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자글방에서 만났습니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모른 채로 서로의 글을 읽었습니다. 대신 각자의 비밀이나 치부, 못난 마음, 잘하고 싶은 일 등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잘 쓰고 싶습니다. 쓰는 삶을 계속 이어가고 싶고, 쓴 글을 더 잘 읽히도록 고치고 싶습니다. 이 굴뚝같은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하자글방(2023년 가을학기)의 지기, 이끼에게 글과 글방에 관해 물었습니다.
1.
사라 안녕하세요, 이끼. 몇 주 전부터 준비한 질문들인데도 막상 쓰려니 좀 어색하기도 하고 떨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첫 질문은 준비운동이에요! 글을 쓸 때 준비운동이 있나요? 소개해 주세요.
이끼 사라, 안녕하세요. 준비운동이라니! 멋진 질문인데 사실 제가 하는 준비운동은 따로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기회에 글을 쓰는 초반에 주로 일어나는 일들을 돌이켜볼게요.
일단 마감일을 하루이틀 당겨서 적어둡니다(이 마감에 늦은 것만 보아도 효용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트위터 앱을 지웁니다(아시겠지만 곧 PC로 접속합니다···.). 알라딘에 들어가 장바구니에 있는 책 중 두어 권을 구매합니다(?). 그리고는 쌓아두고 읽지 않은 책들 중에서 잡히는 것을 이것저것 들춰보는데, 글쓰기의 마중물이라고 생각하며 읽기 시작하지만 이내 타인의 훌륭한 작업물에 의욕만 잃게 되기 마련이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둡니다. 그리고는 밀린 메일 답신 등 미뤄둔 잡무 처리에도 얼마간의 시간을 씁니다. 기분이 내키면 가끔은 일기를 쓸 때도 있습니다. 어쨌든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스스로에게 뭔가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두드리면서 스스로에게 뭔가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한참 뒤에야 죽상을 하고선 제가 주로 글을 쓰는 프로그램인 ‘스크리브너’에 들어갑니다. ‘마감중’이라고 적어둔 플래그 하단에 새 페이지를 두 개 만듭니다. 한 페이지엔 글을 쓰면서 생겨나는 여러 메모나 아이디어, 인용, 발췌 등의 조각들을 쌓아두고 다른 한 페이지엔 그것들을 바탕으로 글을 써나가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대개 무슨 말을 할지 정하지 않은 채로 글을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첫 두 문단쯤은 비교적 호기롭게 써나가지만, 이제 정말 본론을 꺼내야 한다 싶은 세 번째 문단부터 지독한 변비가 시작됩니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이틀이나 사흘까지도 이 세 번째 문단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합니다. 너무 심하게 진도가 안 나간다 싶으면 갖고 싶었던 옷을 한 벌 사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작고 소중한 고료를 허비해 버리곤 뭔가 샀으니까 그 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머리를 싸맵니다. 간혹 울어버리기까지 하는데, 울기까지 한 뒤에도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적잖이 기분이 상하기 때문에 요새는 잘 울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런 시간 사이사이에 먼지 쌓이듯 쌓이는 생각이 있고, 그것으로 씁니다. 먼지로 집을 짓겠다는 생각부터가 잘못된 것 같지만 매번 그렇게 합니다···.
2.
사라 이 글은 이끼를 알고 있는 은는이가 구성원들이 독자가 될 테지만, 새롭게 인사를 나눠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끼를 간략히 소개해 주세요.
이끼 하자글방의 지기 이끼입니다. 글방이 아닌 지면에서 인사를 건네니 새롭고 반가워요. 이끼라는 이름은 낮고 습한 기질 때문에 지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주 상으론 돌 위에 사는 나무 팔자를 타고났다 해요. 주로 글을 쓰고 공연을 하고요, 이따금씩 노래도 만들고 돌도 주워요.
엊그제는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며칠 거제에 다녀왔는데요, 아침마다 친구1은 차디찬 다에 들어가고 친구2는 돗자리를 펴고 누워 쉬고 저는 해변에서 돌을 주웠습니다. 이 셋의 차이를 보면서, 바닷가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보면 생각보다 그 사람에 관해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분은 바다에 가면 무엇을 하시는지 듣고 싶어요.
3.
사라 이끼의 소개 문구 중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장이 있지요. “불구의 몸, 상한 마음, 잘못한 사람에 관심이 있다.”가 그것입니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인 것 같아요. 이 공통점이 이끼를 소개하는 데 있어 중요한 키워드가 된 이유와 관련이 있을까요?
이끼 맞아요. “불구의 몸, 상한 마음, 잘못한 사람에 관심이 있다”라는 소개를 쓴 게 벌써··· 얼마나 됐지. 아마 3년쯤 되었을 거예요. 사라가 말씀해 주신 대로 어떤 비가역성, 돌이킬 수 없음, 되돌아갈 수 없음이 이 세 가지를 꿰는 공통점이고요.
