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마을장터 달시장은 5년째를 맞습니다. 사회적기업들의 상품 판매, 홍보 등 활로 모색을 위해 출발한 이래 어느덧 마을기업, 협동조합, 청년 소셜벤처 등 사회적경제 분야의 다른 그룹들도 참여하게 되었고 단일 규모로는 최대의 마을장터로 자리잡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주 금요일에 달과 함께 떠오르는 달시장은 1년에 다섯 번씩 매해 어김없이 열렸고, 이제는 시장을 넘어선 ‘마을’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영등포를 비롯해 서울 곳곳에서 이런 저런 일을 벌이며 자신의 삶은 물론 이웃과 사회, 지구를 위한 전환을 시도하는 분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게 큰 보람입니다.
다만 늘 아쉬웠던 것이 달시장 자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일년에 5회만 열리다 보니 주민들을 만나는 장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주민설명회나 중간 평가 모임, 연말 파티까지 초대하는 자리를 마련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쉬웠습니다. 매회 많으면 100여개의 부스가 들어차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오가는 달시장 현장에서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기도 어려웠고요.
지난 3월 21일 첫 선을 보인 ‘작은 달시장’은 그래서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약속한 날짜에 꼭 열어야 하는 정기 달시장과는 달리 사람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마음이 맞으면 판을 벌이기로 했습니다. 사전에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하자마을, 영등포 등 달시장 마을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장으로 더디지만 내실 있게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사전 기획과 가이드라인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획하고 실행하고자 합니다. 서로 찬찬히 손발을 맞춰 봐야 더 오래 갈 수 있는 법이니까요.
다만 하나만은 정해 두었습니다. 그 중심에 어린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 웃을 일 없는 세상, 그래도 아이가 있으니 웃는다, 아마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가뜩이나 아이가 귀한 요즘, 집집마다 그 어린 존재는 그야말로 ‘허브(hub)’라고 할 만합니다. 작은 달시장에서는 그간 정기 달시장에서 선보여 왔던 ‘마을놀이마당’에서 인연을 맺은 지역 주민 및 놀이모임과 연계해 ‘어린이와 함께 만드는 놀이터’라는 콘셉트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가볍게, 그러나 큰 뜻을 품고 시작한 첫 작은 달시장에서는 그간 마을놀이마당을 통해 인연을 맺은 이웃의 몇몇 가족들, 또 그들의 지인들이 참여했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각 가정마다 ‘허브’ 역할을 맡고 있는 어린이들이었죠.
가족과 이웃이 함께하는 마을놀이터! 첫 작업으로는 2012년 만들어져 신관 중정을 지켜왔던 ‘잔액부족 하우스’(일명 도시부족 하우스)를 함께 해체해 보았습니다. 신관 지하에 자리잡은 목공방에서 주도적으로 만들었던 ‘잔액부족 하우스’는 “얼마나 큰 평수의 집이면 우리는 만족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단돈 30만원 정도로 지어진 1인 모바일 하우스의 일종입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전세값, 그런데도 빈집은 넘쳐 나지만 또한 끊임없이 새 건물을 지어대는 현실에서 ‘몸 하나 의지할 사과상자 크기면 충분하다’는 깨달음이 담겨있는 집입니다. 일단 평상을 만들고 그 위에 집을 올려 나가는 방식으로 한번 체험하면 누구나 지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설계된 것이 특징입니다.
그간 중정에 묵묵히 서서 주거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져 주었음은 물론 서울광장, 백양로 등에도 출장(?)을 나가 든든한 지원군 노릇을 했고, 달시장 마을놀이마당에서는 수많은 어린이들의 놀이 상대가 되어 주었던 ‘잔액부족 하우스’. 이제는 비바람에 시달려 바래고 삐걱대서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아 해체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해체한 목재들은 어린이들의 장난감이나 놀이터로 만드는 후속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라 처음 지어졌던 취지처럼 순환되는 셈입니다.
망치는 물론 전동 드릴까지 사용하는 작업이라 어린이들이 해낼 수 있을까,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는데 의외로 목공방 앞치마와 장갑으로 꼼꼼히 무장한 이들은 일꾼 노릇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어른 못지 않은 힘으로 목재를 내리쳐서 뜯어내고, 매와 같은 시선으로 살펴가며 구석에 박힌 못까지 빠짐없이 드릴로 빼내는 어린이들. 덕분에 ‘잔액부족 하우스’는 안전하고 빠르게 해체될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이 일에 몰두하는 동안 같이 온 엄마들은 허브카페 1층 부엌에서 각자 가지고 온 갖은 채소를 넣은 부침개를 함께 만들어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향기로운 커피도 한잔 하고요.
잔액부족 하우스 해체 작업이 끝난 후에도 재미있는 일들이 생각지도 않게 이어졌습니다. 마을형 방과후학교에 다니는 중학생들과 한 명씩 짝을 지어 피구 게임을 한 것이죠. 대부분 외동이라 형제가 없는 어린이들이 처음 만난 청소년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다 보면 어느덧 특별히 약속하지 않아도 그 즈음 되면 삼삼오오 모여들여 판을 벌이는 장이 되겠죠. ‘작은 달시장’은 이런 모습을 꿈꾸며 소박하게 출발합니다.
두번째 '작은 달시장'은 4월 11일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열렸습니다. 첫 달시장의 작업을 이어서 해체한 나무 자재를 도미노 나무 블록으로 만들어 보았고, 중정과 맞닿은 허브 카페에는 각자 집에서 가져온 재료들로 맛있는 김밥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내가 안 쓰는 물건을 이웃과 나누고, 또 기부하고픈 이들이 모여 자그마한 벼룩시장도 열었습니다.
다가오는 5월에는 큰 달시장도 마지막 주 금요일에 열릴 예정인데요, 그 전에 5월 16일 세번째 작은 달시장이 열리게 됩니다. 이 소식으로 다시 한번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