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는 ‘우울’이라는 단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 누구는 아주 오래된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고, 누구는 그 감정의 모양을 되새겨볼 수도 있어. 누군가에겐 이 단어가 익숙하고 생생한 반면에 누군가에겐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없을만큼 낯설고 어렵게 그려지기도 할거야. 나와는 상관 없는 조금 먼 이야기라고 생각이 든다면 이번엔 이렇게 해보자. 문득 눈물이 날 것처럼 울컥하는 기분이 들거나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몸이 움직여주질 않아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거나.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워서 머리가 아픈 순간, 아주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생각들을 하는 순간이 있었는지 살펴 보는 거야. 슬프고 답답하고 아픈 마음을 돌아봐도 좋아. 그런 작은 상황들을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우리는 보통 우울이라고 불러. 사전에서는 우울에 대해 '마음이 어둡고 가슴이 답답한 상태.’라고 설명했어. 그리고 그 상태와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오랜 시간동안 지속되는 것이 우울증인 거야.
나는 우울증, 무기력증을 경험한 적이 있어. 가장 처음 나의 기분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은건 작년 새학기를 맞이한 무렵이었어. 2학년이 되면서 익숙한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맞이하게 되었고, 급하게 바뀌는 환경과 분위기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였지. 학년이 높아졌다고 해야할 일은 더욱 많아졌고 신경 쓸 거리들만 점점 쌓여갔어. 그 와중에 구성원이 바뀐 우리의 공동체마저 흔들리기 시작했어. 전에 없던 폭력 사건이 여러차례 일어나고 음주, 무단외출같은 일도 빈번해졌지. 이전까진 학교 안에서 들을 수 없었던 혐오 표현도 여기저기서 들리곤 했어. ‘이건 내가 사랑하는 공동체가 아닌데.’. 불편한 마음이 들었어. 이런 기분을 느끼는건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니었지. 그런데 그렇게 혐오적인 언행을 하고, 폭력에 방조하는 사람들도 소수가 아니었어.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다는 거야.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되돌리려 애썼어. 이전과 같지는 못해도 이 안에서 상처 받는 사람이 생기면 안되잖아. 그런데도 진전이 없었어. 나아지는 듯 하면 다시 사고가 나고, 또 괜찮은 것 같으면 문제가 생기고.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지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말았지. 나 역시 그 중 하나였어. 나는 다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변하지 않는 것들에 신경쓰고 힘들어할 바엔 아예 도망가고 싶었어. 그런 생각들을 조금씩 쌓아가니 괴롭고 답답한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나기 시작했어.
간단히 생각하면(사춘기나 질풍노도의 시기 같은걸로 말이야.) 그렇게 큰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한테 이게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었어. 사람의 감정이 마치 파도나 바람처럼 멋대로 요동치고 흔들리는건 단순히 그 사람의 마음 뿐만 아니라 머리와 몸까지 전부 위태롭고 힘들게 만드는 일이거든. 한 번 불편한 것들을 곱씹고 나니까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마음에 걸리고 짜증났어. 이 공동체의 모양부터 주변 사람들의 변화, 학교의 구조와 기숙사의 모습까지. 혼자 마음속으로 너무 많은 생각과 고민들을 되뇌었다가 뭉쳤다가 흐트렸다가, 그런 일들을 자꾸 반복하다보니 머리가 아파왔어. 머리 여기저기가 깨질 듯 아파서 잠을 자기도 힘들었어. 그러다보니 낮엔 피곤해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않았어. 하나의 요소가 충족되지 않으니 다른 것들도 충족되지 않는 악순환이 생성된거지. 그럴 땐 좀 쉴 수 있으면 좋은데, 일은 일대로 바빠서 이미 무리가 온 몸으로 할 일들을 해내야 하는거야. 정말 힘들었어. 답답하고 우울하고 괴롭고… 그런 와중에도 누군가는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또 나 역시 누군가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관계들도 하나씩 엇나가는 모습이 보였어. 가족들에겐 이야기 하지 않았어. 나를 먼학교까지 보내준 건 믿었기 때문일텐데 걱정시키기 싫었거든. 친구들에게 말하기엔 걔들도 이미 많이 지쳐있고, 선생님들에게 말하기엔 내가 어른들에 대한 적대심이 컸어. 그러니 혼자 앓고 자꾸 울어서 정말이지 속이 마치 쓰레기통 같았어. 말미에는 ‘아, 이러다 기절하겠다. 도망가자.’하는 생각으로 이 마음을 터트려버렸지.
