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가 사라져가는 시대, 다시 놀이의 힘을 이야기하는 마당을 만들고 있습니다. 뚜렷한 성과를 도출하기보다는 둥글게 둘러앉아 현장의 난감함을 공유하는 놀이 난감모임. 그리고 놀면서 탄생하는 일상의 틈새, 내면의 야생성, 그리고 어울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서밋포럼까지. 이 시대 모든 세대에게 필요한 놀이, 그 동안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까요?
첫 번째 놀이 난감모임(가칭)은 9월의 첫 주에 진행되었습니다. ‘왜 이 시대에 놀이가 필요한가’, ‘나는 어떤 활동을 해오고 있는가’라는 문제 제기 속에서 서로의 난감함을 공유하는 열린 모임으로 기획되었지요.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놀래, 동네형들,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숲동이 놀이터, 신나는 애프터센터, 여러 가지 연구소, 오방놀이터, 와글와글 놀이터, 청년허브 청년공작실 등 각자의 현장에서 놀이의 판을 만들어가는 다양한 팀이 초대되었습니다.
“오늘 난감모임에서 무엇이 난감한가 하고 들어보니까 놀이를 가지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난감합니다. 옛날에는 놀이에 대한 무슨 생각이 있어서 논 것이 아니죠.” - 김찬호(알로하/하자센터 부센터장)
놀이에 대한 난감모임이 생기는 것 자체가 난감한 현실이라는 점을 짚으며 시작한 모임에서는, 아동 청소년기 그리고 이후의 삶에서 놀이가 변질되거나 사라지는 모습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보면 술래 안 하고 고무줄 잡거나 돌리는 거 절대 안 해요. 편 놀이는 불가능해요. 저 아이가 못 한 걸 절대 내가 책임지지 않아요. 그리고 규칙에 대해 너무나 엄격해요. 그래서 놀이판이 바로바로 깨져요. 다 개인이에요. 이런 심각한 상황에 대해서 이제는 정말 사회적인 지원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 김수현(와글와글 놀이터)
“청소년 활동의 연원 자체가 위험한 곳에 가서 생존을 위한 어떤 연습을 해보면서 그 자체의 즐거움을 느끼고 생명력을 얻어가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그것을 다 금지시키면 남는 것은 입시밖에 없고 그 입시에 대한 압박이 청소년 죽음 원인의 1위죠. 세월호 사건 이후 그마저 있던 활동이나 체험마저도 다 금지되거나 규제의 대상이에요.” - 김혜정(오매/은평 신나는 애프터센터)
“엄마와 아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요. 백지상태로 있어도 좋을 텐데 다 채우고 있는 거예요. 그런 것들을 거부하는 운동들, 실제로는 안 놀기 운동 같은 것을 해야 하는 거죠. 아이가 심심해하면 불안한 거예요. 그 시간 동안 아이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을지를 믿어주고 기다려 주면 좋을 텐데, 재미있는 놀이와 자극을 자꾸 주려고 하죠.” - 백찬주(버들/숲동이놀이터)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난감한 상황들을 공유하며 첫 만남은 놀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 얼굴을 익히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약 3주 뒤 이어진 창의서밋에서는 난감모임 때의 만남을 바탕으로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두 팀, 오방놀이터와 여러 가지 연구소를 초대해 함께 ‘사례공유포럼@놀이’를 열게 되었습니다. 포럼은 ‘틈/생/곁’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놀이가 가져오는 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먼저 망원에서 가족 놀이터 겸 커뮤니티 공간을 꾸리고 있는 오방놀이터는 일상의 ‘틈’, ‘겨를’을 내어주는 시간, 공간, 관계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부천의 청년 그룹인 여러 가지 연구소는 도시를 새롭게 보고 그 안에서 생존해가는 이야기, 그리고 규칙이라는 명목 아래 길들여지는 사회에 대해 꼬집은 청소년들과의 프로젝트를 소개해주었고요. 마지막으로, 하자센터의 놀이활동가 사례 발표에서는 후기 청소년-청년 세대가 놀이터에서 다른 세대를 만나면서 서로 배움의 시간을 가지는 전환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현장 사례를 공유하며 놀이의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배움의 자리였습니다. 반갑게도, 과천 무지개학교에서 ‘놀이’를 주제로 1년간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는 중등과정 학생들과 선생님이 방문하셔서 의미 있는 만남으로 연결되기도 했답니다.
이후 10월 중순에는 가을볕이 좋은 성미산에서 놀이 팀들이 두 번째 난감모임으로 다시 만났습니다. 성미산에서 놀이와 배움이 함께 하는 커뮤니티 공간을 꾸리고 있는 놀래의 아지트, ‘개똥이네 놀이터’에 찾아간 것이지요. 10년이 넘도록 전래놀이와 노래를 가르치고 공부해온 놀래의 정영화 선생님(그대로)의 이야기를 청해 들으며, ‘직접 놀지 않고는 모른다’는 단호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강북의 청년 그룹 ‘동네형들’이 걸어온 길에 대해서 들어보았습니다. 이 자리에는 지난 난감모임과 창의서밋에 오셨던 분들과 함께, 우면동에서 놀이터를 만들어가는 ‘동네 한바퀴’라는 팀과의 새로운 만남도 있었습니다.
하반기부터 만들어간 놀이에 대한 이야기 마당은, 뚜렷한 결과를 도출하는 데에 목적을 두기 보다는 느슨한 듯 만나 서로의 고충과 생각을 들으며, 이 사회의 놀이에 대해 손 맞잡고 이야기해나갈 ‘친구’를 만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소중한 만남을 기반으로 생겨날 앞으로의 더 큰 ‘놀이판’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