저는 한 사람의 삶을 분지르는 단절의 경험에 관심을 두는 듯해요. 누구나 어떤 시점을 기점으로 그 전과 후가 영영 달라져 버리는 경험을 살면서 반드시 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 그렇다면 그 사람이 자신의 불연속성을 어떻게 다루고 또 대처하는지, 삶으로부터 받는 이런저런 치명적인 상처에 어떻게 반응하며 남은 삶을 재건해 가는지가 궁금해요. 사실 문학이 오래 되풀이해 온 질문 중 하나일 텐데요, 그런 질문을 제 말로 풀어보니 이런 표현이 나온 것 같습니다.
4.
사라 독자가 있는 글쓰기의 첫 경험을 기억하시나요? 아주 오래전 칭찬 스티커를 붙여주던 단 한 명의 독자로부터 벗어나 오직 나 자신만이 독자일 때를 거쳐, 불특정 다수에게 글을 내보였을 때요. 그 순간을 이끼는 어떻게 만들었나요? 그리고 어떤 결심으로 이어 나갔나요?
이끼 바야흐로 2014년··· 대학에서 친구들과 함께 장애인권동아리를 처음 시작한 해부터 저는 줄곧 문집을 만드는 활동에 푹 빠져 있었어요.
누가 읽을지 모르지만 일단 쓸 지면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흥분되고 기뻤던 기억이 나요. 방학 동안 천천히 완성한 글을 〈그 여자의 애인은 장애인이다〉라는 제목으로 창간호에 실었어요. 독자가 있는 최초의 글쓰기는 그게 처음이었던 것 같네요. 저의 단행본 《우는 나와 우는 우는》에서 읽으실 수 있어요. 1장 끄트머리에 실린, 지금은 〈우는 나와 우는 우는〉이라는 제목을 단 글입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 하는 욕심이나 불필요한 자기연민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것이 보여 부끄럽지만 제게 중요한 글이라 싣지 않을 수 없었어요.
생각해 보니 문집을 만들 당시에는 매번 좀 더 멋지고 흥미로운 글을 써내고 싶다는 야심이 있었어요. 그래야만 장애라는 주제가 독자에게 미리 안기는 부담감을 돌파하여 내가 가고자 하는 지점까지 독자를 데려갈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며, 항상 아쉬운 쪽은 내 쪽이고 결국 내가 더 잘 써야 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뒤집어서 말해보면 독자를 탓하지 말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달까요. 지금도 만든 사람보다는 본 사람이, 창작자보다는 독자나 관객이 느끼는 것이 맞다고 대체로는 생각하는 편입니다. 물론 안 그럴 때도 있죠. 하지만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스스로 외부적인 시선을 견지하게끔 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5.
사라 공연예술계 안팎의 다양한 지면에서 글을 쓰고 활동하는 이끼의 발자취를 좇는 일은 독자로서 늘 새로운 세계를 엿보는 일입니다. 다양한 성격의 글을 쓰다 보면 때마다 다른 자세와 도구를 장착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이끼에게 그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끼 음··· 글마다 너무 다른 경험을 하는 것 같아 오히려 같은 자세와 도구로 임하려 애쓰는 듯해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쉽게 길을 잃기 때문입니다. 글을 쓸 때마다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의 질문을 연장 삼아 씁니다. 말로는 몇 번 해봤는데, 글로는 처음 적어보네요···. 최초 공개!
1) “진짠가?”
쓰는 문장의 진위에 관한 질문입니다. 팩트냐 아니냐를 가를 뿐만 아니라, 어떤 문장이 모종의 진실성을 담보하는지를 의심해 보고 그렇지 않은 것을 잘라내는 칼입니다. 동료 작가 한유리에게서 배웠습니다.
2) “그래서 야마가 뭐야?”
‘야마’란 글의 ‘핵심’이나 ‘주제’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출판계나 언론계에 남아있는 일본어 표현의 잔재인 듯해요.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뭐냐’는 질문으로, 글의 도착점을 결정하는 연장입니다. 독자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줄 것인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이 질문은 제 귀에 어떤 교수님의 목소리로 들립니다. 대학에서 발제를 한 직후, 학과의 소문난 호랑이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불호령이었기 때문이에요. 선생님이 워낙 무섭기도 무서웠지만 ‘야마’라는 말을 나만 빼고 다들 아는 것만 같아서 더욱 오금이 저렸던 기억이 납니다.
3) “뭔 하나마나한 소리 하고 있어?”
