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진로 러닝 크루는 내일의 내 일을 상상하면서 ‘영감 탐색 + 멘토 취재 + 미래진로 프로젝트’ 활동을 하는 청소년 그룹입니다. 러닝 크루 2기는 두 번째 활동으로 각자 관심 있는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멘토를 만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미래의 내 일에 대해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죽돌들이 선정한 멘토(만화가, 비건카페 대표, 심리상담 유튜버, 건축가)와 나눈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해보고 싶은 일은 많았지만, 그게 내 적성이라는 확신이 없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망설여졌다. 그러다가 최근에서야 경험을 해봐야 내 적성에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고민보다 GO’라고, 현재는 계속 공부해 보고 싶었던 심리학과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막상 심리학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니 심리학을 전공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내 삶의 중요한 가치관인 ‘소수자 인권’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그래서 심리학을 활용해 다양한 일을 경험해 보신 분, 인권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분을 인터뷰하고 싶었다.
'서늘한여름밤'님은 예전부터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알고 있던 분이었다. 그림일기나 영상을 보며 공감하기도 하고, 진로나 심리적인 고민이 있을 때 도움이 되기도 했다. 심리학이라는 큰 분야 안에서 창작, 사업 등 다양한 경험이 있고, 여성이나 성소수자, 장애인 등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도 있으신 분이라 인터뷰를 통해 들을 수 있는 얘기가 많겠다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서늘한여름밤’이라는 필명으로 작가 활동을 하고있는 이서현입니다. 지금은 광운대학교 코칭심리 박사과정 재학 중에 있어요. 그래서 창작자로도 활동하고, 코칭심리를 공부하는 학생이기도 합니다.
'서늘한여름밤' 캐릭터
임상심리전문가, 사업 등 ‘심리학’이라는 큰 분야 안에서 시도해 본 일이 많다고 알고 있어요. 심리학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던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중학교 때부터 심리학과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심리학이라는 학문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학부 때부터 심리학을 공부했는데 되게 재밌었어요. 심리학과를 전공하는 제 친구들이랑도 너무 잘 맞았고. 그래서 사람도 좋고, 학문도 잘 맞으니까 제 적성이라고 생각하면서 대학원에 갔어요. 대학원에서도 공부가 재밌었고 친구들도 좋아서 정말 재밌게 대학원 생활을 했어요.
저는 임상 및 상담심리를 공부했어요. 처음에 임상심리전문가가 되려고 수련과정에 들어갔는데 저랑 잘 안 맞는 것 같더라고요. 분위기도 그렇고 심리 검사도 너무 많이 했어야 됐고.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길은 아닌 것 같아서 창작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사업을 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사업을 하면서 너무 힘들었을 때 코칭을 받았었거든요. 근데 코칭이 너무 도움이 되는 거예요. 심리상담과는 달리 또 다른 부분에서 도움이 된다는 거에 매력을 느꼈어요. 그럼 박사는 코칭심리를 해볼까? 하고 코칭에 들어오게 됐고요. 코칭에 들어와서 비즈니스 분야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내가 좀 더 다양한 과를 알았더라면, 예를 들어 경영이나 컨설팅 이쪽도 나랑 잘 맞았을 것 같은데. 좀 더 어렸을 때 그런 것들을 알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심리학 외에 관심을 뒀던 다른 분야는 따로 없었나요?
심리학 말고는 관심 가졌던 게 창작인데 창작도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 바로 하기 시작했고 사업도 관심 있었는데 사업도 했고. 관심 있는 분야들은 거의 다 도전해 봤던 것 같아요.
심리학을 공부하고 심리 관련 다양한 일을 하면서 삶에서 변화한 점 또는 배운 점은 어떤 게 있었나요?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제일 처음에 도움이 됐던 건 정신병리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던 거였어요. 저도 대학원 오기 전까지는 나만 우울하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대학원에 들어가니까 다들 우울하고 불안해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나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 이건 그냥 질환일 뿐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게 저한테 가장 큰 변화였던 것 같아요.
