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지속가능성 관련 강연을 들으러 하자센터에 온 적이 있었다. 이후에 관심이 생겨 SNS에서 소식을 접하다가 목공 워크숍이 열린다는 광고를 보고 냉큼 신청해 귀여운 의자도 만들어왔다. 하자에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여러 배움장과 소통창구를 마련하고 있었다. 기존 스케줄이 약간 널널 해졌을 때 마침 ‘화개:영상꼴라쥬’수업이 열렸고, 영상제작과정이 궁금해 반짝반짝한 눈으로 신청링크를 눌렀다.
첫 수업에 들어가서는 서로의 능력을 판단할까봐 잔뜩 긴장했는데, 다행히도 편안하고 수용적인 분위기였다. 수업을 진행하는 ‘할라’는 진지하고 큰 눈으로 “뭐든 괜찮다”고 반복해서 이야기 해주셨다. 영상제작 수업이라고해서 아이패드와 펜슬, 프로그램 등을 연습하고, 복습하고, 각자 촬영해오고, 더 ‘보기 좋게’만드는 방법 등 정보와 지식들만 우다다다 쏟아주시면 각자 잘 받아먹는 수업을 생각했는데, 완전히 엇나간 추측이라 안도하며 긴장이 조금씩 풀어졌다.
본격적인 영상제작에 앞서 무얼 영상으로 만들지 함께 고민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삶에서 가장 기억에 나는 세번의 순간을 정리해보며 인생그래프를 그리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어디서든 잘 해야 한다는 ‘착한아이 콤플렉스’를-사실 지금도 여전히-가지고 있다고 털어놓았고, 두 번째로 페미니즘과 동물권을 접한 후 스스로의 ‘인지부조화’와 충격에 흔들리는 상태를, 그리고 벌려 놓은 일을 마무리하고 선보여야 하는 현상황에서 ‘중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불안함을 말했다. -이 마음은 영상수업과도 이어졌다. 벌린 일을 끝까지 ‘잘’ 마무리하려는 욕심은 좋다. 하지만 종종 완벽하지 않으면 다 포기해버리고 쌓았던 노력마저 무너뜨려버리는데, 여기에서 오는 상실감과 자책이 매우 크다. 그 이유에서인지 욕심내어 일을 벌리다가도 다 집어치우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은 순간이 많다. 배우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신청서를 작성해서 올리고는, 안타깝지만 다음기회에 뵙겠다는 답변을 기다린다니 참 웃기다.
하고 싶은 것이 많고 배우고픈 욕심이 커서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굴리며 내 시간을 가득 채우려는 편이다. 정신적/육체적 휴식과 여유가 넉넉해야 하는 편인데도, 나를 달래고 설득해서 이것저것 일을 벌린다.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를 헛되이 살았다’는 후회가 크다. 또 일 벌릴 욕심에 무작정 수업을 신청했지만 몸과 기력이 달려서 모든 수업에 착실히 참여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피해주지 않으려고,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무엇보다 내가 벌린 일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해왔던 스스로를 ‘그 마음 자체’만으로 보듬어주고 싶다. 중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잘 왔으니 이렇게 기고 제안을 받을 수도 있던 것 아닌가. 으하하.
사실 내가 ‘또 중도포기’ 하지 않고 마무리를 잘 지을 수 있던 이유는 수업과 일원들의 힘이 크다. 처음 보는 낯선 이들 앞이었지만 속얘기를 꺼내 놓고나니 서로 비슷한 점들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고민의 끝은 연결 되어 있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하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에 힘입어 더욱 단단한 울타리가 만들어져갔다. 이 안에서 내가 무얼 얘기해도 받아들여지겠구나, 나를 봐도 되겠다는 ’안전함’을 느꼈다.
나는 이렇다-하고 당당히 내놓을 것이 없다 생각했다. 거의 모든 일에 자신이 없었고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 그래서 ‘완벽함’에 집착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무언가 나왔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어찌되었든간에. ‘완벽하지 않은 결과물’ 그 자체로써 의미가 깊었다. 나를 생판 모르는 이 사람들은 그게 죽인지 밥인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내가 ‘왜 밥을 지으려했는지’를 봐주었다. 참 좋은 수업과 사람들을 만났다.
*영상설명: 길거리의 전단지, 반짝거리는 광고판들, 끝없이 올라가는 SNS스크롤, 너무 많은 이미지와 소리들. 이 과다한 정보와 이미지들은 머릿속에서 뒤섞여 회오리치고, 결국 무엇이 중요하고 꼭 필요한 정보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너무 많은 것이 들어오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잃는다. 이럴 때, 몸의 감각에 집중해야 한다. 몸의 감각에 집중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