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기획이라는 미로를 여행하는 청소년 활동가를 위한 안내서’
워크숍을 만들면서 가졌던 몇 가지 질문들
지난 ‘사업 기획이라는 미로를 여행하는 청소년 활동가를 위한 안내서’는 청소년 지도자(활동가)들이 현장에서 사업을 기획할 때 필요한 자기 질문 & 체크리스트를 함께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열게 된 워크숍이다. 이에 하자 교육팀에서는 이러한 교육사업을 다양하게 진행해온 지속가능한창작공동체를 중심으로, 공동기획과 진행을 시도해보게 되었다.
이 워크숍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왜 이러한 워크숍을 기획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짧은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너희들은 어떠한 지점에서 출발하여 이와 같은 기획을 하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인 것이다. 과정을 만들면서 함께 나눴던 질문 몇 가지만 꺼내보자.
청소년 교육 현장에서 새로운 판을 열어야 하거나 사업을 기획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무언가를 시작해야할 때뿐만 아니라 집중해서 하고 있을 순간에도, 마무리를 해야 할 시점에서도 반복적으로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질 것이다. ‘사업 잘 하고 있나?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이 질문은 언제나 연습이나 실험이란 용납되지 않는 날것의 현장에서 점검되고 평가받는다. 항상 이 상황은 불안하고 초초하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은 없다. 그러하다 보니 현장마다 상황마다, 다른 맥락과 기준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늘 해오던 관성과 습관에 기댄 쉬운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색다른 도전이나 실험을 시도하는 것은 무모한 선택이고, 경험은 새로운 성장과 도약을 위한 자원이 아니라 지독한 습관의 독이다. 그래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주어진 날 것으로서의 현실과 문제 상황을 늘 새롭게 재인식하면서, 기획의 출발선을 재설정하고자 한다면 무엇이 필요할 것인가.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은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할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공동의 지향과 방향으로서의 거대 아젠다만이 아니라, 현장의 구체적인 문제 상황에서 기인한 특수성들을 반영한 기획들을 해야 한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아젠다와 구체적이고 특수한 현장의 문제 상황을 함께 반영하여 기획할 수 있도록 수시로 점검할 수 있는 현장 활동가들의 자기 질문 & 기획 체크리스트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서 이를 현장 활동가들의 다양한 경험자원과 날것으로서의 문제의식과 상황들을 토대로 사업 및 교육 기획에 대한 스스로의 기준을 함께 만들어보는 과정을 열어보고자 했다.
이 과정을 기획하면서 함께 나눴던 우리들의 질문 몇 가지만 꺼내 보자.
우리는 주로 어떤 사람들과 이 워크숍을 진행할 것인가? : 대상 설정
모든 사업 기획은 처음부터 ‘한계’를 안고 시작한다. 시간, 예산, 인력, 제한된 사업구조 등 그 한계는 다양하다. 우리는 한계 자체를 바꾸어 내거나, 한계를 인정하되 나머지 요소들을 잘 구조화하거나, 한계에 막혀 구태의연한 사업 진행을 하게 되는 등 다양한 선택을 하면서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연수를 기획하며 우리가 마주한 ‘한계’는 무엇이었을까? 초기 외부 협력기관의 사정으로 인한 연수의 회기 및 시간 구조였다. 협의를 통해 월 1회, 총 3회라는 제안을 주 1회 총 4회로 변경하긴 하였으나 제한된 시수는 마찬가지. 우리는 이 구조 안에서 “사업 기획과 관련하여 ‘시설이나 기관에서 일하는 청소년활동가’를 만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대상을 만나는 것이 좋을 것인가?” 라는 질문을 통해 우리가 워크숍에 초대할 주요 대상을 설정하였다. 다양한 연차의 청소년 시설 실무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주요 참여 대상으로 설정한 활동가의 상황을 재확인하기도 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했다. 이들이 마주한 공통적인 어려움은 ‘해야만 하는 의무 사업들이 많아, 매너리즘에 빠져 기존 틀대로 하기 일쑤다’ ‘기획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 ‘혼자 고민하는 구조가 많아 힘들다’ ‘새로운 인사이트가 부족하여 소진되는 느낌이다’ 등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잡은 연수의 방향은, 강의가 아닌 워크숍을 통해 참여자들이 자신 안에 있는 문제의식을 끄집어내어 성찰해보고, 현장의 상황을 맥락 중심으로 살펴 재구조화함으로써 현장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중심을 잡는 것이다. 이는 참여자 자신의 현장 경험이 중요한 재료가 된다. 따라서 기획의 기본적인 프로세스를 알되 자신과 환경에 대한 분석이 가능하도록 최소 몇 차례 이상 자신이 주체적으로 사업 기획을 한 경험이 있는 2~5년차 실무자를 주요 초대 대상으로 설정하였다.