또,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 하나하나의 다양성을 존중하게 된 것 같아요. 원래도 그런 성향이 없진 않았지만, 더더욱 그런 것을 신경 쓰게 되었고. 사회가 개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냥 막연하게 ‘사회가 안 좋아서 사람들이 힘들다’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이태원 참사라던가 세월호 참사 같은 사회적인 사건이나 고용불안 문제를 보며 이런 모든 것들이 개인의 삶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어떻게 보면 제가 있었던 심리학 분야들은 개인의 고통을 보는 분야잖아요. 그러다 보니 ‘개인의 고통이 단순히 개인이 잘못 살아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개인이 힘든 경우도 많은 것 같다’라는 것을 깨달은 거? 그게 큰 변화였던 것 같아요.
상담을 받으려고 할 때 상담사가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있는지, 내 고민을 ‘비정상’으로 여겨 오히려 상처받는 건 아닐지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많고, ‘모두가 안전할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그런 점이 더 고민되더라고요. 그래서 서밤님이 코치로서 지향하는 가치에 ‘다양성 존중’이 있는 걸 보고 굉장히 반가웠어요. 사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을 만나는 만큼 다양한 환경의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 필요할 것 같은데요.코칭을 할 때 어떤 방식으로 다양성을 존중하고 있는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는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다양성에 관한 공부는 제가 사업을 하면서 되게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소수자 정체성 발달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소수자 혐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소수자의 내면적인 혐오는 어떻게 발달 되는지 같은 소수자 정체성에 관한 공부를 많이 했었죠. 이론적인 공부 말고 제 주변 사람들, 친구들을 통해서 간접 경험하는 것들도 있고. 책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경우도 있고. 저는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을 굉장히 인상 깊게 읽었거든요. 주변에 소수자인 친구들도 많고 장애가 있는 친구들도 있고 그래서 그런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경험했던 것들이 사실 큰 것 같아요.
코칭은 심리상담과 달리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거든요. 이슈가 아닌 것을 이슈 삼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내가 우울해요. 우울해서 상담을 받아요. 근데 어떤 상담사들은 ‘어, 너 우울해? 근데 너 성소수자야?’ 그럼 그 문제를 연결시키려고 하거든요. “너 성소수자라서 우울한 거 아니야?”, “너 그래도 결혼해야 하지 않아?” 약간 이런 식으로. 근데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 삼지 않는 것만 해도 저는 코칭 과정에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냥 인간의 한 특성으로 보는 그 정도? 대신에 내가 주의해야 할 게 있으면 미리 “내가 언어를 잘못 사용하거나 잘못된 편견이 있으면 알려달라”라고 하는 정도면 저는 충분한 것 같아요.
초반에 사업 얘기를 해주셨는데, '에브리마인드'를 만들게 된 계기에 다양성이 존중되는 상담센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포함되어 있었나요?
네. 왜냐하면 제가 심리상담센터 추천 지도를 만들어서 공유한 적이 있어요. 그때 여성분들이나 퀴어, 소수자분들이 ‘좋은 상담센터에 갔는데도 편견이나 차별로 인해서 좋은 상담을 받지 못했다고 느낀다’라고 많이 하셨거든요. 그래서 거기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사업을 시작했던 것도 있었어요.
심리학을 공부하면서도 그런 문제의식을 느낀 적이 있나요?
어우~ 많죠. 특히 동료들의 피드백 같은 걸 들으면서 ‘저런 사람이 상담이나 코칭을 해도 되나?’라고 우려가 될 때가 많았거든요. 그리고 저는 SNS을 통해서 노출되어있으니까, 사람들이 저한테 본인 사례를 막 얘기해줘요. 본인이 상담사한테 들었던 말들이나 이런 것들을. 그럼 너무 경악할 만한 일들도 많거든요. 어떻게 상담사가 저런 말을 하지? 싶은. 예를 들어 상담사가 “너는 얼굴 예쁘니까 취업하지 말고 그냥 결혼이나 해라” 이런 식으로 말하기도 하고. 진짜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상담사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문제의식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심리학 전반에서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을 향상할 필요가 있다고 많이 느끼고 있어요.
서밤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관은 무엇인가요?
