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돌 노트>는 하자센터에서 '판돌(판을 만들고 돌리는 사람)'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만나, 판돌들의 커리어와 일터로서의 하자에 대해 이야기 나눈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네 번째 인터뷰이는 교육기획팀에서 <비커밍 프로젝트>를 담당하다가 올해는 메이커스페이스팀의 팀장을 맡게 된 3년 차 판돌 톨릭과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톨릭의 십대 시절 경험과 청소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하자에서 팀장으로서 일하는 경험에 대한 내용을 다뤘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 하자에서는 보다 수평적인 소통을 위해 본명/직급 대신 하자 이름(별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에 등장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는 <프로젝트> 게시판에서 자세히 알아보실 수 있습니다.
판돌 노트 기획자 편 - 톨릭
#메이커스페이스팀 #영메이커작업장 #팀장판돌 #ESTJ #하자문화
안녕하세요 톨릭!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메이커스페이스팀에서 일하고 있는 3년 차 판돌 톨릭입니다. 메이커스페이스의 대외협력 관련 업무를 하고 있고 현재는 <영메이커 작업장>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톨릭이라는 이름은 '아나톨리(Анатолий)'의 줄임말인데요. 예전에 고려인 청소년들을 만날 때 청소년들이 제 한국어 이름을 어려워해서 처음 짓게 되었어요. 뜻은 일출입니다.
하자센터를 어떻게 소개하시나요?
다양한 실험과 실패가 허용되는 공간, 청소년들이 눈치 보지 않고 고민과 기획을 펼쳐볼 수 있는 곳. 그리고 판돌들이 일하기에는 행정절차가 많아 쉽지만은 않은 곳이죠. (웃음)
톨릭은 하자에서 죽돌1)로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자에 오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또 하자에서 어떻게 일하게 되셨나요?
저는 90년대 후반 학교폭력에 관심을 가지면서 청소년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없었던 '학교폭력 예방 및 근절에 관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대학로에서 전단지를 돌리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다가, 친구가 하자에 영상디자인을 배우러 다니는 걸 알게 됐죠. 저도 영상에 관심이 많았어서 프로젝트 참여를 하면서 하자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리고 하자 말고도 다른 청소년 시설을 다니면서 청소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대학에서는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가 사회복지학과로 전과를 하면서 청소년 관련 일을 하려고 준비했어요. 졸업 후에는 청소년 법인에서 일하기도 하고 또 다른 관심 분야인 업사이클 관련 사회적 기업에서 일을 하다가 그다음에 하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1) 죽돌: 하자에서 활동하며 일을 배우고 학습하는 청소년
하자의 기획자는 어떤 일을 하나요? 톨릭은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저는 입사 초에는 <비커밍 프로젝트>라는 매뉴얼화된 프로젝트를 운영했기 때문에 기획보다는 실행하는 사람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작년부터 팀장 역할을 하게 되면서는 '어떻게 하면 팀 운영이나 판돌들이 사업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하자에서는 기획자가 재미있는 기획을 했을 때 그걸 실현할 기회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저는 그걸 많이는 못 했어요. 어쩌다 보니 제 업무 자체가 그랬던 것 같아요.
팀장 역할을 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나요?
저는 지금까지 일해오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재밌었고 그걸 도와주는 팀장이 좋았어요. 지금도 팀 판돌들이 하고 싶은 일을 재밌게 잘 할 수 있게 돕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다음에는 행정이나 타팀, 타부서, 외부 네트워크 소통을 두 번째 주안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팀장인 저도 행복한 것. 아 이게 첫 번째인가? (웃음) 아무튼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톨릭만의 일을 잘 하는 팁이 있나요?
저는 MBTI가 ESTJ 인데요. (웃음) 정리해서 사고하는 경향이 있어요. 업무가 여러 개 있어도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나누고 진행하는 편이에요. 일에 번호를 매기고 빨리해야 할 것은 빨리하고, 쉬운 것 해치우고, 붙잡을 건 붙잡고 있고 그렇게 해요.
