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풀은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2명씩, 하자와 인연을 맺어온 아티스트를 만나 질문 몇가지를 나눠봅니다.
풍덩
질문 1. 간단한 자기소개와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김윤익입니다. 서울에서 '(구)공간 413, (현)413 BETA'라는 얼터너티브 스페이스와, PACK이라는 문화예술 기획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413 BETA'는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부동산적으로 틈새 지역이라고 볼 수 있는 철강 산업 단지 문래동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지리적 위치가 말해주는 것처럼, 갈수록 더 반듯하고 스마트해지는 도시에서 소음과 같이 상대적으로 정상성에서 벗어난 것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공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젊은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창작자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열린 공간이죠. 저에게는 예술가를 지속적으로 만나는 소중한 장소이고도 하고요.
413이 예술가를 만나는 장소라면, PACK은 그들과 함께 더 넓은 영역에서 이펙트를 만들어 내는 회사입니다. PACK은 예술과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일종의 파이프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현대미술 분야의 예술가들과 함께 아트 페어, 아트 비즈니스를 시도해가며 창작자 커뮤니티의 외현을 넓혀가려도 노력하고 있어요.
질문 2.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미술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한국에서는 미술가로서 살아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와 주변 동료들은 여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작업실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전시할 기회를 얻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413에서 공동 작업실을 얻게 되면서 창작과 전시를 하며 지금까지 왔습니다.
공간 운영자 혹은 기획자가 된 계기는 특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저는 비교적 외향적이고 타자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제 작품을 만들면서도 다른 작가의 작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흥미를 느낍니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더 나에게 와닿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공부하는 느낌을 느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에도 관심이 생겨났고 미술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며 사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을 그만두는 상황을 보는 일이 저에게는 이 모든 일의 시작점이 되었던 것 같아요. 물론 저도 작품 활동을 그만두게 되었고요. 그런 과정 속에서 문제의식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창작자 생태계가 더 유연하고 다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미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문화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질문 3.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저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가 이 사회에서 잘 성장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고민해야 할 게 생각보다 많아지는 것 같아요. 결국 예술과 사회가 얽혀 있는 실타래를 한 올 한 올 풀어가며 새로 이어보고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그런 과정이 계속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예술가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성과 자유로움이 확보된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죠. 큰 틀을 바꾸려면 너무 어렵다는 걸 많이 느꼈고요.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그런 좋은 환경을 조금씩 만들고 실천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질문 4. 하자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나요?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와 함께 처음 하자센터를 찾아갔었어요. 그때 힙합 음악에 빠져 있었고요. 친구와 팀을 만들어서 노래도 만들고 연습도 하고 가끔 공연도 해보고 그랬어요. 당연히 연습실이 필요했는데요. 하자센터에서 연습실도 제공하고 힙합 강좌를 열기도 했어요. 그때 동경하던 래퍼가 선생님이었고 그 래퍼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좋았죠. 연습실은 방음 부스가 되어 있고, 스피커와 마이크도 준비되어 있어서 저에게는 정말 너무 좋았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놀랐던 것 같아요.
그때 당시 하자센터는 정말 너무 자유로웠어요. 정해진 규칙만 지키면 뭐든 할 수 있었고요. 그래서 방학 때는 연습실에 자주 가서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공연 준비도 하며 시간을 보냈죠. 그러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힙합 음악에 대한 정보도 교류할 수 있었어요. 특별히 하자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 주변 언저리에서 연습실 쓰고 돌아다니면서 보냈던 느슨한 시간이 기억에 남아요.
질문 5. 하자라는 공간이 김윤익의 활동과 연결된 순간이 있나요?
제가 많이 방황하고 고민하던 청소년 시기에 하자센터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해보고 시간을 보냈던 게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은 후에 남은 잔향처럼 맴도는 것 같아요. 주변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 대학 진학에 목메고, 저는 그런 게 너무 답답했었거든요. 어떤 걸 하고 싶은지가 별로 떠오르지도 않고, 미래라는 게 그냥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그런데 하자센터에서는 저에게 목표나 목적을 물어보지 않았어요. 그래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그냥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잠깐씩 고여있을 수 있었어요.
그랬던 저의 경험이 지금 공간을 운영하고 기획하는 일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나를 둘러싼 주변 모든 것들에서 그런 공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 인터뷰를 계기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예전에 친구들과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몰두하고 열띠게 토론도 하고 깊게 생각에 빠질 수 있었던 시간이 지금도 큰 힘이 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네요. 그런 게 어떻게 보면 매 순간 연결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질문 6. 앞으로 하자가 창작자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까요?
그 시절 하자센터와 지금은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공간의 취지는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창작자들에게도 그렇고 어쩌면 모든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어떻게 나아가고 싶은지 자신의 동기가 만들어지는 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사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나의 동기를 형성하고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아주 협소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자센터는 저에게 그런 동기를 내 몸 안으로 가져올 수 있게 해줬어요. 막연하게 대학에 진학하고 회사에 취직하고 친구들과 경쟁하는 삶으로 그냥 미끄러지지 않게 스토퍼가 되어 주었던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었던 건 목표를 머리맡에 두지 않고, 이런저런 실패를 해볼 수 있게 유보적인 태도의 장소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자율주행으로 운전을 할 때가 많은데요. 도착할 장소를 찍고 시작 버튼을 누르면 경로 위에 올라타게 되는데, 그 시간은 별로 기억되지 않아요.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경로가 어떻게 되는지만 보게 되죠. 그런데 그 곳까지 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내가 핸들을 쥐고 나의 동기를 태우고 이리저리 방향으로 바꿔가며 앞으로 나가는 경험을 한 번 이라도 해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이 머물 수 있는 하자센터가 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