저는 ‘자유와 다양성 존중’인 것 같아요. 이 두 개가 저한테는 엮여있는 거거든요? 이게 남을 해치지 않는 한 저의 다양한 특성들에 대해서 그냥 저라는 인간으로서 존중받으면서 살고 싶어요. 그게 저한테는 자유고. 근데 자유롭게 내 모습대로 살기 위해서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나도 다른 사람들의 특성들에 대해서 편견 없이, 판단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고. 저도 남들이 나에게 그렇게 대해줬으면 좋겠고. 그래서 저한테는 그게 되게 중요한 가치인 것 같아요.
인스타로 운영하는 그림일기부터 유튜브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서밤님의 고민을 나누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잖아요. 저도 자주 찾아보는데 ‘내가 힘들었던 부분이 사실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구나’,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구나’ 싶어서 공감도 되고 나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더라고요. 다른 일을 하며 개인 창작을 함께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계속해서 운영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여전히 창작은 저한테 너무 즐거운 일이에요. 왜냐면 공부하다 보면 공부 빼고 다 재밌잖아요. (웃음) 그래서 지금도 창작을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저의 어려움들을 많이 나누고 싶다, 나만 이렇게 우울하고 나만 가족들이랑 갈등을 겪고, 나만 외로운 게 아니라는 걸 느끼고 싶어서 인스타 그림일기를 꾸준히 그렸던 것 같아요. 근데 요새는 조금 바뀐 게 제가 코칭을 통해서 만나는 고객분들이 있다 보니까 코칭에서 다 못한 말들을 전하기 위해서? 제가 만나는 고객분들한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그리려고 하는 것 같아요.
방향이 조금 바뀐 거군요.
네, 물론 제 어려운 얘기도 여전히 하지만. 지금은 박사 과정만 빼면 별로 어려운 일이 없기 때문에. (웃음)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도, 특히 제가 만나는 고객분들한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요.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이 서밤님에게는 어떤 도움이 되나요?
사람들과 소통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배우기도 하고, 제가 몰랐던 분야에 대해 알아가기도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무엇보다 연대와 위로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서늘한여름밤 그림일기 <나에게 꼭 맞는 진로인지 어떻게 알까?!>의 일부. 서밤님은 그림일기로 사람들과 소통한다. 위 그림일기는 완벽한 진로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던 나에게 공감되는 이야기였다.
코칭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경 쓰는 것은 무엇인가요?
전문성에 대해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쓰게 되죠.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이 사람의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을 일인가? 이 사람한테 도움이 되고 있는가? 그게 과학적인 기반에 근거한 도움인가? 이런 거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초보 코치로서는.
코칭심리가 그렇게 알려진 분야는 아니다 보니 다른 심리학 분야에 비해 자료도 부족할 것 같아요. 공부할 때 이런 면에서 한계는 없나요?
아무래도 연구가 아직 많이 된 분야는 아니기 때문에 책이나 논문이 다른 심리학 분야에 비해서는 되게 적어요. 그래서 상담이나 다른 심리학 분야의 책들을 참고하면서 공부하기도 하고. 그나마 영어로 된 자료들은 많이 있어서 영어로 된 자료를 많이 봐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죠.
해보고 싶었지만 아직 못해본 일이나 앞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10만 유튜버 되는 게 목표고요. (웃음) 그건 저의 꿈 같은 거고.
지금 제가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예요. 박사과정은 학기가 끝난다고 졸업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제가 창작자로 살아온 세월도 길거든요. 어느새 9년 차 창작자가 되어서 학기가 다 끝나면 초보 창작자분들, 혹은 창작자를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그룹 코칭을 해보면 어떨까 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걸 해보는 게 지금 저의 단기 목표입니다.
요즘 내 최대 관심사인 심리학과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 당장 어떤 일을 하며 먹고살지 정하지 않아도 심리학을 배우고 그 안에서 나에게 맞는 일, 재밌는 분야를 찾으면 되겠다는 확신도 얻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먼저 더 많은 것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필요한 정보와 조언을 아낌없이 해주셨다. 덕분에 답답했던 생각이 정리되기도, 새로운 질문이 생기기도 했다.
코칭을 하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식을 묻는 질문에 “이슈가 아닌 것을 이슈 삼지 않는 것”이라고 답하신게 기억에 남는다. 그동안 소수자에게도 안전한 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방식만 떠올렸는데, 생각보다 담백하고 명쾌한 답변을 주셔서 놀랐다. ‘소수자’라는 특성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새로운 관점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