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서울에 올라오면서 처음으로 일을 구하게 됐다. 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산속에 있는 본가에서 쉬다가 다시 학교에 가기로 마음먹고 서울에 올라오게 됐다. 서울에 올라와서 다시 배우는 것은 좋았지만 금전적인 부담이 컸다. 학비는 둘째 치고 내가 지내는 집의 월세와 생활비만 몇십 만원이 훌쩍 넘어갔다. 다시 서울에 올라오겠다는 내 선택에 대한 책임감과 염치없이 부모님 돈만 받아쓸 생각 말라는 오빠의 비난에 떠밀려 조금이라도 돈을 벌자는 마음으로 아르바이트를 구하게 됐다.
알바0국, 알0몬 앱을 깔고 교통비를 줄이기 위해 가까운 곳 중심으로 알바를 알아봤다. 온갖 곳에 문자를 보내고 면접을 보러 다니는데 알바를 구하는 곳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일할 곳 하나 이렇게 구하기 힘든지 황당했다. 나중에는 내가 문자를 보내놓고 면접 보러 오라는 답이 오면 여기가 카페였나 편의점이었나 어디였더라 헷갈리기까지 했다.
면접을 보러 가면 경험이 없어서 어렵겠단 말을 듣고, 스무 살이라 하니 대학은 왜 안 가는지 묻고, 갑자기 묻지도 않은 자기 자식 같다며 정말 자기 자식 이야기를 하시고 딸 같아서 묻는다며 무례한 질문을 다 하고는 나를 붙여주지도 않았다. 알바를 구하고 면접을 보러 다니는 내내 내가 이렇게 쓸모없는 사람이었나?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가 생각해도 부러 나를 뽑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경력도 없고, 학교도 안 갔고, 대안학교를 다녔다는 것도 수상하다. 내가 아니어도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라 나를 뽑을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다. 나였어도 같은 돈 내고 사람을 뽑는다면 내가 아닌 더 쓸 만한 사람을 뽑았을 것이라고 연락이 오지 않는 핸드폰을 만지며 수긍했다.
여차여차 과정을 거쳐서 나는 한 베이커리에서 일을 하게 됐다.처음 일주일은 설거지 머신이 된 기분으로 설거지를 하고 빵 종류와 이름을 외우고, 시식 빵을 써는 법이나, 빵 포장 법을 배웠다. 처음 일하는 것치고는 잘한다는 칭찬도 들었고 내가 봐도 내가 일을 못하는 것 같지 않았다. 거기다 이 빵집은 빵이 무척 맛있어서 힘들어서 나도 그만둘까 싶다가도 시식빵을 내며 슬쩍 먹을 때 정말 일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스기 보는 법, 런치타임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사람들하고도 적당히 지낼 수 있었고 손님들한테 안내해주고 추천해줄 여유도 생겼다. 일주일마다 일하는 시간이 바뀌고 휴무도 불규칙적 이다보니 힘들기는 했지만 일하는 것 하나하나는 아주 어렵지 않았고 점점 내가 능숙해지는 게 느껴지니 뿌듯하기도 했다. 돈을 버니까 그 만큼 여유 있게 쓸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것도, 나를 위한 일도 크게 망설이지 않고 계산을 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여기서 계속 일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내가 실수를 하나 했다. 큰 실수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크게 혼났다. 그날 화내는 쉐프님을 말려줄 만한 사람도 없었고 그 상황은 나한테 엄청 위협적이었다. 하는 말들도 무서웠고, CCTV도 있고 손님들도 있어서 그럴 리가 없다고 알면서도 저 사람이 그대로 나를 때릴까 봐 무서웠다. 그 상황에서 변명도 못 하고 죄송합니다 사과밖에 할 수 없는 것도 싫었다. 버스를 타고 돌아가면서 당장 내일은 어떡할지 잘리면 어떡하나 걱정을 하면서 죄송하다는 카톡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고 이런 상황에 놓이면서 일을 해야 하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일을 그만두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이 일 때문에 그만둔다고 말하면 또 한 소리 듣거나 저 사람이 나한테 또 그럴까봐 걱정이 있었다. 다음날 화를 낸 쉐프님 대신 사장님과 점장님이 나한테 이해하라는 말과 사과를 듣고 나는 한 달 정도 더 일하다가 학업을 변명으로 일을 그만뒀다.
이렇게 첫 일을 그만두고 나는 엄마랑 아빠에게 다시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거라고 선포했다. 알바를 구하는 동안 느껴야하는 자괴감이 너무 짜증났고(나는 이런 걸 느껴야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나한테 그렇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일 할 때 같이 일하는 언니들에게 내가 참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그 말이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착하다 순진하다. 그런데 일하려면 그러면 안 된다며 나를 안타깝게 여기는 말들과 여러 상황 앞에 타협해가며 일하는 나와 나를 분리시켜야했다. 일하는 나는 왜 나로 있을 수 없을까. 내가 생활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데, 일상과 일이 분리된 생활, 일에 지배돼서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못하고 스스로 부끄러워야 할 바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서울에 학교를 다니고 공부하러 온 거지 알바해서 돈을 벌기 위해 온 것도 아니었으니까. 내가 복에 겨웠다는 비난도 (특히 오빠에게) 많이 받았지만, 후회는 없다.
앞으로 일을 하더라도 내가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부품이 되는 일, 그리고 나한테도 돈 말고는 가치가 없는 일이 아니라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니, 그리는 게 곧 일이 되면 가장 좋겠지만 아니어도 적어도 내 가치랑 맞닿는 일을 하고 싶다. 내가 나로 있으며 할 수 있는 일. 그게 안 된다면 그냥 일 안 하고 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