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 하자센터 음악작업장에서 신승은님을 처음 만났다. 통기타 한대를 들고 선 그는 둘러 앉은 음악작업장 장이들 사이에서 기타를 쳤다. 간단하고 쉬운 코드를 반복해서 쳐주며 우리들에게 겁내지 말고 아무렇게나 노래 부르기를 권했다. 장이들의 입에서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가사와 멜로디들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아직 친해지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부끄럼이 많았던 나는 겨우 "네에에-. 맞아~"라는 말로 음을 흥얼거릴 뿐이었다. 그럼에도 신승은님은 잘한다고 좋다고 말해주며 웃는 얼굴로 계속 기타를 쳤다. 거기에 힘을 받아 마구 노래하고 박수치는 장이들을 보고 있는건 그것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노래를 부르고, 가사를 써보고, 음악에 대해 얘기하던 그 시간은 지금까지 나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나는 여러 사람들과 뭉쳐 밴드를 만들고 해체하고 노래하고 연주하기를 반복했다. 코로나로 외출이 어려워지며 잠시 음악을 내려놓고 농사에 전념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또다시 기타를 잡고 아무렇게나 노래를 만들고 있다. 그동안 신승은 작가는 6개의 앨범, 14개의 곡을 발표했고, 두권의 책과 두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주로 하고 있지만, 글 쓰는 것을 좋아하여 수시로 글을 쓰고. 상상속에 있는 것을 이미지로 만들어보고자 디자인을 연습하고 있는 나에게 이런 신승은님의 행보는 가장 이상적인 예술인이자 내가 꿈꾸는 미래이다.
그는 어떻게 노래를 만들고 어떻게 영화를 만들까. 그가 쓰는 글은 어떤 순간을 담고 있을까. 솔직한 예술가 신승은님에게 솔직한 예술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글을 읽는 청소년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도 만들고 노래도 만들고 글도 쓰는 신승은이라고 합니다.
Q. 혹시 저와 처음 만났던 2019년 음악작업장 특강을 기억 하시나요? 물론 시간이 3년이나 지났지만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그때 아마 가사 쓰는 것에 대한 강의를 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2019년이면 한창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을 거에요. 그렇게 작업한 영화가 프론트맨이고 2020년에 개봉했죠. 2021년에는 인간관계라는 이피 앨범을 발표했어요. 최근엔 기회가 되어서 <밥을 먹다가 생각이 났어>와 <아무튼, 할머니>라는 책 두권을 연달아 출간했습니다.
Q. 최근 <아무튼, 할머니>라는 책과 노래 <부르는 편지>를 발표하셨어요. 두 책과 노래는 어떤 작품인가요?
<부르는 편지>는 하자센터 음악작업장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그 친구들이 발표회를 할 때 각자 준비한 노래들에 대해 제가 답가로서 만든 노래에요. 음악작업장 멤버들 한명 한명의 노래에 전부 답장하는 내용의 가사를 담았어요.
<아무튼, 할머니>는 2018-19년부터 제철소,코난북스,위고 이 세 출판사가 '아무튼, OO'이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펼치는 '아무튼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어요. 세 출판사 중 제철소의 제안을 받아 시리즈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래서 저는 <아무튼, 할머니>라는 제목의 책을 쓰게 되었어요. 우리 사회의 노년 여성, 나의 할머니에 대한 기억, 노년 여성들을 사회가 어떻게 대하나, 노년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것인가. 이런 것들을 포함하여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어요.
Q. 첫 앨범 데뷔는 2016년이지만, 2014년에 <타임머신>이라는 단편영화의 감독을 맡으셨더라고요.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영화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려요.
사실 저는 음악을 2012년에 공연을 하면서 처음 시작했어요. 영화 역시 2012년부터 단편영화를 제작하였고요. 다만 포털사이트에 기재되지 않아서 확인하기가 어려울 뿐이에요.(웃음) 네*버에는 네 편만 소개되어있지만 총 여섯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어요. 그 중 <타임머신>이라는 영화는 '유스보이스'라는 미디어 창작지원 사업에서 약간의 지원을 받고, 나머지는 제 사비를 사용해 제작한 영화에요. 학교 교실을 배경으로 하는데, 시간이 흐른 뒤에 교실속 아이들이 어른의 모습으로 나오는 내용이에요. 선생님은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고, 학생들은 직업을 가진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런 판타지 영화입니다.
