거든요. 제 또래들은 페미니즘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담론이 등장하면, 대부분 차별적 가치관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곤 합니다. (개인적으로 페미니즘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데 하자센터는, 제가 경험하던 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어요. 하자에서는, 청소년들이 함께 페미니즘에 대한 자료를 찾아 공부하고, 개인의 페미니즘 이야기(본인의 탈코르셋 경험)를 공유하고, 또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열 띈 논의를 하기도 합니다. 사회의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평가하며 개선점에 대해 논의하기도 하고, 남성의 입장에서 바라본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물론 부족한 점이 많지만, 저는 이렇게 담론의 장이 생긴다는 것이 정말 좋았어요. 때로는 저희 안에서 대립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여성 인권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연대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거든요. 그리고 저보다 어린 청소년들을 보며, 부럽기도 했어요.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정말 충실하게, 남성우월주의적 시선을 내면화했거든요. 그래서 페미니즘을 많이 공부했지만,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코르셋을 씌우기도 하고, 타인에게 차별적인 말을 내뱉기도 합니다. 20년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이니까요. 그런데 지금 하자에서 함께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이런 페미니즘 공부를 어렸을 때부터 해오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사회적 억압에서 자유로울 수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청소년기에 페미니즘 교육을 통해, 사회의 차별에 대해 인식하고, 또 개인의 페미니즘을 만들어 가는 시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우리는 매일 학교를 바꾼다-차별과 싸우는 십대 여성 이야기>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저는 약 1년 전만 해도, 자아존중감이 굉장히 낮았어요. 내 몸과 얼굴에 대해 꽤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화장을 안 하거나, 날씬해 보이도록 옷을 갖춰 입지 않은 날에는 하루 종일 위축되어 있었어요. 꾸미지 않은, ‘진짜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외모에 대한 열등감으로 나 스스로를 갉아먹기 시작했고, 저의 자아존중감은 바닥을 쳤어요. ‘내가 여성성을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내가 성적 매력이 하나도 없으면 어떡하지?’, ‘저렇게 예쁘고 날씬한 사람이 많은데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지?’ 그때는, 하루 종일 이런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아무도 나에게, ‘그냥 진짜 네 모습을 사랑해라’ ‘혹은 외모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주지 않았거든요. 제가 자아존중감이 낮아졌다는 고민을 털어놓으면, 대부분 이렇게 말했어요. ‘그럼 좀 메이크업을 진하게 해봐.’ ‘그럼 내가 옷을 선물해 줄 테니까 그 옷에 맞춰서 다이어트 해봐.’ 지금은, 페미니즘 많이 접하고, 탈코르셋을 실천하는 여성들을 보며, 자아존중감도 많이 회복했고, 용기를 얻었어요. 꾸미지 않을 자유를 갖게 되면서, 꾸밀 자유도 갖게 되었어요. 내가 원하는 때에만 꾸밀 수 있게 된 거죠. 또, 예쁜 것 말고 편한 것을 먼저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외모에 대해서 관심이 줄어들었어요. 예전에는 저 스스로 꾸밈에 집착하면서 동시에, 남에게도 코르셋을 씌웠거든요. ‘예뻐야 한다’는 코르셋을요. 그래서 남에게 칭찬할 때에도, ‘너 통통해도 예뻐’, ‘눈 작아도 예뻐’라는 말들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건 코르셋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만, 동시에 그 코르셋에 얽매이는 거더라구요. 그래서 이제는 외모에 대한 언급 자체를 안 하게 되었어요. 외모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어진 거죠. 이렇게 저는,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자아존중감도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되었고, 코르셋을 하나둘씩 벗어 던질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종종, ‘내가 페미니즘을 좀 더 일찍 접했더라면 자아 존중감이 높았을까?’, ‘내가 혼자 공부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이런 것들이 잘못되었다고 알려줬으면 더 좋았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왜냐하면, 저는 이런 것들을 혼자 깨닫게 된 만큼, 나를 조이고 있는 코르셋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까지, 그리고 이것을 벗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그리고 실제로 탈코르셋을 실천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요. 매일 마주하는 엄마, 그리고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지하철의 광고판까지도 모두 나에게 코르셋을 씌웠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구나’, ‘나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구나’라는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의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해요. 나 홀로 고통스럽게 코르셋을 벗어 던지는 대신, 누군가가 ‘꼭 예쁘지 않아도 돼’라는 말로 내 코르셋을 벗겨줄 수 있고, 또 친구들과 함께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둘째는, 내가 잘살려면,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사회가 변해야 해요. 잘못된 사회에 굴하지 않는 자존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예전의 ‘나’같이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그리고, 내가 일상의 차별을 견딜 수 있는 마음을 길렀다는 것은, 임시적인 해결책일 뿐이잖아요. 궁극적으로 우리는 잘못된 사회를 바꿔서, 내가 내 마음을 단련할 필요가 없어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경험하는 차별은 사회의 억압,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이지, 남자만이, 혹은 어른이 행하는 차별이 아니에요. 이 사회의 관습을 배우고 자란 모두가 행하는, 동시에 모두가 경험하는 차별이죠. 그래서 우리는, 모두 함께 공부해야 하고, 함께 연대해 나가는 힘을 길러야 해요. 함께 여성의 입장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현재의 페미니즘 운동의 의의는 무엇인지 잘못된 방향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제대로 아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회의 차별에 홀로 끙끙 앓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담론이,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공부해 나가며, 연대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청소년 페미니즘 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발제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