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덥던 올 여름, 모르는 번호로 한 통의 연락이 와 있었다. 간간이 이름만 듣고 알았던 하자센터의 판돌 네모였다. 작년 교내에서 진행했던 디자인 스터디의 작업물을 인스타에서 보시곤 ‘이번 가을에 완공되는 디자인 공방에 전시해보면 어떨까요-’ 하는 내용이었는데, 일 벌리기 대장인 나는 ‘그것도 좋지만 다른 재밌는 거 해보는 건 어떨까요-’ 하며 장난스레 되받아쳤고, 그렇게 ‘젊고 용감한 워크숍’의 첫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하자센터 디자인공방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 했던가. 숨 가쁜 삶의 현장에 나가기 전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그렇기에 더 용감할 수 있는 디자인 학도들을 이번 워크숍을 통해 만나보고 싶었다. (그렇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던 네이밍은 여기서 가져왔다) 기획에 대한 구상을 하면서, 이런 모임을 참가자로서만 대해봤지, 주도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지라 간헐적으로 참여했던 경험들을 주욱 나열해보기로 했다. 근데 막상 돌아보니 대부분 일정도 단발적이고, 끝나고 나면 작업물은 남지만, 사람이 오래 남지는 않았던 것 같아 그 아쉬움이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첫 번째로 삼은 목표점이 바로 학생 디자이너들 사이의 반영구적인 네트워크 구축이었다. 네트워크라 하니 뭔가 엄청나게 거창해 보이지만, 좀 더 정확히는 ‘놀이터’의 개념이 어울릴 성싶다. 어릴 적 아파트 단지에 있는 놀이터에 늦저녁만 되면 장난감 하나씩 들고 삼삼오오 모여 놀고 그랬지 않나. 여기서 우리는 장난감이 디자인이고, 놀이터는 워크숍. 그런 게 됐으면 했다.
젊고 용감한 워크숍 아카이브전 : 작당모의 2018
두 번째 목표점은 대안적 작업방식에 관한 탐구와 커리큘럼 개발에 대한 실험이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내게 디자인은 조몰락거리며 시간 때울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장난감이다. 그래서 이번 워크숍에서도 ‘어떻게 하면 다같이 디자인으로 재밌게 놀 수 있을까’ 궁리하며 구글을 돌아다니던 중 정말 뜬금없이 술 게임 자료에서 눈이 멈췄다. 흥겨운 분위기 속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벌주에 온갖 음료들을 섞어 마시는 등… 미성년자인 내게는 이런 콘텐츠가 당연히 충격일 수밖에! 이쯤에서 함께했던 멤버들은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방금 말한 게임들은 실제 이번 워크숍에서 디자인을 매개로 했던 몇몇 프로그램의 근간이 되어준 액션들이다. 5 분마다 옆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매번 다른 디스플레이에 그래픽을 덧붙이는 ‘릴레이 프로그램’과 다양한 식재료들의 맛을 포스터로 표현하는 ‘미각의 시각화’ 등. 이렇듯 생뚱한 곳에서 그 유머를 끌어왔다.
이 외에도, 때로는 하나의 문장을 가지고 집요하게 파고 들어보기도 하고 (그들의 언어를, 우리의 화법으로), 하나의 단어를 가지고 다양한 관점으로 풀어보기도 하면서 (제약 프로그램) 개인의 사고와 표현을 보다 유연하게 잇고자 했다. 동시에 나는 다양한 방법론을 실험해볼 수 있으니 이는 워크숍인 동시에 하나의 리서치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젊고 용감한 워크숍 아카이브전 : 작당모의 2018
이렇듯 우리는 이 두 가지 태도를 안고 두 달간, 하자센터 신관 꼭대기 층에서 총 18 번의 모임을 만들어 나갔고, 더위가 한 풀 꺾인 구월 초에는 디자인 공방에서 《’젊고 용감한 워크숍’ 아카이브 전 : 작당모의 2018》을 열어 팀원들의 작업과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모두 준비에 있어서 많은 힘을 보태준 멤버들과 먼 걸음해서 찾아와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전시회였다. 아직까지 그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고 있다. 그렇게 모든 일정이 끝나고,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그간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이 서툰 글의 서두는 ‘디자인이 놀이가 될 때’가 차지했다. 평소 즐겨보는 그래픽 매거진의 17 호 타이틀인 ‘디자인이 태도가 될 때’에서 차용한 문장ㅡ재밌게도, 이 또한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이 1968 년 쿤스트할레 베른에서 열었던 전시 ‘태도가 형식이 될 때’의 타이틀을 약간 변형한 것ㅡ이다. 그래서 결론은, ‘디자인이 놀이가 될 때 어떤 일이 생기는가?’ 가 이 글이 시사하는 바 되겠다.
젊고 용감한 워크숍 아카이브전 : 작당모의 2018
음 글쎄, 아마 저마다의 답변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도 그렇게 묻는 이가 있다면, 난 굳이 지난 여름과 가을을 함께 보낸 워크숍 이야기를 주섬주섬 꺼내 들려주지 않을까 싶다. “유난히 덥던 올 여름, 모르는 번호로 한 통의 연락이 와 있었다…”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