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8일, ‘손으로 전하는 페미니즘’ 워크숍 이 있었습니다. 일상에서 쉽게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편지로 전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습니다. 약 스무 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편지를 쓰기 전 몇 가지 질문에 답하며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당신은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나요, 숨기나요?’, ‘추천하고 싶은 페미니즘 영화나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바뀐 생각이나 편견이 있나요?’ 에 관해 공유하며 서로의 온도를 맞춰 나갔습니다.
“저는 가정에서 딸로 자라고 있는데요, 엄마와는 크게 화낼 일 없이 대화가 잘 통해요. 그런데 아빠나 삼촌과 이야기하게 되면 이상하게 무시 받거나, 존중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어요. 그 즈음에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었는데, 묘하게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더욱 ‘페미니즘’에 관심 갖게 된 것 같아요. 나 혼자만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만은 아니었던 거죠.”
“솔직히 말해, 스스로를 굳이 페미니스트라고 정의 하진 않아요. 그렇지만 자연스러운 문화 속에서 페미니즘을 피부로 느끼고 있을 뿐 이예요.”
“제가 학교에서 여학생들에게 멋모르고 했던 행동들이 ‘여성혐오’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었어요. 여전히 주위 남학생들은 ‘페미니즘’이 말도 안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제는 배움에 대한 의무감이 들어요.”
“페미니즘을 만나기 전, 제 외모를 향한 눈초리와 잣대들이 모두 제 탓 인줄로만 알았어요. 이제는 내가 변하고, 나의 몸을 바꿔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페미니즘이 저에게는 은인과 같아요.”
“페미니즘 도서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그 중에서도 ‘82년생 김지영’, ‘여자 다운 게 어딨어.’, ‘발레 하는 남자 권투 하는 여자’를 추천하고 싶어요.”
편지를 쓰고 있는 참가자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후에는 각자 편지를 써 내려갔습니다. 누구에게 전하는 페미니즘 이었을까요? 자신에게 쓰는 편지부터 엄마, 아빠, 동생, 전세계에서 유일한 여성가족부,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까지 그 대상은 아주 다양했습니다. 워크숍을 마무리하고 가만히 앉아 쓰여진 편지들을 읽어보았습니다. 한 장 한 장을 읽어가며, 글자에서 전해지는 울림에 입을 다물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이 쿵 하고 떨어지고, 울렁거리고, 심장은 더 속도를 높여 뛰는 것만 같았습니다. 불편한 감정이었지만, 절대 부정적 이진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 ‘나는 페미니스트 입니다.’ 라고 발언하는 것을 너머, ‘우리는 페미니스트 입니다.’ 라고 외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왔고, 그 바람이 가까워졌음을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몇몇의 문장들은 거대한 감동으로 몰려오기도 하였습니다. 함께 그 문장들, 편지들을 정성껏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편지1
편지2
편지3
편지4
(편지1 요약)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난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도, 엄마에게 좋은 엄마가 되길 강요했던 것 같고, 당연하게 생각했어-난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 엄마가 힘들 거라 생각했어. 근데 엄만 오히려 아무 반응이 없었고, 익숙하다는 듯 이야기 했는데, 난 그런 엄마를 보며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나에겐 나의 삶을 살라며 이야기하지만, 엄만 엄마의 삶만 살고 있는 것 같네. 엄마, 우리 좀 더 못되게 자신을 사랑하며 살자.
(편지2 요약) 나에게 보내는 편지
혹시 너도 지금까지 각종 미디어에서 접한 편견을 알게 모르게 담고 살지는 않았는지, 모르는 사이에 페미니즘의 과격성과 수단의 자극성에 대한 면만을 바라보고 있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조금씩 동참에의 의지를 접어두고 멀어지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그러면서 또 깊이 알아보지 않은 채 아는 체 했던 것은 아닌지, 차별을 담아둔 기억은 없었는지 우리 한 번씩만 다시 생각해보자-지금 나의 페미니즘은 이런 거야. 이해와 배려를 통해 서로를 알아 나가야 하는 것, 욕설과 비방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인간 존엄과 실질 평등의 긍지-
(편지3 요약) 가까운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
-어째서 따뜻한 남성은 늘 환영 받는 거지? 조직문화를 바꾸고, 사람들을 이끄는 역할을 여성이고 약자인 저는 할 수가 없는 영역이라고만 생각해왔어요. 날카롭고 불만이 많고 감정적인 제 자신이 안타깝게 생각되는 순간이 많았어요. 아직도 부족하지만, 나에게 페미니스트가 무기가 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져봅니다. 어쩌면 좀 더 멋진 여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 사회 속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그러한 관계를 긍정하는 것에서 시작해 보려고요-
(편지4 요약) 누구에게든 보내는 편지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제는 눈을 떠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고 이것을 묵인할 수는 없다-불씨는 붙었으나, 아직은 불이 커지지 않았다-틀이 너무도 단단해서 잘 부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틀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고, 우리 스스로를 가둔 것이기에 우리 힘으로 부숴야 한다. 그 밖이 궁금하기에, 가둬져 있는 것은 불편하기에 나도 페미니즘을 알아가려 한다-
-
편지를 읽으며 공감하는 내용이 있었나요? 마음을 움직였다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위의 편지를 대신 전달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글이 아닌, ‘우리’가 전하는 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끝으로, 워크숍을 마무리하며 나눠주신 회고입니다..
“그동안 참여했던 젠더 관련 행사에는 여성 분들이 훨씬 많았어요. 그런데, 이번 워크숍에서는 성별, 연령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덕분에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다양한 가치관, 성장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직장에서 여성으로서 차별을 많이 받았어요. 여성 감수성의 조직 리더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요. 훨씬 젊은 시절에는 불편함을 느꼈는데, 어느 순간 저 조차도 사회의 문화에 적응 해버린 것 같았어요. 다시 한번 스스로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편들을 더욱 키워가기를 바랍니다.”
:: 글_장수(10대 청소년 때부터 하자와 연을 맺기 시작하여 파니, PM, 동아리원, 크루 갖가지의 이름으로 하자를 오가는 청년입니다. 현재는 강사로서 월 1회 릴레이 손편지쓰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