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 온다는 소식에 공유카페(하자센터 신관 1층)는 겨울맞이 준비가 한창입니다. 화목난로 연통도 청소하고, 땔 나무도 준비했어요.
이렇게 겨울나기 준비와 한 해 마무리로 새해맞이를 하다 보니, 공유카페는 쌀 부자가 되었더군요. 그간 허브에서 소소한 작당 모임을 하며 주고받은 쌀, 공간을 빌려 하루 워크숍을 하며 주고받은 쌀, 동네 주민들이 매주 악기 연습모임을 하며 주고받은 쌀, 매주 반찬 한 가지 씩 들고 와 밥상을 차리는 수요 나눔밥상의 취지를 들은 어떤 이가 보내준 쌀 등등으로 허브 쌀창고는 그득히 채워졌습니다. 이 쌀은 수요 나눔밥상으로, 화요 엄마밥상으로, 모두의 간식으로 서로의 정담을 나누는 선물이 되었습니다.
새해엔 이 쌀로 방앗간에서 떡을 뽑아 하자마을 한해의 시작을 알리며 떡국을 나누었습니다. 하자의 모든 판돌들은 물론이고 허브의 길고양이보호소 단골어린이들, 엄마밥상 단골엄마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2013년 시작한 나눔부엌은 공공공간을 개방하며 독점이 아닌 공유의 원리를 삶 속에서 뿌리내려 보고자 매주 밥상을 차리고, 도시락을 먹고, 간식을 나누고, 동네의 이웃들이 엄마들이 아이들이 청소년들이 서로 모여 나누고 돌보는 감각을 익히는 시간으로 채워갔습니다. (조한혜정 교수의 칼럼 ‘동네 나눔부엌에서 시작하는 세상’ )
좋은 뜻을 가진 세 명이 모여 제대로 수다를 떨기 시작하면 뭐든 판이 벌어지고, 그 판을 채워나가는 네 명, 다섯 명, 열 명으로 그렇게 그물망이 된다 합니다.
엄마밥상은 끼니를 때우기도 어려운 젖먹이 엄마들, 독박육아에 지친 엄마들, 난감함에 처한 엄마들을 위해 ‘한 끼라도 제대로 먹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엄마들이 이런 초대에 응답은 할지, 아기들과 함께 밥을 먹기에 부족함이 많은 공간에 대한 걱정들이 무색하게, 엄마들은 유모차를 끌고 모였습니다.
그렇게 모여 쏟아낸 난감함, 질문, 답답함, 막막함이 풀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엄마 동료로서, 여성으로서, 교감하며 이야기 나누는 것 자체로 숨통을 트는 시간이자, 둘러앉아 함께 나눈 한 끼가 서로를 도우며, 새로운 공공성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첫 발걸음임을 아는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시금치나물이 정말 맛있게 되었는데, 너무 많이 했나 싶더니 남았네요. 누구 반찬으로 가져가실래요?”
“와, 정말요. 제가 가져가도 되나요? 마침 반찬을 해야 하고요.”
이런 정다운 풍경을 엿보는 것도 선물처럼 느껴진다고 합니다.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서 밥을 해서 같이 나누어 먹는 풍경 그 자체가 말이죠. 이렇게 ‘나눔부엌’은 수요 나눔밥상으로 하자마을 주민들의 일상이 되었고, 화요 엄마밥상은 동네 엄마들과 젖먹이 아기들의 또 하나의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기사를 보니 아버지부터, 취준생, 아르바이트 청년, 대학생, 청소년들까지 편의점 식품으로 한 끼를 때우는 사람들이 더 늘고 있다 합니다. 혼밥, 혼술은 흔한 풍경이 되었고요. 그래서 더더욱 밥 한 끼가 ‘때우는 자리’로서가 아닌 ‘채우고 나누는 관계’로 만들어가는 경험이 더 귀하다 싶습니다.
성장 중독에 걸린 채, 부를 쫓는 사회모델이 구제 불능 상태에 이르렀음을 모두가 학습하고 있는 현실입니다만 그간의 공유카페에서 지속한 '공유, 나눔, 돌봄'의 실험이 소비가 아닌 다른 관계를, 소유가 아닌 공존의 삶의 태도를 익히게 한다는 것을, 허브의 일상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2013년에 시작한 수요 나눔밥상은 2017년 올해부터는 '공유'하는 밥상으로 전환합니다. 그간 냉장고와 부엌을 공유하여 하자 안팎의 사람들이 참여하며, 쌀로 품으로 관계망을 이어오던 실험을 이어가려 합니다.
누군가 호스트가 되어 혹은 동네쉐프가 되어 공유된 쌀로 밥을 짓고 가져온 반찬과 냉장고의 식재료로 식탁을 차리고 두런두런 정다운 밥상을 만들어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5명의 밥상, 10명의 밥상 그렇게 소박한 자리들을 상상해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공유밥상은 초대로 열리기도 하고, 수요일이 아니어도 누구나 언제나 자신과 이웃을 위한 자리로, 소박하나 풍성한 밥상을 함께 차리며 지혜를 나눌 장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엄마밥상은 매주 화요일 12시면 어김없이 펼쳐집니다. 정답게 밥을 먹고, 둥글게 모여 뜨개질도 하고, 코사지도 만들고, 책 한 권 읽기도 하고, 그림책으로 삶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이미 닥친 기후변화 시대에 삶과 일상, 육아와 미래의 설계를 고민하는 자리도 갖고... 그렇게 어떤 가능성에서 현실을 빚어내는 기운들이 모이겠지요.
또 하나 올해 허브 공간은 작지만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을회관이라 불리던 신관 103호가 유리문을 활짝 열어, 거리와 통하고 청소년, 어린이, 엄마 등 지역주민들의 카페로의 전환입니다. 사람들이, 사람들에 의해, 사람들을 위해 채워지고 비워지고 그렇게 하나하나 만드는 모든 것이 무언가가 되어가는 과정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않은 000카페가 첫 문을 열 때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모든 분을 초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