결국 난 작년 여름, 방학이 끝나기 이틀 전에 학교에 자퇴서를 냈어. 아주 오랫동안 혼자서 고민하다가, 나중에서야 가족들을 설득하고 갈등하며 겨우 해낸 선택이었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어.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계획하고 혼자 원하는 것들을 얻어야 했지. 자퇴와 동시에 하자센터를 만났어. 뉴트랙이라는 음악작업장 프로그램을 통해 하고싶은 것들을 좀 해낼 수 있었어. 하지만 왕복 5시간이 넘게 걸리는 하자를 매주 서너번씩 가는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 뉴트랙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다른건 할 생각도 못할만큼. 항상 피곤해 지쳐있는 나를 가족들은 조금 못마땅해 했지만 그저 늘어져 있기만 하는건 내 의지가 아니었어. 소통과 공감의 부재로 인해 나는 가족들과 많이 싸웠어. 하도 괴로워 하기에 자퇴를 시켜줬건만, 크게 달라지지 않는 나의 모습이 별로였던거야. 난 나의 우울과 무기력을 설명해야 했는데 그건 높은 학문의 이치를 설명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어. 그 때가 가장 힘들었어. 내가 혼자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올 때, 마지막까지 남아주는 건 가족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가족들과 갈등하는 상황이 정말 막막했어.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많은 시간을 들여 겨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지.
학교를 떠난지 이제 1년이 막 지났어. 나는 그동안 생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도 많이 하고 내 힘으로 해야 하는 것들을 조금씩 해나가기도 했어. 1년이 지나고나서야 나는 겨우 ‘이제 좀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어.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우울감, 무기력감이 가라앉은 느낌을 이제서야 좀 받게 되었거든. 그 변화가 이렇게 늦어진건 코로나의 영향도 꽤 커. 코로나 블루, 혹은 코로나 우울증이라고 하지.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급격한 일상의 변화를 겪으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에 대해 새롭게 등장한 신조어래. 내가 가야할 방향을 어느 정도 정해서 서서히 안정을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무렵에 갑자기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혼란을 좀 겪었어. 그렇게 반년을 더 버텨내니 어느새 나는 나를 살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어.
내가 우울증을 겪으며 항상 생각한건 ‘병원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어. 내가 어떤 상태인지,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를 이야기 해줄 사람이 필요했거든. 그런데 정신과 치료는 상담 비용이 만만치 않더라. 부모님에겐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 부모님의 도움 없인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어. 한참이 지나고 나서 청소년 센터에 갔을 때 담당 선생님과 이것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어. 그냥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조금 풀어놓은 것 뿐인데 마음이 훨씬 편해지는 걸 느꼈어. 같은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이 아주 많을 거라고 생각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이 멋대로 뻗쳐 나가게 되면 우린 쉽게 위험해질 수 있잖아.
우리 나라는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이 1,2위를 할 만큼 아주 높아. 우울증이나 우울감을 느끼는 정도도 크지. 코로나와 급격한 기후변화, 입시 고민, 학업 고민, 가정 환경과 인간 관계. 많은 것이 우리를 괴롭게 하지만 우리는 그걸 알아채지 못할만큼 빠르고 급하게 살아가고 있어. 지금 Z가 우울감을 느끼고 있더라도, 전혀 느낀 적 없었지만 어느 순간 우울감을 느끼게 되더라도 그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 우린 자주 문제에 직면하면서도 그것들을 해결하지 못해서 점점 지치고 있는 것 뿐이야. 다만,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 우리가 힘들고 외로워도 다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져야해. 그건 스스로 조금씩 만들어내는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얻어내는 것일 수도 있어. ‘도와줘.’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고, 누워 있고만 싶을 때 일어나서 산책할 수 있는 마음도 필요하고, 하고 싶거나 해야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머리와 건강한 몸도 필요해. 아, 정말 건강하게 산다는건 어려운 일이야.
Z야. 아플 땐 병원에 가기도 하고(쉽지 않겠지만), 약도 먹어보고(이거 역시 쉽지 않겠지만), 가족들에게 이야기도, 친구들에게 이야기도 해보자. 뭐라도 해보고 몸을 조금씩 움직여보고 잠이 오면 푹 잠도 자고. 그렇게 도움을 받고 스스로를 살피며 살아가자. 많은 사람이, 나 역시 Z를 소중히 생각하니까 속이 상하면 그들에게 다 털어놓기도 해보자. 내가 이 글을 통해 Z에게 다 털어놓는 것처럼. 그렇게 위태로운 시간들을 잘 보내면 우리는 건강한 사람이 되어있을거야. 그러면 오래도록 위태롭게도, 행복하게도, 건강하게도 지내면서 가끔씩 안부를 묻고 싶다고 생각하자. 마음 만으로 서로에게 큰 힘이 될거야. Z에게 쓰는 편지는 마지막을 적기가 항상 어려웠는데, 마지막의 마지막을 쓰려니 더 어렵고 아쉽다. 아무쪼록, Z의 안정과 편안을 늘 바랄게. 지금도 그러고 있어. 나의 우울을 받아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