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레아와 찌루의 시선(詩選), 시선(視線)
시를 좋아하는 하자마을의 주민 레아와 찌루가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두 사람이 좋아하는 시를 함께 읽고
시인들의 고향을 이어놓은 지도를 보며
그들이 눈에 담았던 마을과
마음에 두었던 사람들을
함께 떠올려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자센터 신관 1층 카페 그냥에서 6월 22일부터 7월 20일까지 볼 수 있습니다.
* 시선
① 詩選 : 시 시 · 가릴 선.
② 視線 : 볼 시 · 줄 선.
레아의 시선(詩選), 시선(視線)
초대의 글: 내가 나고 자란 곳은 햇살 냄새 나는 지방 도시입니다. 시장가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수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생생하게 바다를 두고 전어를 씹어 먹으며, 강줄기를 따라 내려가는 신발 같은 것을 보며 십 육년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자주 울었습니다. 좁은 내 방에 누워서,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아기처럼 울었습니다. 상경을 했을 때 일입니다. 무정(無情)하게 나를 보고 있는 서울의 얼굴이 나를 잘 울게 했습니다. 시를 찾아 읽기 시작했던 것도 그래서입니다. 시에서 나는 나를 닮은 쓸쓸한 것도, 다정한 것도, 그리운 것도 볼 수 있던 것입니다. 시에 기대 위로 받으며 서울을 살았습니다. 내가 귀해 하는 시집 다섯 권을 읽으며 당신도 어떤 기억을 더듬고, 종내 시를 사랑하게 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남쪽의 맛 : 매서운 겨울의 초입에서 문득 내가 떠올린 것은 젊은 백석의 얼굴입니다. 곱슬머리를 멋지게 뒤로 넘긴 잘생긴 청년의 얼굴, 북방의 시린 바람을 맞으며 자란 단단한 얼굴.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광화문 거리를 걷는 그를 실제로 봤다면 나는 분명 그에게 홀딱 반해 밤잠을 이루지 못 했을 것도 같습니다.
내가 처음 그를 알게 된 것은 수라라는 시를 통해서 입니다. 선생님의 얼굴, 낭송하는 친구의 목소리 같은 것은 기억하지 못 합니다. 다만 늘어지는 교실의 공기, 아득하게 들려오는 매미 소리, 너덜너덜한 내 국어 교과서는 생각납니다. 평소, 시라면 질색을 하던 내가 수라는 아주 오래 읽었습니다. 그 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풍덩, 그의 세계에 내가 다이빙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평안도 방언으로 그리운 냄새가 나는 것을 불러왔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동네, 어떤 마을, 어떤 사랑, 어떤 풍경 같은.
특히 그는 여러 음식을 통해 말하는 것을 잘 했는데, 다름 아닌 그의 혀가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강렬하게 기억을 저장하는 기관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혀는 누군가의 입 속에서 그런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한 번 발음해보기로 합니다. 가자미, 국수, 나물, 동치미, 대구국… 평생 그를 이루었던 정겨운 것을 말입니다.
일주일 전 이사한 진관동에서 버스를 타고 조금만 더 가면 일산이고 파주입니다. 함박눈도 별 것 아닌 정주, 그의 고향도 이제 아주 멀다고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나는 그곳을 지나 왔을 바람을 맞으며 곰곰 생각해봅니다. 지금까지 나를 이루는 정다운 것을 말입니다. 할머니의 하얀 짐치, 말로 다 못 하는 모양을 하고 있는 아빠의 우쭈지, 엄마의 오십년 세월 된장국… 혀끝에 남아 있는 남쪽의 따스한 햇살 가득한 정경입니다. (2017. 11)
: 여러 종류의 울음소리 가운데, 나를 다 아프게 하는 울음소리는 단연 울음을 겨우 참는 신음 소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 4월이면 자주 듣는 소리입니다.
윽, 윽.
윽, 윽.
차마 토 할 수 없는 슬픔, 등허리를 말고 있는 슬픔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떤 말도 없이 두 손을 모으게 됩니다. 주먹을 쥐고 가슴을 치며 다른 밤을 보내는 사람을 생각하며 간절해집니다. 무사하기를, 무사하기를 하면서. 그런 날, 꺼내 읽는 시집입니다.
찌루의 시선(詩選), 시선(視線)
진은영 시인은 단어를 선물하는 사람이다. 한글이 지닌 고유의 신비로움이 고파질 때 나는 진은영 시인의 시집을 펼친다. 그 속에는 온통 보석 같은 단어들이 수놓고 있기 때문인데 가령, ‘달의 속눈썹’이나 ‘에메랄드 빛 커다란 눈망울’, ‘무감한 입맞춤’, ‘혀 위로 검은 촛농이 떨어지는 밤’. 진은영 시인이 건네는 황홀한 단어가 자꾸 자꾸 나를 살게 한다.
이천십팔년 오월에 나는 도시와 타인, 나 자신에게 지쳐 탈진 상태였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으므로 나는 지리산 자락 아래 산내면으로 도망쳤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하늘에서 별이 쏟아진다는 표현을 절감했고 넘실거리는 산자락이 아름답고, 방금 막 간 밭의 흙냄새가 내 몸 속 피를 돌게 한다고 느꼈다. 그곳에서 나는 자주 멈춰 섰고 멍해졌다. 입으로는 아 좋다라는 말만 연신 내뱉었다. 지리산으로 도피할 때 김소연 시인의 <수학자의 아침>도 함께 했다. 인월 장터 옆 작은 카페에서 <강과 나> 시를 읽었을 때 정말로 깜짝 놀랐다. 내가 산내면에서 마주한 풍경과 감정이 김소연 시인을 거쳐 글자로 변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나는 <강과 나> 페이지를 좍 찢어서 우체국에 갔다. 미래에는 또다시 도시에 있을 나에게 산내면이 그리워 질 때면 꺼내보라고 종이를 두 번 접어 편지 봉투에 넣어 보냈다. 산내면에 다녀 온 지 오늘로 딱 한 달째인데 벌써 여러 번 꺼내 읽고 말았다.
----
하자센터 신관 1층 카페 그냥에서 더 볼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