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20대는 ‘88만원 세대’라고 불렸다. 대한민국 20대 비정규직 평균 월급이 88만원이라는 사실을 꼬집은 말이었다. 지금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대한민국의 청년 하야티는 달에 88만원만 벌면 소원이 없겠다. 대학교도 안다니는 스무살로 서울에 살기 위해 지금껏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 길거리에 앉아 헤나를 해주고 돈을 받는 일,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고 피자를 굽는 일, 사무실에 앉아 전산 업무를 하는 일, 케이크를 구워 파는 일, 인형탈을 쓰고 춤을 추는 일, 외딴 섬에 들어가 2박3일 동안 워크숍을 세팅하는 일, 녹취를 푸는 일, 청소년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일 등 생각해보면 끊임없이 알바를 하고 있었다. 늘 두 세 개의 일을 동시에 해왔지만 그래봤자 버는 돈은 한 달에 50만원 정도를 넘지 못했다. 일회성으로 반짝 일하거나 너무 짧은 시간 동안 일하거나 짧은 기간 동안 일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일주일에 5일이나 6일을 일하는 직장을 구하면 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터였다. 매일 출근하는 일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5일 상근을 해보고 알게 된 것은 정기적으로 출근하는 일이 내 몸과 정신에 맞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일은 재밌고 보람찼으며 흥미와 적성에 맞았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일을 한다면 꼭 이 사람들과 하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그 일에 시간을 너무 많이 써야 한다는 점이었다. 뭘 하려고 해도 주 5일 출근은 발목을 붙잡았다. 아슬아슬하게 막차 타고 집에 가면 쓰러져 자기 일쑤였고 아침에 눈 떠 버스타고 한시간 반 걸려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주말엔 남은 일을 처리하거나 업무에 필요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평일 동안 못했던 문화생활, 친구 만나기, 술 마시기, 푹 쉬기 등등을 다 해치워야 했다. 시간이 모자라다보니 조금이라도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것이 짜증이 났다. 친구들의 흡연 타임을 못 기다리고 화를 내기 시작한 것, 그래서 화를 내고 욕을 하는 빈도가 잦아진 것도 그 즈음이었다. 땀 흘려 춤춰본 기억이 언제였는지 아득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겨우 3개월 만에 발을 빼기로 결정하면서 <하야티가 출근할 수 없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하야티가 출근할 수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들거나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을 적은 글은 아니었다. 에이포 두 장 분량의 글에는 온통 춤추는 얘기뿐이었다. 출근할 수 없는 이유보다는 춤춰야 하는 이유에 가까웠다. 그게 무엇이던 간에 출근을 지속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맥은 같았다. 계속 이 일을 할 경우 통장에 차곡차곡 쌓일 돈을 생각하면 조금 흔들렸지만 캘린더에 꽉 들어차있던 업무와 회의 일정을 보니 다시 마음이 굳어졌다. 사무실은 아무래도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내가 있을 자리는 어디란 말인가.
파티와 축제의 나날들이었다. 출근을 그만두고서는 추고 싶었던 춤도 실컷 추고 노래도 부르고 술도 마셨다. 매달 다른 지역으로 놀러가고 부모님 계신 본가에도 자주 내려갔다. 일할 때는 못썼던 글도 쓸 수 있었다. 그토록 원하던 시간이야 흥청망청 쓸 수 있지만 돈은 거의 벌지 못했다. 그동안 번 돈을 조금씩 아껴 쓰고 간간히 알바를 했다. 굶어 죽지야 않을테지만 돈을 벌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자꾸만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구인구직 사이트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면접을 보고 나서 기약 없는 연락을 기다리는 일도, 겨우 출근했으나 금세 짤리는 일도 일어났다. 정말 일을 해야만 하는 건지, 한다면 얼만큼 해야 하는 건지 줄타기에 실패한 것만 같았다.
하나도 둘도 아닌 세 가지 일을 하며 돈을 버는 것이 쓰리잡이라면 나는 지금 포잡 인생을 살고 있다. 매주 발송되는 소식지를 만드는 일, 청소년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춤을 가르치는 일, 과자를 구워 카페에 납품하는 일, 그림 수업에 누드모델로 서는 일이 그것이다. 서로 연관성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거리가 아주 먼 분야의 일들을 하며 돈이 안 되는 일, 돈이 드는 일까지 하느라 몸이 네 개라도 부족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서울로 상경한 후 만 3년 동안 일과 삶과 놀이의 균형이 가장 잘 맞는 때가 바로 지금인 것 같다.
작년 가을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겨울엔 수영을 등록하고 한국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땀 흘려 몸을 움직이는 일이 내 생활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지금 하는 운동과 병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평일 오전과 오후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빼면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은 주로 일하는 시간이 아주 짧거나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일들이다. 언제든지 시간 날 때 할 수 있는 일. 춤을 가르치거나 과자를 굽는 일이나 모델 일이 그렇다.
가장 많이 시간적, 정신적 품을 들이는 일은 매주 발송하는 소식지를 만드는 일이다. 주간 소식지는 생각했던 것만큼 어렵지만 상상했던 것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원래 내가 해오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일을 하며 받는 돈은 어디가서 돈 번다고 말하기엔 약간 부끄러운 액수지만 나한텐 충분한 돈이었다. 내 노동력을 팔아서 임금을 받는다기보다는 알바 구할 필요 없게 만들어 줄 테니 맘 편히 하고싶은 일 해보라는 실험 같았다. 나는 그 일을 하며 축구도 할 수 있고 놀러갈 수도 있었다. 돈과 축구와 놀이,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다 있었기에 <하야티가 출근할 수 없는 이유>같은 글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에는 축구하고 놀러다닐 시간이 보장된다는 점도 있지만 사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번다는 점이 컸다. 나는 원래 글 쓰고 춤추고 음식 만드는 사람이었는데 똑같이 그 일을 하며 돈을 받는다는 건 조금 송구스럽기까지 했다. 돈을 벌면서 하고 싶은 일도 챙겨야 할 필요 없이 돈을 버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경계가 흐릿해진 것이다. 돈을 안 벌어도 된다면 좋겠지만, 돈을 계속 벌어야 한다면 당분간은 이런 생활을 지속해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