그렇게 독자에게 준 것이 얼마나 새롭고 유의미한 것인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결론의 참신성을 따지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는 가장 가혹한 질문이자 잘 쓰기 어려운 연장으로 여겨집니다. 매번 재미있고 새로운 얘기를 하기란 현실적으로 꽤나 어려우니까요. 그렇기에 가장 많이 타협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결국 거기서 거기인 얘기를 하는 데 그쳤다면, 그 얘기를 얼마나 다른 문장으로 다시 써보려고 했는지를 점검합니다.
6.
사라 특히 노랫말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저는 이끼가 짓고 부르는 노래 중에 <손톱과 눈썹>을 가장 좋아해요. “어제는 아침에 눈을 떴는데~”로 시작해 “사랑하고 싶었어. 사랑을 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았어.”가 “사랑받고 싶었어. 사랑받으면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어.”로 변주되는 그 부분을요. 어떤 글이 노랫말이 되었을까요? 그 과정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이끼 <손톱과 눈썹>을 좋아해 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최초로 만든 노래예요. 사라가 잘 짚어주신 것처럼 보통 제 노래는 저의 다른 글로부터 파생될 때가 많지만, 이 노래는 드물게도 노랫말이 먼저 있었고 이후 제가 쓰는 여러 글의 모티브가 되어주었습니다. 왜 이 노랫말을 쓰게 되었는지 얘기하자면 길어지니 나중에 여러분을 만났을 때 직접 들려드릴게요. 아니면, 제가 이미 들려드렸던가요? 제게는 무슨 말을 누구에게 했는지 모르는 나쁜 버릇이 있어요···.
어쨌든 노래로 돌아와 후렴구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제게는 사랑과 잘못이 뒤집힌 채로 서로 달라붙어 있는 무엇인 것 같아요. 하나를 주어야만 다른 하나를 받을 수 있고, 혹은 하나를 받아야만 다른 하나를 줄 수 있는. 그러니까 사랑도 하고 용서도 할 수 있는 세계는 없는 것이죠. 사랑도 받고 용서도 받을 수 있는 세계 또한 불가능하고요. 겨울과 봄이 함께 있을 수 없듯이. 낮과 밤이 번갈아서만 나타나듯이. 그런데도 계속해서 서로를 향해 돋아나듯이.
7.
사라 글방에서의 경험에 대해 여쭤보려고 해요. 이끼에게 글방이란 어떤 장소인가요? 제게 하자글방에서의 경험은 시고, 달고, 짜고, 맵고, 쓴맛 모두를 맛보게 한 것 같아요. 질투와 시기는 시고 매웠고요, 글쓰기는 쓰고 짰어요. 물론, 달콤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음··· 합평을 마쳤을 때? 뒤풀이할 때? 하하··· 이끼에게도 이끔이나 지기가 아닌 구성원으로서 글방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세요.
이끼 2019년, 하미나 작가가 열었던 ‘하마글방’에 1, 2기 수강생으로 함께 했어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관악구에 있었던 조그만 책방인 ‘책방, 달리 봄’에서 열었던 오프라인 글방이었지요. 글을 보고 읽는 미나의 시선이 따뜻하고도 날카로워 매번 감탄했던 기억이 나요. 부끄럽기도 하면서, 변명하고 싶은 마음도 곧장 치밀고, 다음 주에는 더 잘 써보고 싶은 오기도 생겨나고··· 매번 좋지만은 않았으면서도 글방에 너무 가고 싶었어요. 지금도 저는 기회만 된다면 누군가의 글방에 가고 싶어요. 지기가 아니라 참여자로요.
우리 모두 알다시피, 글을 써오는 것 못지않게 까다로운 게 합평이잖아요? 저도 하마글방에서 처음에 거의 한 마디도 못했던 기억이 나요. 한번은, 다른 사람의 글에 말 얹기가 너무 어려워 가만히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미나가 제 팔을 부드럽게 꼬집는 거예요. 펄쩍 놀라 입을 열어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채로 말하기 시작했지요. 제가 받아본 채근 중에 가장 깜찍한 것이었어요.
글방이 시고 달고 짜고 맵고 썼다는 사라의 표현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저도 함께 쓰는 경험이 그랬던 것 같아요. 꼭 글방이 아니더라도, 이를테면 동아리에서 문집을 만드는 과정이 그랬던 것 같거든요. 근데 남의 입으로 들으니 왠지 맛있고 군침 돌게, 근사하게만 들리네요.
시고 달고 짜고 맵고 쓰다니··· 그러니까 말하자면 글방은 똠양꿍인 것이죠···. 누군가 “사라에게 글방이란?”이라고 묻자 사라가 “똠얌꿍이다” 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그려져요. 사라의 얼굴에 고약한 즐거움이 어려있을 것만 같아 저도 덩달아 즐거워요.
8.