기획에서, ‘문제의식’은 어떤 의미인가?
일반적인 청소년 활동가들이 살아가는 현장의 현실에서는 자기 스스로의 문제의식에서 사업 기획을 시작하기 보다는, ‘주 5일제’ ‘토요일 사업 활성화’ 등 청소년 관련 정책들의 변화들에 부응하기 위해 급박하게 사업에 끌려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한계라고 한다면, 사업 기획을 위해서는 그 안에서 왜 그것을 해야 하는가, 어떠한 변화를 꿈꾸는가 등에 대한 분명한 문제의식이 필요할 것이다. 카테고리가 주어질 뿐, 기획의 방향은 주어지지 않는다. 주어진 요소들을 놓고, 자기 문제의식과 상황 요소들을 가지고 어떻게 구체화하는가의 문제이다. 즉, 기획자가 공유하고자 하는 ‘가치’가 잘 나누어질 수 있는 스토리를 잡아나가는 것이다. 이는 ‘붕-뜬’ 이야기가 아니라 매우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활동가들이 자신 스스로의 ‘문제의식’이 사업 기획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이며 어떻게 맥락을 잡는 뼈대가 될 수 있는 지를 공유하고자 했다. 소위 콘셉트가 잘 잡힌 사업들을 보면 이러한 스토리가 매우 분명하다. 이는 기획자가 사회적 맥락과 청소년 대상에 대한 성찰 속에서 문제의식의 초점을 잡고 분명하게 정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왜 기획자의 일상에서 질문을 시작하는가?
우리는 일상적인 작은 선택 안에서도 대의적이고 올바른 가치를 이야기하는 데에 익숙하다. 당연히 선택의 모래알 속에는 가치의 전 우주가 깃들어 있기 마련이고, 또한 그것을 내세우는 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다만 모두가 다 이해하고 공감하는 가치만이 아니라 그 가치와 공감하고 공명했던, 그래서 그 가치로 나아가게 만들었던 - 우리의 일상 안에서 발견한 상황과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꺼풀만 벗겨내어 좀 더 솔직하고 예민하게 상황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나는 어떤 구체적인 인식과 고민, 질문에서 시작했는가를 드러내 보자. 작고 사소해도 좋다. 솔직하고 예민할수록 좋다. 멋진 ‘남의 용어'가 아니라, ‘날 것’ 그 자체를 끄집어내어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구체적으로 어디서 발을 딛고 출발해야 하는 지, 누구와 함께 할 수 있는 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다 선명해질 것이다. 이는 기획자의 일상에 숨어 있다.
또한, 스스로 질문을 하다보면 습관적으로 지나치던 것을 다시 보게 되며, 문제의식 자체가 분명해진다. 그리고 현 상황을 ‘어쩔 수 없다’며 구태의연하게 넘어가려는 한계에서 벗어나 해결 가능성을 모색하는 단계로 우리의 사고를 전환시켜 준다. 현장 경험의 과정들을 쪼개어 놓고 질문하며, 이 질문을 통해서 하나하나의 요소들을 분별하게 되며, 이들 요소가 가지는 필요성을 스스로와 타인들에게 설득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답하며 매핑을 하다보면 오히려 간단하고 심플하게 문제를 보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일상에서 질문을 해보는 이유이다.
기획은 누군가에게 열어주는 판인가, 함께 여는 판인가?
사업 기획 시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고민하고 질문하면서, 활동가들이 맞닥뜨리는 가장 흔한 딜레마는 자발적이고 주체적이지 않은 대상들, 즉 참여자들을 어찌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은 잘 들여다보면 이미 참여자를 일방적으로 수혜자로만 전제하는 시각이 깔려 있다. 기획자는 일상에서 날 것으로 자기 질문을 발견하고, 절실한 자기 문제의식을 기획에 담아야 한다. 다시 말해 기획자는 판을 열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고민과 절박함을 가진 사람들,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풀어나갈 판을 먼저 제안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자는 함께 모여서, 함께 기여하며, 함께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이다. 이번 워크숍을 여는 자리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한 이야기는 “우리는 사업에 적용할 아이템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였다. 참여자들에게 받은 사전 신청서 중에 써 있던, ‘어디에도 없는 새롭고 창의적인 사업 아이템’ 쇼핑에 대한 기대는 애당초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한 이야기는 “진행자는 별 말을 하지 않습니다”였다. ‘사업 기획이라는 미로를 여행하는 청소년 활동가들을 위한 안내서’로서의 자기 질문과 체크리스트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그림인 것이다. 늘 사업을 진행하면서 스스로가 전전긍긍하고 고민했던- 자발적이고 주체적이지 않은 대상으로서의 수혜자처럼 그렇게 우리도 입장만 바꿔 이 워크숍에 앉아 있지는 말자는 것이다.