Q. 첫 앨범 <넌 별로 날 안 좋아해> 에는 총 10개의 곡이 수록되어있습니다. 이 앨범을 만드는 과정동안의 마음이 기억 나시나요? 이 앨범은 신승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허수아비 레코드라는 곳에 소속된 친한 뮤지션 동료가 저에게 앨범 작업을 제안했어요. 그런데 처음 사람들을 만나서 음원과 음반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날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하나를 잃으면서 시작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무것도 없어서 결국 돈을 빌려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어요. 저에게 이 앨범은 세상에 나를 기록한 첫번째 정제된 기록물이에요. 부담이 있었죠. 그만큼 나를 잘 소개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나를 소개하는 의미가 큰 앨범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Q. 음반 데뷔 이후 지금까지 40곡이 넘는 노래를 발표하셨어요. 곡을 만드는 영감은 어디서 주로 나타나나요?
좀 웃기겠지만, 제자신이에요. 내가 겪은 것, 내가 느낀 것, 주변의 친구들. 전부 나에게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저와 저의 주변에서 계속 영감이 나타나기 때문에 열린 상태로,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자세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좀 막연한 질문이지만, 음악과 영화와 문학을 통틀어, 예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나 예술을 시작하게된 이유가 있나요?
영화는 너무너무 좋아해서. 정말 좋아해서 꼭 영화감독이 되고싶다고 생각했어요. 뮤지션은 우연한 계기로 하게 됐어요. 노래만드는 취미가 있었는데 버스킹 관련 스태프를 하던 친구가 버스킹 자리를 제안해서 처음 시작했어요. 재밌어서 계속 하게 되었고요. 문학의 경우에는 일이 들어와서 하게 된 케이스에요. 시작을 한 이유는 사실 이거 말고 딱히 할 줄 아는게 없고, 그냥 이것들을 너무 좋아해서 시작했고 하고있어요.
Q. 그렇게 계속해서 문학/음악/영화 등 장르에 제한 없이 다양한 창작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각 분야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각자의 한계도 있을까요?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은 관객들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관객들과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음악은 무엇보다 공연하는 게 가장 재밌어요. 또, 노래를 발표할 때는 돈이 들지만 그냥 기타 한 대 들고 노래를 할 때는 돈이 들지 않아요.
글은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집에 있는걸 좋아해서.(웃음) 혼자서 편하게 아무때나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영화는 내가 꿈꾸고 상상하는 것을 모니터로 볼 수 있다는 것 너무 아름답고 매력적인 일이에요. 사실 영화는 제가 음악과 영화에서 꼽은 장점의 반대되는 점들이 많아요. 관객들을 직접 만나는 일이 적고, 하려면 꼭 집 밖을 나가야하잖아요. 또 돈이 너무 많이 들고 너무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해요. 뭐든 돈이 가장 문제에요. 돈이 가장 큰 단점이죠.
Q. 예술인으로 살아가며 느낀 예술계의 현실은 어떤가요?
자본이 너무 한곳에 집중되어있어요. 상업 구조에만 자본들이 투자되는 거에요. 비상업 예술에는 자본이 부족한데, 그에 대한 지원 사업의 수가 너무 적고 뽑힐 가능성도 적어서 정말 한정적이죠. 그리고 성차별이 많아요. 영화계의 경우, 특히 상업영화는 남성감독만 많고 여성감독은 거의 없어요. 정말 거의 없어요.
Q. 그럼에도 계속해서 창작하며 살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너무 재밌어요. 재밌어서 계속 하게 돼요. 안하면 못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영화 만드는게 내 인생에 없다고 생각하면.. 사실 글쓰는 거나 노래하는 것은 포기하라면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영화는 그럴 수 없어요. 영화도 노래도 글도, 너무 재밌어서 그냥 계속 하고 싶어요.
