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에는 청소년 동아리도 있지만 판돌 동아리도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그동안 많은 판돌 동아리(텃밭단, 떡볶이 모임 등!)가 있었지만 현 시점 하자의 유일무이한 판돌 동아리이자 최장수 동아리, '효징푸찬윤'이 읽은 책을 소개합니다. 동아리의 이름은 멤버들의 하자 이름 앞 글자를 따 부르고 있어요. 올해는 신입판돌 '한다'도 함께하게 돼 '효징푸찬윤한'이 되었습니다.
책 동아리에서 하는 일은 여느 책모임과 다를바 없이 매주 한 시간, 함께 정한 책을 읽고 나누는 것입니다. 2021년에는 무려 5권의 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오늘은 이 모임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읽은 책 이야기를 공유하려 합니다. 책의 순서는 읽은 순서 입니다.
1. 배우는 법을 배우기(2017, 시어도어 다이먼, 민들레)
(효빛) : <배우는 법을 배우기>는 제목 그대로 배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작업자이면서 교육 기획자, 혹은 교사의 정체성을 가진 판돌들에게 '배움'은 이란 언제나 어려운 숙제인 것 같아요. 나를 위한 배움도 늘 고민하지만 청소년을 만날 때 어떤 태도와 방법을 가져야 그들의 배움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함께 읽었습니다.
책에서는 '단계별로 나누어 배우기', '과정에 초점을 두고 실험을 통해 배우기', '배움에는 사랑과 지지도 필요하지만 구조화된 학습 환경과 훈련도 필요하다는 것' '무엇을 해야하는지가 아닌 무엇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아는 것', '결과가 아닌 방법, 과정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기',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명료하게 하기' 등 배우는 사람을 위한 조언을 가득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악기 연주, 노래 부르기, 운전하기, 테니스, 야구 등 주로 몸을 움직이는 일에 비추어 설명하기 때문에 하자의 일에 적용점을 찾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는 배움에 있어서의 '애씀'에 대해(저자는 애쓰는 것을 멈추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아래 대화의 일부를 공유합니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과정을 잘 경험하고 느끼는게 좋다고 생각해요. 하자 작업장학교의 실험을 독려하는 문화가 생각 났어요. 청소년 스스로 관찰하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한데요. 예를 들면 월별 점검표를 만들어 하루하루 어떤 것을 새롭게 배웠는지 쓰도록 하는 거에요. 교사들은 그 내용을 피드백으로 반영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애씀 없이 배움이 가능할까요? 천재들의 배우기 방식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책에서의 애씀은 어떤 기술의 탁월함이 있는데 그것을 억지로 만들지 말라는 이야기 같아요. 스포츠라 한다면 근육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의식하며 움직이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완전히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동의는 돼요."
2. 태도가 작품이 될 때(2019, 박보나, 바다출판사)
(푸른) : 2021년에 두 번째로 읽은 책은 <태도가 작품이 될 때>였습니다. 동시대 현대미술가들의 작품과 이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그리고, 작품을 통해 세계에 발신되는 창작자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었는데요. 하자센터에서도 다양한 예술 활동이 펼쳐지고 있기에 호기심을 갖고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바스 얀 아더르, 바이런 킴 등 여러 작가의 태도와 시선이 작품에 어떻게 닿아있는지 알게 되며 놀라기도 하고, 흥미로운 작품을 많이 알 수 있어 즐겁기도 했는데요. 무엇보다 작품을 통해 정치, 역사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해 볼 수 있어 더 풍성하게 대화했던 책이었습니다. 아래에 판돌들이 뽑은 밑줄을 붙입니다.
"우리는 같이 살기 위해서 더 시끄럽게 서로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하기 위해서 더 요란하게 서로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 <태도가 작품이 될 때> p.27
"따라서 멀리서 마음 아파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비극적 사건을 나의 삶 속으로 가지고 들어오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것은 충격적이고 비통한 이미지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먼 곳과 가장 가까운 곳을 잇는 상상력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태도가 작품이 될 때> p.102
3. 트릭미러(2021, 지아 톨렌티노, 생각의힘)
(징타) : <트릭 미러>는 ‘효징푸찬윤’과 비슷한 또래의 뉴요커 기자가 쓴 글을 엮은 책으로 대중문화, 인터넷, 페미니즘 등 다양한 주제의 인사이트가 풍성한 책입니다. MZ 세대를 (소비자로 정의하고 팔아먹기위해) 이해하겠다는 의지 가득한 글과 책들이 쏟아지는 요즘, 대중 문화의 최전선에서 겪은 구체적인 경험들을 명료한 자신만의 언어로 담아낸 또래의 멋진 글을 발견해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선정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터넷 문화에 관한 첫 챕터의 글을 소개하고 싶은데요. 인터넷과 함께 나이를 먹어온 세대라면 밑줄 긋기를 안 할 수 없는 문장들이 넘쳐납니다. 인터넷이란 관심의 경제학의 한복판에서 문제와 문제가 아닌 것들을 구분해 논지를 전개하면서도, 자기 삶에 대한 성찰과 맞닿아있다는 점이 지아 톨렌티노의 탁월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밑줄긋기 중 일부를 공유합니다.
