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학교 글쓰기 수업 ‘나, 글쓰기’에서는 학기 말에 나만의 ‘주관적 사전’을 만들었다. 처음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이) 이레께서 책 한권을 소개하면서부터이다. 책의 제목은 꽤 오래돼서 그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그 책의 내용이 마치 사전과 같았다는 것. 다만, 그 책에 쓰인 단어의 설명이 사전적 정의가 아닌, 작가 본인이 단어에 대해 가지는 느낌을 서술했다는 점에서, 일반 사전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예를 들면 (아랫글은 내가 직접 쓴 ‘사과’에 대한 설명)
[사과] 과일.
나는 과일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건 꽤 즐겨 먹는다. '먹는 것을 좋아한다'가 아니라 '껍질을 까는 것을 즐긴다' 가 맞으려나.
뭐. 이런 식으로. 내가 느끼는 ‘그 단어’ 라고 해야 할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도 많았다. 작가 본인만의 말이라든지. '단어'가 아닌 ‘문장’이라든지. 줄임말이라든지. 흥미로운 책이었다. 지금까지 '새로운' 형식의 책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책' 하면 소설이나 수필, 자서전. 그런 '이야기'를 묶어 놓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저자가 외국 분이셨는데, ㄱㄴㄷ 순으로 완벽하게 재배치 되어 있어서 '번역가'가 대단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기도 했다. 여담은 이쯤으로 하고……. 이레께서 이 책을 소개하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도 이런 형식으로 글을 써보자!” 예감이 맞았다. 썼다. 쉬운 줄 알았다. 꽤 어렵더라. 이렇게 오래 갈 줄은 몰랐다.
총 ‘20개’의 단어를 쓸 거라 했고, 처음엔 이레와 우리들이 단어 열 개를 정했다. 공부, 오디세이, 가족, 친구, 체육대회, 걸어서 바다까지, 판돌, 핸드폰, 졸업, 미래. 하나같이 우리가 현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이중 ‘다섯 개’는 쓰자고 정했고, 쓰기 시작했다. 함께 정한 다섯 개 단어를 쓰고 난 후, 우리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았다. 꽤 많을 줄 알았는데 없더라. 꼽자면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는’ 게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 다음 주까지 10개 단어의 글을 메일로 보내라는 이레의 말씀과 함께 수업이 끝났다.
드디어 다음 주. 이레는 화를 내셨다. 한 명밖에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다짐했다. 약속은 꼭 지키자. 이레께서 화를 내신 후 우리는 더더욱 열심히 썼다. 그때 화를 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느 수업 때인가, 이레께서 두세 명씩 팀을 짜주셨다. 쓰는 스타일이 다른? 그러니까 길게 쓰는 친구, 짧게 쓰는 친구라든지 너무 솔직하게 쓰는 친구, 너무 진지하게 쓰는 친구라든지. 서로서로 조언을 해주며 배우게끔 팀을 짜주며, 피드백을 주고받도록 했다. 친구마다 쓰는 방식이 각각 다 다르더라. 어떤 친구는 그 단어, 그러니까 ‘물건 시점’으로 쓰기도 했고 어떤 친구는 그 단어에 얽힌 친구의 과거를 쓰기도 했고, 어떤 친구는 단어를 어중간한 문장으로 놓아서 궁금하게 만들고 단어 설명에서 '아~'소리가 나게끔 쓰기도 했다. 등등. 정말 다양했다. 많이 본받았다. 이 과정이 없었더라면 정말 망작(亡作)이 탄생했을 거다.
글쓰기의 아주 중요한 점은 친구들과의 피드백이라는 것을 깨달은 하루였다. 그다음 주도 피드백을 했다. 조언받고, 고치고, 더 보태고, 더더욱 배웠다. 그렇게 글이 완성되어갔다. 단어 사전을 자기가 꾸밀 사람은 꾸미라고 하셨다. 꽤 많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결국 2명뿐이었다. 그중 한 친구는 단어마다 크기, 색을 다르게 하거나 글의 문단의 모양을 마치 그 단어처럼 보이게 했다. 시선을 잡아서 기억에 남았다.
마지막으로 단어의 순서를 정하고, (순서를 얼마나 고민했는지, 단어 정하는 거 다음으로 어려웠다) 드디어 이레에게 마지막 메일을 보냈다. 마지막 글쓰기 수업. 우리는 모두 칭찬을 받았다. 이레께서 한 명 한 명 칭찬 -또는 피드백- 을 해주셨다. 뭔가 뿌듯함을 느꼈다. 정말로 책을 출판한 작가같이. 그렇게 우리의 사전은 완성되었다. 완성이 아닐지 모른다. 더더 채워야지. 한권의 책으로는 완성일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나만의 주관적 사전'을 더 채워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