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카메라가 보안 스티커에 막힌 휴대폰을 들고 방을 나선다. 여러 사람이 쉬는 생활관에서 장시간 줌 회의는 매너가 아니다. 이어폰을 꽂고 공중전화 박스 혹은 휴게실로 걸어간다. 입대한 지 백 일 쯤 됐나, 군대에서도 10대 연구소 책 작업은 계속된다. ‘군대 가니까 책 작업 정말 끝!’ 입대 전 속으로 느꼈던 해방감은 다시 줌 화면 속에 마우스 커서처럼 갇히고… 근데 또 익숙한 얼굴과 목소리가 반갑다.
우리가 책 작업을 시작한 건 작년 여름이었다. 2018년에 활동한 1기, 2019년에 활동한 2기 멤버 중 희망하는 몇 명과, 두 해 모두 함께한 생기가 그간 활동을 책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우리가 쓴 글을 주로 하여 내용을 꾸리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흩어진 채 각자 자리에서 바쁘게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높은 퀄리티의 글을 제때 마감하기란 꽤나 부담이었을 것이다. 인내를 가지고 마감은 몇 번이고 연장됐지만, 우리에겐 많은 분량의 글을 별로 써 보지 않은 사람도, 나름의 게으름도, 벌써 꽤 된 연구 과정의 기억을 소환해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이밖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우린 우리글에 더불어 서로를 인터뷰한 내용을 싣자는 의견을 채택했다.
결과는 “오히려 좋아.”였다. 말하기는 글쓰기라는 고된 노동보다 수월했고, 서로 간의 인터뷰는 기억과 기억, 생각과 생각을 만나게 해 마치 돌이 던져진 호수처럼 더하기의 파장을 이뤘다. 정리되지 않았을지언정 더 솔직해지고, 대화 속에서 무작위로 떠올리는 기억은 은근 톡톡 튄다. 무엇보다 글은 혼자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말은 함께 하는 일이었기에 우리의 책은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실리지 못한 글이 아쉽기도 하지만 뭐랄까 인터뷰가 들어가 난 더 우리다워진 것 같다.
책 작업이 준 선물이라면 계속 10대연구소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던 것이었다. 실은 2기 활동이 끝난 뒤로 연락을 안 한 사람이 대부분인데 책 작업 멤버끼리는 안부를 묻고 근황을 나누고 머리를 짜내는 일을 이어갔다. 어쩌다 좀 텀을 두고 만날 때면 염색한 사람, 아픈 사람, 새 활동을 시작한 사람, 별 변화 없는 사람이 있었고 줌에서 그들의 미세한 표정과 목소리 톤을 살폈다. 1년 넘게 연을 연장하며 다양한 근황과 더불어 그들이 업데이트하는 글과 말이 있는 공간은 때로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집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우리의 책 작업은 하나의 처리해야 할 일이면서도 막상 줌에 접속하면 연말이 주는 것과 같은 어떤 따스함을 얻어가는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침내 결과물이 나온 지금은 ‘진짜 끝난 거 맞지?’ 싶은 마음 절반, 후련하고 뿌듯한 마음 절반이다. 얼마 뒤 거짓말처럼 다음 회의 날짜 투표 카톡이 올라올 것 같으면서도 기깔나게 뽑힌 디자인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인쇄본을 받아보려면 그러니까 내년 3월 첫 휴가 쯤은 돼야겠다. 집 안 내 방에서 다부진 결과물의 냄새를 맡아볼 날을 기다리는 나는 ‘우리 연구 끝나고 이렇게 책도 썼어요!’ 이곳저곳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 책을 읽는 사람의 표정은 어떨까 상상해본다. 어딘가에서 10대연구소는 또 생겨날까? 우리가 들인 수고가 누군가에게 불러올 신선한 마음을 기대하며, 함께 한 이들에게 마무리짓게 해주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