‘초기 인터넷은 친밀감을 기반으로 구축되었고, 지금 인터넷에 남아 있는 좋은 공간은 친밀성과 개방성의 산물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반목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조직으로 바뀌자, 이전에 우리를 놀라게 했고 보상이 있었으며 신기했던 것들은 점점 지루하고 유해하며 우울한 것이 되었다.’ - <트릭 미러> 중
‘오늘날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정치 의견들은, 열심히, 끊임없이, 무언가를 반대하고 미워하고 비난하겠다고 단단히 결심한 듯한 글들이다. (…) 일반적인 비난과 센 트윗들로만 주장을 만들어내면서 결국 자기를 미워하고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기생하는 이들말이다.’ - <트릭 미러> 중
‘인터넷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방식으로 이들과 연대를 표하는 대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면에 드러내는 방식으로 연대를 표현하라고 권한다.’ - <트릭 미러> 중
아쉬운 점이라면, 종종 미국 문화와 정치 맥락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터넷에서 무엇을 얻고 있는지를 신중하게 돌아보고,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책 인용)’는 점에서 우리의 맥락을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4. 공간의 미래(2021, 유현준, 을유문화사)
(윤슬) : 코로나19 확산 이후 모두가 새로운 일상을 맞이하게 되었는데요. 예컨대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이 이루어지며, 집은 일상을 지내는 공간을 넘어 사무실과 교실의 역할까지 수행하게 되었죠. 이 책은 전염병이 만든 관계와 공간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삶의 방식을 바꾼 전염병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공간을 바꾸게 될 것인가 상상하며 함께 책을 읽었습니다. 더불어 작가님은 이 책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건축과 공간이 나타나게 된 양상을 설명하며, AC(After Corona) 시대에 더 나은 삶을 위한 여러 가지 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제안하는데요. 공간에 대한 고찰과 제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내용을 공유합니다.
[벽식 구조에서 기둥식 구조로]
"아파트는 벽식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고 하는데, 벽식 구조와 기둥식 구조가 어떻게 다를까요?"
"예전에 인스타그램에서 벽식 구조와 기둥식 구조의 차이에 관해 설명해주는 영상을 봤던 기억이 나요. 벽식 구조는 바닥과 벽만 있으니까 소음이나 진동들이 아래로 다 전달되기 쉽다고 해요. 기둥식 구조는 바닥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보를 얹어서 진동이 분산될 수 있게 되어 있다고 하더라고요."
[공원을 만들어줄 지하 물류 터널]
"자율 주행 로봇이 다니는 물류 전용 지하 터널이 실제로 있으면 정말 편리하고 효율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반이 약해지게 되어 싱크홀과 같은 영향을 주게 되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되네요."
[공간으로 사회적 가치 창출하기]
"나를 품어주는 교회 디자인이 인상적이에요. 십자가를 건물의 안쪽으로 넣어서 보이지 않게 하고, 개방적인 카페를 만든 점이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도 건물에 다가가 볼 수 있게 하는 요소이자 포용의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 될 거로 생각해요."
"바람이 불 때마다 숲의 나뭇가지에서 나는 듯한 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어떤 소리인지 들어보고 싶네요."
"책에 나오는 바닷가에 있는 카페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카페를 여러 동으로 나누어 설계하여 카페 뒤쪽의 외부인도 드나들며 바다를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이 기억에 남아요. 카페 안에서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도록 한 점은, 한 번 방문했던 사람도 다시 오게끔 하는 매력을 주는 요소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건축 디자인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조한다는 발상과 실천방식이 인상적이에요."
5. 요즘 아이들 마음 고생의 비밀(2019, 김현수, 해냄)
(찬스) : 2021년 마지막으로 나눈 책은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이었어요. 요즘 하자에 방문하는 청소년 중에 ‘마음고생’ 꽤 하고 있는 청소년이 적지 않았는데요. 함께 프로그램을 즐겁게 진행하면서도 그들의 내면의 아픔을 마주할 때면,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청소년과 더 잘 만나기 위해 이 책을 선정했어요. 책에는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마음고생의 원인과 그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어요. 하자에서 만나는 청소년들과 닮아 있어 깊은 공감과 함께 무거운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내심 묘책을 기대했지만, 더 많은 질문과 고민을 해야겠다는 반성했던 기억이 나네요. 한편, 저자이신 ‘김현수’선생님의 통찰과 조언을 들을 수 있어 따듯한 책이기도 해요!
'그래서 어른부터 새로운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아이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활활 타오르게 하는 첫 번째 일입니다.' -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p.225
2021년이 벌써 아득히 느껴지는 요즘이지만, 이 글을 읽은 분들의 작년 한 해를 빛낸 책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집니다. '효징푸찬윤한'은 올해 책을 한 권 끝낼 때 마다 영화를 한 편 보고 이야기 나누기로 했어요. 내년 이맘 때쯤, 2022년에 함께 한 든든한 책과 영화를 또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