Q. 2012년부터 지금까지 많은 공연을 하셨을텐데, 기억에 남는 공연이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이것도 하나만 고르면 다른 공연들이..(웃음) 집회나 시위같은 곳들에 연대공연을 갔던 경험들이 기억에 남아요. 어떤 카페가 쫓겨날 위기에 처해서 공연을 하는데 경찰이 그 옆에서 데시벨을 재고 있더라고요. 그것도 정말 황당했고, 어떤 여성인권관련 집회에서는 리허설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태극기 부대의 중노년 여성분들이 막 욕을 하시기도 했어요. 그건 좀 웃겼어요. 아직 시작도 안한 남의 행사에 왜 욕을.. 아무튼 그런 연대 목적의 집회나 시위 공연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Q. 본인의 창작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다른 예술인이 있나요? 아니면, 청소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아녜스 바르다 감독님이요. 아녜스 바르다 감독님의 작품 제목으로 타투도 했어요. 아주 할머니가 되었을 때도 계속 작품활동을 하신 분인데요, 귀엽고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계세요. 천재라고 하면 보통 까칠하고 냉철한 이미지를 생각하는데, 이분은 까칠한 것이 아니라 따뜻하고 포근해요. 이런 감독이 되고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Q. 타투하신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요?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라는 작품이에요. 오른쪽 팔에 노래하는 여자, 왼쪽팔에는 노래하지 않는 여자를 새겼어요. 두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그 두 여성의 느슨한 연대를 담은 영화에요. 낙태죄 폐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여성인권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서 이 작품 추천해요.
Q. 저에게 음악과 문학은 좋아하고 익숙하지만, 영화는 시도하거나 도전해보겠다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좀 낯선데요, 신승은님이 느낀 영화계의 어려움이나 힘듦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나요?
저는 영화과나 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영화를 시작한 케이스가 아니에요.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영화과의 텃세가 좀 심하더라고요. 그게 짜증나서 저는 이후에 영화과를 다시 가고 졸업했어요. 그런데 사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건 아니라서, 영화과에 가지 않고 영화 하고싶은 청소년들은 '미디액트', '오!재미동'같은 단체/공간을 통해서 배우고 경험하는 것도 충분히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해요.
Q.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본인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인가요?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라고 생각해요. 없으면 힘들 것 같아요. 못살 것 같아요.(웃음)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고, 저의 생계수단이기도 하죠.
Q. 아까는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작품을 추천해주셨는데, 이번엔 신승은님 본인의 작품들 중 하나만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렇게 고르면 골라지지 않은 다른 작품들이 마음에 걸리는데.(웃음) [퍼플레이]라는 여성영화 플랫폼에서 <마더인로>라는 저의 영화를 볼 수 있어요. '영화를 계속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던 시기에 찍었던 영화인데, 다행히 여러 영화제에 나가게 되고 응원을 많이 받아서 기운을 얻은 작품이에요.
Q. 창작할 때 가장 신경을 쓰는 요소가 있다면?
혐오사회에 살다보니 저도 모르게 혐오의 표현들에 많이 물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혐오의 앵글과 언어와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주변에 많이 물어보고, 자체적으로 저의 작품에 대한 검열도 많이 해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것은 남들에게 상처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요.
Q. 예술가로서 생각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있으신가요?
예술가라는 이름에 뽕맞지 않는(취해있지 않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계속 조금씩이라도 돈벌면서 예술로만 먹고살 수 있는.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한 예술가이고 싶어요. 허세부리지 않는 사람이고 싶고요.
Q. 요즘 가장 즐겁게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앞으로의 활동 계획과도 연관이 있나요?
'저는 행복한데요,' 라는 극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어요. 곧 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피칭이 되었습니다. 제작비가 잘 마련 되어서 촬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만약 제작 과정이 문제 없이 잘 진행된다면 아마 내후년에는 영화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Q. 이 글을 읽게 될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 있으신가요?
그냥 해보세요. 그리고 그렇게 한 것들 다 소중하고 중요하니까 포기하지 말고 버리지 말고 계속 하길 바라요. 아무렇게나 적고 흥얼거린 글, 가사, 멜로디들이 나중에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니 함부로 지우지 말고 다 잘 저장하고 잘 모아두세요. 자본의 한계때문에 지치는 날이 올텐데, 그때 예술 말고 다른 일을 찾아서 같이 병행 한다고 해서 예술가가 아닌 것은 아니에요. 다른일을 함께 하더라도 꼭 끝까지 예술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