기획자나 팀장으로서 필요한 자질이 있다면 뭘까요?
기획자에게 필요한 자질은... 나를 잘 아는 것? 제가 하자의 기획자들을 보면서 재밌었던 건, 누구 한 명 빠짐 없이 자신의 관심 분야가 명확하게 있다는 점이었어요. 다들 관심 분야를 중심으로 일을 기획하는 편이고 그래서 즐겁게 해내는 것 같아요. 내 관심 분야가 무엇인지 잘 알면 청소년들을 만날 때 재밌고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팀장으로서 필요한 것은, 앞서 언급한 것과 이어져서 하자의 판돌들이 다 자기 색이 있으세요. 그래서 그런 다양함을 행정체계 안에서 하나로 묶어야 하는 과정이 존재하거든요. 그때가 제일... (말잇못) 그를 위한 소통능력이 필요하죠. 제가 경험한 다른 기관에서는 팀장이 되면 "이 사업의 기획과 흐름은 나를 통해서 가는 거야."라는 게 있었는데, 하자는 그렇지 않으니까.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소통하고 그런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하자 판돌들은 명함 만들 때 6가지 디자인 중에 고를 수 있잖아요.2) 톨릭은 어떤 그림을 고르셨나요?
명함 디자인에 여러 그림이 있잖아요. 산도 있고 물도 있고. 물은 어디서든 섞일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 좋았어요. 이 물은 산에 가면 산의 일부가 되고, 바다에 가면 바다의 일부가 되고.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가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예요. 강물은 바다가 되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하고 그 길을 간다는 거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물을 좋아하기도 해서 이걸 골랐어요.
아직 연차가 길지 않아서 이벤트가 많지는 않았지만, 제가 올해 팀원 3명을 떠나보냈어요. 두 분은 다른 길로 떠났고, 한 분은 육아휴직으로 떠나게 되셨어요. 떠난다는 것 자체가 어떤 순간이든 마음이 쓰이는 것 같아요. 저희끼리 농담으로 '우리 팀은 어벤저스인 줄 알았는데, 어벤저스 엔드게임이었다'고 했어요. (웃음) 그게 제일 기억에 남네요.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저는 하자의 문화에 적응하는 게 좀 어려웠어요. 처음 입사했을 때 '원래 하자는' 이란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라떼는' 같은 꼰대적인 건 아니고 하자가 지향하는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공동체성에 대한 이야기, 같이 지키면 좋겠는 것들을 공유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처음 들어온 상황에서는 어려웠지만, 그 고비만 넘어가면 그 '원래' 에 들어가게 됩니다. (웃음)
하자 일약속3)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저는 '내가 하자'. 그게 하자의 문화는 내가 만든다는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가끔 하자를 살아있는 생명처럼 이야기하는 분들이 종종 있잖아요. 근데 하자는 센터이고, 거기에 살아 있는 사람이 판돌인데. 그 일이 좋은 일이 됐건 안 좋은 일이 됐건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들어요.
저는 신관 중정을 좋아해요. 바람도 슬슬 불고, 햇빛도 가려주고, 비도 가려주고. 한쪽에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못 보고 지나가기도 하고. 아침에 조금 일찍 출근해서 거기서 커피 한잔하거나, 일이 안 풀릴 때 커피 마시면 좋더라고요.
신관 1층 중정의 모습
마지막으로, 판돌로서 일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이 판돌이 되면 좋을까요?
마음의 저항감을 빨리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일하다 보면 갑작스러운 저항감이 생길 수 있거든요. 모든 조직이 그런데, 다른 조직에서는 저항감이 생기면 그런 사람들끼리 술도 마시고 퇴근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하잖아요. 근데 하자는 애프터로 모이는 분위기는 많지 않다 보니까, 혼자 삭히는 상황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일하면서 생기는 저항감을 건강하게 풀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