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을 즐겨보는 편입니다. 그래서 의식의 흐름이 이런 식의 프로그램 제목을 짓게 흘러간 것 같습니다.
올해 초, '청소년의 니즈를 반영한 자기주도적 프로젝트로 무엇을 기획해 볼 수 있을까?' 고민하며 회의를 거듭해 기획한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오픈런으로 마감되는 강의, 듣고 싶은 강의는 비용이 부담되고, 듣기 어려웠던 강의를 청소년이 주도적으로 기획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결론에 다다랐어요. 그리하여 앞서 이야기 한 '알쓸신잡' 제목처럼 긴 문장의 앞을 따온, 내.듣.기.강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5월에 모인 내듣기강 참여 청소년은 총 3팀입니다.
이우학교를 다니며 자신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를 벗어나 또래들과 배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했던 손규현팀
몇 해 전, 하자센터에서 진행했었던 뮤지션 토크와 같은 방식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의 음악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던 팀웃옷
디자이너들의 브랜딩, 저작권 등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디자인 외의 요소들을 궁금해서 프로젝트를 만들어보려던 HN프로젝트
다양한 이야기, 다양한 형태, 다양한 구조의 내용이 강의로 나올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내듣기강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5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약 4개월의 여정은 크게 이렇습니다.
5월: 오리엔테이션, 공통강의(강의기획 워크숍, 강의제안 워크숍)
6월: 강의기획서 작성 및 피드백을 통한 강의기획서 완성
7월: 강의제안서 작성과 피드백, 강의의 결과 맞는 강사 섭외, 홍보를 위한 홍보컨셉과 디자이너 미팅
8월: 본격적인 모집과, 강의를 진행하고,
9월: 회고모임
과정에서 각 팀마다 소통하고 계획서를 작성해 보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기획안을 만들어보는 것의 훈련, 강사를 직접 섭외하여 소통해 보는 경험들을 쌓아보기도 하고, 당일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스스로 기획한 강의의 반응을 직접 체감하며 진행해서인지 그 어느 때보다 신나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각 팀이 기획한 강의를 소개합니다.
손규현팀 <배움의 공간 상상하기, 나를 위한, 나에 의한>
첫 번째 강의였던 손규현팀의 [배움의 공간 상상하기 : 나를 위한, 나에 의한] 에서는 사람책 워크숍으로 1부를, 참가자가 함께 상상하는 학교를 이야기하는 워크숍으로 2부를 구성하여 진행하였습니다.
1부의 사람책을 맡아 진행해 주신 패널은, 덴마크의 폴케호이스콜레에서 배움을 경험하고, 일과 배움, 나아가 삶의 방식에 대해 나눠준 이한나님,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 대학 과정을 함께 하며 본인이 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소개해 주고 나눈 정현진님. 이 두 분의 사람책을 2개의 그룹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이 오고 가는 시간으로 채워갔습니다.
2부는 손규현팀 총 3명이 세 개의 그룹의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하며, 인생그래프 워크숍으로 배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봤습니다. 2부에서 각 그룹에서 매우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고,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했던 손규현팀이 각 그룹마다의 나온 이야기를 발표하고 최종정리를 했던 문장 혹은 키워드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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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배움, 나에게 필요한 배움은?
나를 이해하는 법이 교육과정에서 필요하다.
여행하는 것도 필요하다
자유로운 탐구를 할 수 있는 바탕이 필요하다.
실패도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 나가기 전에 꼭 배워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안전한 공간에서 도전하는 것의 필요, 그리고 선생님들이 멀리서 바라봐주는 것
옆에서 기록하고 관찰하며, “안전”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것에 대해, 잠깐 생각이 머물렀습니다. ‘하자센터를 오면 안전한 기분이 든다.’ 라는 말을 청소년의 입에서 종종 들어왔던 터라, 하자를 처음 방문하기도, 다양한 경로로 하자를 방문했을 청소년들의 입에서 여전히 “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그런 것이었을까요?
