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하자 디지털 에디터즈의 오리야. 오늘은 조금 더 길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편지로 찾아왔어. 우선 지난달 업로드한 ‘청소년의 공간’ 카드뉴스에 함께 경험을 나눠줘서 고마워! 덕분에 내가 경험해온 공간들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되었어. (혹시 아직 보지 못했다면 하자 인스타그램 @ourhaja 에서 확인해줘~)
너에게 안전한 공간은 어떤 의미야? 나에게 안전한 공간은 장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어. 오히려 그 공간의 사람들과 문화, 공동체가 더 큰 의미를 가졌지.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은, 안전한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했어.
내가 가장 오래 속해있던 공동체는 학교였어. 학교에 다니며 나는 내 머리카락과 치마의 길이부터 손톱, 양말, 속바지를 검사받는 일에 익숙해졌어. 너무도 뚜렷했던 교사와 학생 간의 위계, 성적에 따른 차별도 어느새 아무렇지 않아졌지. 일상적인 혐오 표현과 성희롱은 문제 제기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어. 나는 학교를 떠나고 나서야 학교가 얼마나 폭력적인 공간이었는지 깨달았어. 그 공간이 나를 무력하게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학교는 문제 제기가 불가능한 공간이었어. 문제를 제기한 적도, 문제 제기하는 것을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교사의 성희롱 이후에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실은 그게 폭력이라고 인지하지도 못했지. 우리는 그냥 조금 ‘이상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그칠 수밖에 없었어.
그 후 나는 많은 공동체를 경험했고, 그 공동체들은 학교보다 훨씬 안전하거나, 덜 폭력적이라고 느껴졌어. 공동체란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집단을 넘어 그 문화를 함께 고민하고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존재라는 생각도 들었지. 또 그 공동체와 구성원들에게 많은 애정을 가지게 되었어. 하지만 애정이 많은 만큼 공동체 내에서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나는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헤매게 되었어. 안전한 공동체라는 믿음이 ‘안전함’을 깨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든 것 같아.
나에게 ‘안전함’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 지금까지 내가 경험해온 공동체의 문제 제기는 당사자를 징계, 처벌하는 데에서 그치거나, 그마저도 되지 않았어. 그 경험들이 공동체에서 함께 회복을 고민하고 문화를 점검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게 한 것 같아.
또 피해자가 문제 제기 과정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청소년일 경우 부모님(친권자)의 동의 없이 진행이 어려운 경우도 있었어. 피해자와 가해자가 다시 한 공간에 돌아오는 일은 흔하고, 결국 피해자가 떠나는 과정을 보며 나는 무력감을 느꼈어. 문제 제기 과정과 그 이후는 피해자 혼자서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거든.
사실 필요했던 것은 가해자의 처벌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일상 회복, 그리고 이후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는 것이었어. 문제 제기는 함께 이야기하자고 손 내미는 것이기도 하니까. 또 공동체의 문화도 점검해봐야겠지.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여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안전함을 끊임없이 의심해야 할 것 같아.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고민과 함께 약속이나 제도가 필요할 것 같기도 해.
나는 내가 속한, 또 사랑하는 공동체들이 모두에게 더 편안하고 안전했으면 좋겠어. 또 그러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고 싶어.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너는 네가 속한 공동체를 얼마나 안전하게 느끼는지 궁금해. 평등하고 안전한 공동체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도! 모두가 안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고민들을 함께해야 할까? 네가 있는 공간에, 이 고민을 함께할 동료가 있다면 좋겠다.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면 media@haja.or.kr 로 메일을 보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