이 워크숍의 모든 활동은 팀을 기반으로 하여, 팀원들의 활동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3명으로 이뤄진 강사들 또한 팀 안으로 들어갈 때는 비슷한 고민을 가진 1/n의 팀원으로서 우리가 현장에서 가졌던 발견과 질문들을 꺼내 놓는다.
함께 할 동료는 조직 안에서만 찾아야 하는가?
공동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되, 다양한 배경과 활동의 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일수록 기획은 더 새로워지고 재미있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획은 개인보다는 공동으로 하는 기획이 과정도 더 재미있고, 결과도 더 만족스럽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지원기관에서 현실적으로 공동기획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일까? 일반적으로 청소년 지원기관들은 그리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지 못하다. 적은 인원이 많은 일들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해내야 할 일과 사업들이 너무 많다. 우리는 그러할 때 함께 일할 동료를 기관 안에서만 찾아야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이런 외부 연수나 워크숍을 오면, 보통 필요한 정보만 듣고 휭-하니 가버린다. 그 곳에는 자신과 비슷한 절박함과 고민으로 와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잠재적으로 연대 가능한 동료들이 손만 내밀면 닿을 수 있는 만큼의 거리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길 기대했고, 이들과 함께하는 단위들을 만들어주고자 했다. 동료는 내가 일하는 기관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커리큘럼'은 완성되면 불변의 것인가? : 유연한 진행
우리는 위와 같은 몇 가지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을 거쳐, 아래와 같은 커리큘럼을 구성했다. 그리고 매 회 진행이 끝나면 리뷰와 다음 회차 세부 구성을 논의한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의 에너지와 내용을 진행하는 속도, 그리고 발견되는 필요성에 따라 회차별 세부 진행 내용을 조절하고 있다. 커리큘럼을 다 진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설정한 목표에 참여자들이 함께 도달해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획’ ‘문제 의식’ ‘발표’ 등의 단어들은 일부의 어떤 활동가들에게는 무겁고 부담되는 단어들이다. 삼시 세 때 먹는 밥처럼 필수적인 것들임에도 말이다. 따라서 이에 즐겁고 가볍게 접근하도록 하기 위해 첫 회차에서는 즉흥적인 음악창작 작업과 유쾌한 날것의 가사 만들기를 공동으로 하면서 일상을 돌아보도록 했고, 팀별 결과물의 발표 또한 네트워크 파티라는 이름으로 편안하게 진행하였다.
구분
단계
내용
1강
Opening & 일상 깨기
∎O.T. / 팀 만들기
∎음악으로 만들어보는 청소년 활동가들의 일상 희노애락!
2강
기획난감, 문제인식하기
“갑자기 기관에 뚝 떨어진 사업! 대략 난감한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사업을 기획-실행할 때 예상되는 문제 상황을 질문을 통해 진단
3강
기획공감, 문제해결하기
“우리 현장에선, 무엇을 기준으로 사업을 기획할 것인가”
∎현장에서 꼭 필요한 자기질문 & 기획 체크리스트 만들기
∎사업기획과 실행에 필요한 현장 점검 기준을 설정/ 문제해결 방안 도출
4강
공유 & 네트워크파티
“무엇을 서로 배우고 공유할 것인가”
∎팀별 자기질문 & 기획 체크리스트 공유
∎과정에서의 배움과 통찰 공유 & 네트워크
우리의 경험은 우리만의 것인가? : 공유 자원 만들기
사실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흔하고 일상적인 요소들이 얼마나 귀한 것들이 될 수 있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지나치기 쉽다. 이미 익숙하고 당연한 것이니 그럴 수도 있고,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발견해낼 기회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사업에서 이런 것을 들여다보자고 했던 이번 워크숍 또한, 이러한 일상적인 경험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소해보이지만 나름의 의미를 가지는 경험은 우리만의 것일까? 사업 기획을 고민하는 청소년 활동가들의 고민 과정-경험들이 공유된다면 이것이 또 다른 판에서도 공동의 고민의 단초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런 고민을 하면서- 워크숍 과정에 참여한 청소년 활동가들 각각의 자기 상황 고민과 질문들이 함께 보태어지고, 서로 기여하면서 만들어진 체크리스트를 각자의 소유물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공유 자원화할 예정이다. 이는 그것이 정답이어서가 아니다. 이 과정이 뭐가 대단해서도 아니다. 비록 이 워크숍 과정이 참여한 활동가들에게 완성이 아닌 환기에 그친다 하더라도, 우리의 경험은 다른 활동가들의 또 다른 걸음에 도움이 되는 공동의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차후 활동가들이 함께한 과정 및 자료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할 예정이다. 혹, 어느 여정에선가 비슷한 관심을 가지고 걷는 분이 있다면 우리의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경험을 공유하고 또한 당신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어줌으로써 함께 걸어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