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솟의 일정에 이어 작업장학교로서는 처음 방문한 버마에 가서도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크리킨디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 HIV 쉼터(Shelter)와 그곳을 설립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에 조용한 감동을 받았다. 퓨퓨땐 혹은 맙퓨라 불리는 이 분은 마웅저 선생님이 소개해주셔서 만날 수 있었다. 그녀가 일하고 있는 쉼터는 처음엔 자원봉사자를 위한 트레이닝 센터였다고 한다. 그러다 갈 곳이 없는 환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면서 쉼터로 바뀌게 된 것이라고 했다.
2001년, 아웅산 수치 여사와 함께 시작한 이 쉼터는 여러 가지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멈추지 않고 해결방안을 찾아 가고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안에 태어났기 때문에 편하고 평범한 인생을 살 수도 있었는데, 어째서 힘든 길을 선택해 HIV 쉼터를 만들기로 결정했냐는 나의 질문에 퓨퓨땐은 “이 병에 대해 처음 듣고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내 또래의 사람들이 병 때문에 일도 못하고
죽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고, 내가 많이 도와주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 모두 그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오래 하지 못할 일이라며 반대했지만, 전 아주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만큼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처음엔 힘들었지만 상황은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그리고 또 젊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병에 걸리면 미래가 없어지는 거예요. 나라를 생각해서라도 꼭 시작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어요”라고 답했다. 퓨퓨땐의 결심과 지속적인 노력은 아웅산 수치 여사는 물론 NLD 내부에서도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퓨퓨땐이 우리를 위해 수치 여사와의 만남을 주선해 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마도 수치 여사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서새롬
난민캠프에서는 주로 그곳 청소년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청취하는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자고 의논했었기 때문입니다. 그곳 청소년들은 주로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 국경을 넘기 전 버마 안에서 겪었던 경험, 졸업 후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자신의 얼굴이 노출되면 행여나 버마 안에 있는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염려하며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며 뒷모습으로 인터뷰 했던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이곳에 있는 청소년들은 대부분 버마에 있었을 때 몰랐던 현실을 이곳에서 와서, 또는 학교에 다니면서 직시했으며, 사실을 알았을 때 자신에게는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친구들은 버마를, 고향과 가족을 무척 그리워했지만 지금은 돌아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friendship bridge라고 이름 붙여진 국경다리에서 우리는 메솟의 버마 청소년들을 대신해서 우리가 국경을 넘자, 버마로 가는 거다.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마침내, 여행 초반에, 몸이 안 좋으셔서 못 만날 수도 있다던 아웅산 수치 여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2시간 정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메솟에서 얼마나 익숙하게 듣고 보았던 ‘아웅산 수치’였겠습니까. 어색한 소개와 질문이 오가는 시간도 잠시, 우리는 차분히 메솟에서 본 것과 느낀 것, 청소년들과 나눴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간 네 차례의 메솟 여행을 기록했던 영상들도 건네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웅산 수치 여사에게 메솟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했습니다. 수치 여사의 말씀들을 듣고 기록하면서, 사실 내가 매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조금 다르게 하고 있었구나, 화려한 테크닉으로 표현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이쪽에서 저쪽으로 진심을 전달해주는 메신저이고 소통의 도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지금까지, 그저 해왔으니 해야 하는 작업을 한다가 아니라, 전달해야 하는 고유의 메시지를 스토리와 감동이 있게 연출하고 구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촬영한 것을 다시 보고, 토대로 뼈대 만들어보고 살도 입혔다가 한 줄로 압축해보며, 긴 여정 동안 보고, 듣고, 카메라로 담았던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으면 한다고 생각해봅니다.
전민혁
이번 여행을 하면서 긴장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아웅산 수치 여사를 만났던 그 시간에는 내내 식은땀이 났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을 오기 전에 영화나 사전조사를 하면서 아웅산 수치 여사의 이름이 많이 거론 되고 더 큰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인 것 같다. 아웅산 수치 여사와 이야기하면서 느낀 점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영어로 대화를 해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지만, 우리가 말할 때 집중해서 들어주고 항상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질문을 하고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 간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눈을 절대 위나 아래로 흘리지 않고 우리와 eye contact를 했다. 초, 중학교때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리더십을 가지려면 필요한 자세가 있다. 그 이야기에서 들었던 내용들이 아웅 산 수치 여사의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박동녘
우리가 메솟에 머무르는 동안, 작년에 만났던 CDC 친구가 1년 만에 우리가 왔다는 말을 듣고 숙소로 찾아왔다. 반가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요즘은 뭐하느냐고 물었더니 졸업해서 지금은 일자리를 구해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졸업생들은 미국 검정고시쯤 되는 GED를 준비하는 학교인 Min ma haw School로 진학하기도 하고, 기회가 닿아서 메솟 바깥으로 가게 된 사람도 있고, 일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CDC에서 공부해서 태국에 있는 대학이나 혹은 제 3국에 있는 대학에 갈 수 있긴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공부하고 싶더라도 기회가 없고 다른 길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진학하지 않고 일자리를 구해 취직하는 경우도 많다.
‘교육’이란, ‘학습’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우리는 배우고, 학습을 원하는 것은 그것이 무언가를 더 낫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메솟에 있던 NGO들, 특히 인권 관련 일을 하는 팀들에게 있어서 ‘교육’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인권의 존재를, 더군다나 그것이 자신을 포함한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삶의 조건에서 어떤 것이 보장되어야 할지를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CDC나 Knowledge Zone의 학생들도 공부하면서 자신의 삶에서 혹시 모를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게 아닐지 모르겠다.
Knowledge Zone에서는, 만약 이렇게 다닐 수 있고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면 거리에서 방황하다가 경찰한테 잡히거나 아동 군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배울 것이 있고 그래도 공부하러 다닐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 되는 것일까?
그들은 어떤 길을 바라보고 있을까? 아웅산 수치 여사를 만났을 때, 우리가 만났던 청소년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으면 좋겠고 그것이 오직 자신을 키우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사회를 위해, 세상을 위한 공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어떤 공부를, 어떤 삶의 내용을 메솟의 청소년들이 고민할 수 있을까? 마웅저 선생님과 우리가 만들고 싶어하는 ‘따비에하자’가 어떤 내용으로 만들어질지 아직 우리끼리 깊게 이야기해보진 못했지만, 그들이 그들의 삶을 메솟에서 부유하며 존재하는 게 아니라 조금 다른 식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공간일 수 있다는 기대들과 함께 일을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