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할 밀, 볕 양. 볕이 빽빽하고 촘촘하게 든다고 하여 밀양이라 불립니다. 영남루에 앉아 햇빛을 담은 밀양강의 너울거림을 보면,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산이면 산, 강이면 강, 이야기면 이야기가 가득한 밀양으로 주말로드스꼴라 4기는 세 번째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 브리핑 시간에는 밀양의 독립운동가 김원봉과 윤세주, 박차정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원봉과 윤세주는 밀양에서 태어나 같은 학교를 다녔던 단짝 친구였습니다. 열네 살이던 김원봉이 일본 천황의 생일 잔치에서 일장기를 학교 변소에 꽂아 퇴학을 당할 때도 윤세주와 함께였습니다. 그들은 훗날 의열단의 중심 세력이 됩니다. 그들의 생애를 따라 조선의 무장투쟁사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또한 김원봉의 아내로 알려져있는 박차정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근우회, 의열단 등 단체에서 활동했던 그녀는 현재 밀양에 묻혀있습니다. 부산이 고향인 그녀는 왜 밀양에 묻혀있는지 여행지에서 함께 공부해보기로 했습니다.
피스모모에서 진행하는 젠더워크숍을 했습니다. 젠더란 무엇인지,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받았던 차별은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여성' 하면 떠오르는 행동, '남성' 하면 떠오르는 행동을 해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서로의 경험과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시선에 대해 고민해보았습니다.
주말로드스꼴라 3기 과정을 수료했던 떠별들이 4기 떠별들에게 밀양의 송전탑과 원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는 어디서 만들어지는 것인지, 밀양의 할머니들은 왜 10년 넘게 싸우고 있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전기 사용량을 보면 지역보다 수도권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높습니다. 과연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게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는 떠별들이 있었습니다. 떠별이 떠별에게 자신이 배웠던 내용과 경험을 들려주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밀양여행
밀양으로 가는 기차에서 떠별들은 '의열단을 찾아라' 미션을 했습니다. 의열단원과 순사로 역할을 나누고, 순사가 된 떠별들이 의열단원 떠별들을 찾아내는 미션이었습니다. 의열단원들은 순사들에게 들키지 않고 밀양역에 내리는 게 목표였습니다. 10분마다 의열단원의 특징에 관한 힌트가 공개되었습니다. 순사들의 추리력과 의열단원들의 연기력이 맞붙는 순간이었지요. 대부분의 의열단원들이 순사들에게 발각되었지만 그 중 의열단원 '들갑'은 밀양역까지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의열단원과 순사들의 에너지로 기차는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영화 ‘암살’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옵니다.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요.”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김원봉의 고향이 밀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밀양에는 독립기념관, 의열기념관 등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를 기억하는 곳이 많습니다. 의열기념관에서 김원봉의 조선의용대 창립 연설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얇고 또랑또랑했습니다. 글과 사진으로만 보던 김원봉의 음성을 들으니 그와 조금 가까워진 것 같았습니다. 김원봉은 3.1운동 이후 평화적인 방식으로 독립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무장 투쟁 단체들을 조직합니다. 그는 의로운 일을 열렬히 행하는 단체 ‘의열단’을 만듭니다. 의열단의 독립운동 방식은 암살과 파괴였습니다. 즉 테러였지요.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찰서 등에 끊임없이 폭탄을 던졌습니다. 중국공산당에서 활동했던 김산은 의열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매일 밤 프랑스 조계지에서 사격연습을 했고 수영, 테니스, 그 밖의 운동을 하며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했다. 심리 상태를 위해 오락을 하기도 했다. 그들의 생활은 명랑함과 심각함이 기묘하게 혼합된 것이었다.” 떠별들은 진지하고도 명랑했던 의열단의 발자취를 따라 밀양 곳곳을 여행했습니다.
주말로드스꼴라 4기에게 상황극 미션이 주어졌습니다. 팀별로 기억하고 싶은 여성, 남성 독립운동가 한 명을 정해 발표했습니다. 떠별들은 여행 전부터 인물들에 대해 조사하고 대본을 썼습니다. 연극, 시극, 토크쇼, 라디오와 같이 재미있는 형식으로 상황극을 만들었습니다. 남자현, 김일성, 부춘화, 장인환, 정명운, 동풍신, 이시영, 권기옥, 가네코 후미코, 이육사까지 다양한 독립운동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떠별들의 명연기로 현장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 박차정의 묘소에 찾아갔습니다. 묘소로 가는 길도 잘 알려지지 않아서 떠별들은 산을 올라 한참을 헤맨 끝에 무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관리되지 않은 무덤에는 한자로 된 비석과 꽃 몇 송이, 그리고 태극기 하나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박차정의 무덤은 쓸쓸해보였습니다. 떠별들은 길목마다 표지판과 지도를 만들고 무덤 옆에 열사에 대한 팻말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를 소개하는 문장을 정하기 위해 한 시간 동안 토론하고, 표지판의 걸음 수를 적기 위해 산을 오르락 내리락 했습니다. 서툴러도 애정을 담고, 마음을 담아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독립운동가에 대해 연극을 만들고, 그들이 기억될 수 있게 표지판과 팻말을 만드는 것. 주말로드스꼴라가 길 위에서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조선시대, 밀양에서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은 예림서원에서 공부했답니다. 떠별들도 그 기운을 받아 예림서원에서 최필숙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의 주제는 <밀양의 독립운동가>였습니다. 가장 기억 남는 것은 선생님이 독립운동사를 공부하게 되었던 계기였습니다. 최필숙 선생님은 마치 그것이 자신의 운명처럼 다가왔다고 하셨습니다. ‘빨갱이’ 김원봉에서 ‘독립운동가’ 김원봉이 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과 지난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담대히 해나가는 것. 마음에 깊이 남는 이야기였습니다. 강의를 들은 뒤에 떠별들은 서원의 뒷마당에서 왈츠를 추었습니다. 하나둘셋, 둘둘셋. 쿵짝짝, 쿵짝짝. 몸의 리듬을 맞추고, 호흡을 맞추고, 눈을 맞추었습니다. 푸른 잔디 위에 맨발로 서서 다함께 왈츠를.
평화하자, 레츠피스! 둥둥 북을 울립니다. 저 멀리까지 들리도록 북을 칩니다. 레츠피스는 밀양역 앞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북을 울렸습니다. 떠별들도 다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하나의 노래에 맞추어 하나의 동작으로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레츠피스와 주말 4기들은 밀양역에서 한반도의 평화가 오기를 희망하며 북을 치고 춤을 추었습니다.
떠별들은 여행의 마지막으로 일정으로 영남루에 올랐습니다. 영남루는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조선 3대 누각 중에 하나입니다. 누각에 올라 밀양강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떠별들이 배운 것은 ‘자신의 일을 담대히 해나가는 것’이지 않았을까요. 밀양의 독립운동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최필숙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떠별들도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당당하게 해나갈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