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중요한 장르인 ‘공연 예술’을 비대면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라는 질문으로 청소년 창작자로서 비대면 공연 예술에 대한 실험을 해왔습니다.
우리는 장르 없는 창작 공동체.
우리는 20세기 끝에서 주제 없이 태어나, 21세기의 장르를 파괴하고 있다.
우리는 우주를 떠돌던 말들을 채집해 우리의 공간에 데려온다. 그리고 떠든다.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한다.
- 김세보, 도장, 시소년, 힌글로우
‘줌(Zoom)대한 낭독회: 우리 모두의 A’ 프로그램에서는 창의서밋 첫째 날 우주여행당이 완성한 네 개의 이야기를 보며 참가자와 함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배역을 정하고, 캐릭터를 구축하는 워크숍을 진행하였고, 다음날인 창의서밋 둘째 날에 관객이 있는 온라인 낭독회를 진행하였습니다.
도장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활동이라니!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즈음, 우주여행당은 ‘글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주 1~2회 짧은 희곡, 소설, 시를 쓰고 Zoom을 통해 이를 공유하고 낭독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누군가 우리의 활동을 지켜보고 우리와 함께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제12회 서울청소년창의서밋에 ‘줌(Zoom)대한 낭독회’라는 세션 이름을 갖고 참여하게 됐습니다.
비대면 시대에 비대면으로 공연을 준비하고 비대면으로 공연을 하다니!
‘줌대한 낭독회’는 비대면 워크숍, 낭독회로 기획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우리는 “준비 과정도 비대면으로 진행하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우주여행당은 매주에 한 번씩, Zoom을 통해 낭독회의 주인공이 될 ‘A’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양한 재난 속에 처한 A는, 혹은 우리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습니다.
비대면으로도 소통할 수 있을까?
직접 만나지 않고 글만으로도 우리는 소통할 수 있을까?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 참여자들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우리의 궁금증은 ‘줌대한 낭독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한 열쇠가 되었습니다. 극장이라는 공간 밖에서 작가와 배우, 관객이 소통하기 위해 이야기에 집중했습니다. 우리가 만든 희곡들이 만난 적 없는 사람은 어떻게 느낄지 알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세보의 이야기
첫째 날. 배우들을 만나다
작가와 배우의 첫 만남. 지원서로 만난 인상을 직접 마주할 생각에 가슴이 두근댔다. 사전에 지원서를 읽으며 연극에 관심이 있다는 참가자들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는데, 우주여행당 4명의 구성원이 열여덟에 연극을 매개로 서로를 처음 알게 된 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워크숍 당일, 희곡의 첫인상과 마음에 든 캐릭터에 대해 각자의 생각들을 적극적으로 공유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건, 주어진 40분 안에 다음 날 있을 공연을 위해 나눠야 할 이야기들을 모두 마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배우들은 꽤나 깊은 고민을 거친 화두를 던져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힘을 모아 대략적인 테마를 공유해볼 수 있었다. 가끔 Zoom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음소거인 채로 말을 하는 소소한 해프닝도 재미있게 지나갔다. 또 도장과 시소년이 들어간 B팀과는 달리 A팀 단독 진행자였던 본인은 시간 맞춰 워크숍을 이끌면서도, 시시각각 날아드는 배우들의 언어들에 집중하고, 기록하는 등 동시에 처리할 일이 많았는데 이것도 생각해보면 재미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둘째 날. 관객들을 만나다
배우들은 워크숍을 바탕으로 끌어낸 질문들을 하룻밤 동안 각자 고민하는 시간을 거쳐 공연에 참여했다. 비대면이라고 현장성과 즉흥성이 없을 리가. 낭독회 막이 열렸지만 배우 한 명의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다행히도 워크숍 때 각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모두 공유하고 있어서, 빈 배역에 선뜻 손을 들어준 배우들이 나타났다. 결국에는 낭독회 중간에 기존 배우가 등장해 원래대로 진행됐지만, 다른 배우였다고 하더라도 신뢰감이 쌓인 덕분인지 괜한 불안감은 들지 않았을 것 같다.
걱정했던 바와 달리 낭독회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인터미션 후 2부 시작부터 1부 낭독과의 차이점이 두드러졌고, 점점 올라가는 흥미도 때문에 잠시 진행자로서 긴장의 끈을 놓칠 뻔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우들의 에너지가 커졌고,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에 찾아온 커튼콜은 정말 아쉬웠다.
힌글로우의 이야기
안부를 묻습니다, 우리 사이 무사한가요.
서밋이 끝나고 우주여행당은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일상에서도 계속해서 낭독회의 흔적을 마주했습니다. 관객들에게 보낼 희곡을 다시 읽어보고, 참가 배우들에게 전달할 낭독회 음성 파일을 다시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배우들의 목소리와 표정이 떠올랐고, 까만 객석에 앉아 이 이야기를 마주했을 관객들의 모습이 상상됐습니다.
그리고 몇 주 뒤, 웹진 ‘연극in’에 낭독회에 관한 리뷰가 업로드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비대면 공연 형식에 대한 고민과 탐구, 연극의 가상세계와 현장성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다룬 리뷰였습니다. 우주여행당은 다른 것보다, 우리의 낭독회가 공연의 한 형태로서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Zoom이라는 비대면 공간 안에서 배우와 관객과 무대와 이야기가 공존했음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하자 판돌과 다른 펠로우들은 추후 이뤄진 서밋 회고 모임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처음 기획부터 준비 과정 내내 Zoom 화면 너머로 만났지만, 마지막만큼은 한 공간에서 함께했습니다. 이 자리에선 올해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 외에도 청소년으로서 나눌 수 있는 많은 담론이 오갔습니다. 함께 서밋을 준비한 3개월 그 너머에 있는 각자의 10대를 마주하는 기분이 들어 참 묘하고 신기했습니다.
우주여행당은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아주 가끔 서로에게 안부를 전할 뿐입니다. 이렇게 안부에 안부를 잇는다면, 우리 사이는 무사할 수 있겠죠. 낭독회가 끝나고 배우들에게 보낸 메일의 마지막 문장을 빌려와 봅니다. 우리 모두, 모두의 A가 되어 우리의 사이와 거리를 다시 만나 뵙고 싶습니다. 건강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