사라 제게 글방의 문을 두드리게 되는 이유가 있다면, 읽고 쓰는 이들 곁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클 거예요. 나를 기어코 쓰게 하는 것 중에는 그 ‘동료’라는 것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끼에게 함께 쓰는 동료들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이끼 제게 동료들이란 질투······(할 말을 잊다) 부럽고 질투 나는 대상입니다. 쟤처럼 쓸 수 없고 잘할 수 없어서 눈물 나게 분통해요. 여기에서 질투는 서로 간에 기분 좋은 정도의 낭만적인 자극이 아니라 정말로 실제적인 불쾌감, 신체적으로 표출되는 스트레스입니다. 정말로 원통하고 샘나고 말 그대로 배가 아파요. 동료들의 존재와 그들의 글은 제가 글을 쓰는 데 실질적인 방해 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구체적으로 불편하고 두렵습니다.
근데 이왕 질투할 거라면 최대한 가까이에서 질투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런 글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올라간 혈당과 탈출한 디스크와 빠진 머리카락을 알면 연민의 마음이 듭니다. 커피를 사주거나 줌을 켜고 같이 책상 앞에 앉아 있기를, 같이 홈트 유튜브 틀어놓고 어깨를 푸는 일을 함께 하게 되어요. 친구 된 마음이 이렇게 비좁고 못나서야 어떻게 우정을 이어 나갈 수 있나 싶지만 여태까지는 어찌어찌 그래왔습니다.
9.
사라 글은 결코 혼자서는 쓸 수 없는 것 같다가도 쓰다 보면 혼자가 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것이 될 때가 있어요. 언젠가는 그것이 주는 자유에 흠뻑 젖다가도 그 고독과 외로움에 몸서리치게 됩니다. 이끼는 글쓰기의 이중성을 어떻게 다루시나요?
이끼 한때는 글쓰기가 주는 고독감과 외로움 때문에 무언가 응답을 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계속 썼던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을 적지 않은 글에서 내비치기도 하고요. 부끄럽네요···. 막상 책이 나오고 나니 그런 응답에 대한 기대는 많이 내려놓게 되었어요. 이제는 인정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사실 제가 응답받고 싶다고 말해왔던 마음은 인정 욕구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을···
지금은 글쓰기가 주는 적막과 홀로됨이 전보다는 덜 괴로워요. 그게 제게 필요한 시간임을 깨닫고 있는 와중이라서요. 한동안 공연을 중단하고 글쓰기에 집중해 보려 하는 시기인데요, 저는 그동안 공연을 하면서 저 자신을 많이 방치해왔어요. 저 스스로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대화해보려 하지 않았지요. 글쓰기의 시간이 지금껏 그렇게 방치해온 저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시간이라고도 말해볼 수 있다면, 그건 지금의 제가 반드시 해야 할 대화인 것 같아요. 비록 그 속에서 만나는 제가 더없이 괴팍하고 변덕스러우며 유약하고 파괴적이라 해도요···. 심지어는 그런 저를 만나게 될 시간이 조금 기대가 되기까지 해요. 지금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고는 있지만 요새는 자주 쉬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나이브한 말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10.
사라 마지막 질문입니다. 글을 쓸 때의 약속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글을 통해서, 글 안에서 지키고 싶은 약속이 있나요? 그 약속은 자신과의 것이어도 좋고 독자와의 것이어도 좋습니다. 혹은 지켜지지 못하는 것이어도 괜찮습니다.
이끼 “이 이야기를 내가 써도 되나” 하는 질문만은 좀처럼 하거나 다루지 않아요. 누구나 무엇에 관해서나 쓸 수 있는 것이고, 쓰기로 했으면 변명 없이 쓰는 것이죠. 두렵지만 비난을 감수하고서요. 그간의 이런저런 마감을 통해 알게 된 게 있다면, 글쓰기란 필연적으로 상처를 내는 일이라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쓰기로 결심했다면, 그건 어쩌면 세상 어딘가에 반드시 필요한 상처를 내고 말겠다는 약속이나 다짐일 거예요.
2023년 가을학기 하자글방 후속모임 〈은는이가〉는 구성원의 변화를 앞두고 그간의 활동을 기념하고자 진(zine)을 쓰고 엮었습니다. <닿은 마음이 쓰는 우리가>(줄여서 은는이가)라는 제목처럼, 독자의 두 손에 닿기까지 〈은는이가〉의 우정 어린 글쓰기의 여정이 담긴 진은 손수 한 땀 한 땀 제작되었습니다. 글쓰기 공동체로서 죽돌이 스스로 글감과 마감을 굴리며 만든 작지만 큰 세계입니다. ‘From. 하자글방’에서는 진에 실린 글 일부를 소개합니다.
From. 하자글방
하자글방은 함께 읽고 쓰고 합평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해가는 청소년 글쓰기 커뮤니티입니다. 정규 과정 이후 3개의 후속모임이 진행 중이며 후속모임에서 나온 글 가운데 일부를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