팀웃옷 <뮤지션토크: 이민휘의 어떻게 음악을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두 번째로 팀웃옷이 기획했던 [뮤지션토크 : 이민휘의 어떻게 음악을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에서는 30여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이민휘 님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이야기 자리였습니다. 모더레이터는 기획 2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흐른이 맡아 함께해 주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사전 질문을 받고, 민휘 님이 답변을 하는 형태와, 그에 맡는 자료들을 함께 보고, 음악을 듣기도 하면서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사전 질문을 받았음에도 현장 질의응답도 끊이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민휘님의 음악에 대한 견해, 영감, 팀작업, 관계, 유학, 영화음악 등 그동안 이민휘 님이 음악적으로 걸어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여정 같은 자리였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을 보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다 보니 마지막은 팬사인회같이 줄을 서서 사인을 받아 가는 모습까지. 흐뭇한 광경으로 강연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야기의 주된 내용들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자면, 무키무키만만수의 만수에서 이민휘로 변화 과정에 대한 이야기, 영화음악 감독으로서 이민휘, 음악을 만들게 된 계기, 영향을 받아온 음악가, 협업한, 또는 현재 하고있는 음악가, 인디 신에 대한 생각, 코드와 가사, 퇴고 과정에 대한 이야기, 꾸준한 작업의 비결, 개인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작업 에피소드 등을 민휘님의 작업노트도 열어 보여주며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이야기를 쏟아내듯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모든 답변을 리뷰에 담기는 어렵지만, 음악을 하고자 하는, 특히나 영화음악을 하고자 하는 참가자분들이 많았던 자리였던 만큼 노트북과 노트를 열어 열심히 기록해 가는 모습에서 선배 작업자의 노하우와 배움을 많이 얻어 갈 수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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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 프로젝트 <디자이너를 위한 법률가이드>
마지막으로 HN 프로젝트에서 기획한 [디자이너를 위한 법률 가이드] 는 HN 프로젝트 팀의 한서영님의 글로 소개를 해봅니다.
[디자이너를 위한 법률 가이드]는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브랜드와 작업물을 보호할 수 있는 가이드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펭수와 BTS의 지식 재산권 보호를 담당하신 김미주 변호사님께서 정리해 주신 강의입니다. 강의에 집중한 글보다는 전반적인 프로그램을 함께하며 어떠했는지 간략하게나마 후기를 써보고자 합니다. 내듣기강이 청소년이 듣고싶은 강의를 직접 기획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19살인 제가 하기 어려운 경험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획서와 제안서 등 여러 문서를 작성했고, 직접 홍보와 운영까지 진행하며 강의 기획의 전반적인 과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5개가 넘는 기획안을 작성하고, 강사 섭외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강의의 주제까지 변경하며 힘들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함께해 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 같습니다. 특히 강의에 만족하신 디자이너분들의 반응과 설문을 통한 후기를 보고 느낀 보람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비록 공적인 작업이 처음이라 소통 등 미숙한 부분이 있었지만, 항상 이해해 주시고 옆에서 도와주신 효효님과 자베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상호 인터뷰부터 함께해 주신 흐른님, 강의 당일 원활한 진행을 도와주신 선미님과 판돌분들, 흔쾌히 강의를 수락하고 좋은 강의를 진행해 주신 김미주 변호사님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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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강의는 한여름 무더위처럼 8월 말 마무리되었습니다. 청소년 당사자 이야기에서 시작된 강의 주제여서인지, 참가자들의 반응도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고 질문도 풍성하고, 한 글자도 빼먹지 않으려 열심히 기록하며 진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봄부터 여름까지 함께 한 세 팀의 강의의 주제와 형식, 과정. 저도 많이 배우며 든든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끝을 어떻게 마무리 해야 할까요? 그래서 내듣기강은 무엇이었을까요? 한 단어로 설명은 어렵겠지만, 분명 따뜻하고, 안전하고, 새로웠으며, 삶에 대해 이런저런 방향도 엿볼 수 있었던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