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첫 알바를 예상보다 일찍 시작했어요. 사실 주 6일에 하루 7시간 근무였으니 직장이라고 봐도 무방했죠. 직원으로 오랫동안 다닐 마음으로 지원한 거였어요. 끝이 그렇게 처참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고요.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재수를 하던 중,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우울증에 걸리겠다 싶었어요. 매일이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삶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옥 같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우울증이 왔던 것도 같아요. 하지만 부모님의 기대 때문에 어떤 결정을 내리기가 무척이나 힘들었어요. 남들과 다른 길을 가기가 두렵기도 했고요. 그래도 살려면, 재수가 아닌 뭔가 다른 선택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부모님 몰래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녔어요. 대학을 가지 않는 대신 돈이라도 벌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죠. 저 스스로에게도 명분이 필요했어요.
제가 일했던 곳은 카페였어요. 솔직히 말하면 가장 만만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경험을 해본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레시피대로 음료만 타면 그만이니까요. 진상 손님도 제가 느끼기엔 거의 없었고요.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제가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사람들과 7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처음 근무를 시작하던 날, 직원 중 아무도 저에게 이름이나 나이 등을 묻지 않았어요.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됐어요. 직원 모집 공고에는 명시되지 않았던, ‘근무지 이동 대상자’로 제가 뽑힌 거였어요. 쉽게 말하면 다른 지점의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상대적으로 바쁘지 않은 매장의 직원이 그쪽으로 가는 거예요. 동료들에게 저는 어차피 금방 떠날 사람으로 생각됐겠죠.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어이없고 당황스러웠지만 어렵게 얻은 직장인만큼 최대한 고분고분하게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한편으로 바뀔 근무지에는 나와 맞는 동료들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어요.
새로운 매장의 동료들은 모두 남자였고 저와 나이 차이가 10살 이상이었어요. 그리고 사회생활을 이미 많이 해봐서 그런지 몰라도 하나같이 적정 거리를 두고 서로를 대하더군요. 원체 사람에 대한 관심도 많고 친해지는 걸 좋아하던 저는 또 한 번 실망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애초에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동료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별 생각 하지 않고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오픈과 마감이 교대로 돌아간다’는 공고에도 나와 있고 직접 듣기도 한 내용과 달리 저는 계속 마감 업무만 했어요. 마감은 그냥 청소 업무예요. 쓰레기통 비우고, 화장실 청소하고 여기 저기 쓸고 닦는 거죠. 불행히도 같이 마감을 하던 사람이 엄청 까다로웠어요. 새벽 1시에 카페 문을 닫는데, 초반에는 매일 새벽 2-3시에 끝났어요. 청소하고, 확인 받고, 지적 받은 곳 다시 청소하고의 연속이었죠. 힘들었지만 어디를 가나 힘든 건 매한가지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했어요.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일이 손에 익자 다른 문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나름 중소기업 정도의 규모를 가진 카페였는데 운영 방식은 완전히 주먹구구식이었어요. 직원들 근무 시간표를 바로 전날에 짰고, 그 시간표에서 점장은 항상 황금 시간대를 차지했어요. 휴무도 일정하지 않아서 일주일에 한 번도 못 쉬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점장은 이렇게 말했어요.
“초과근무 수당이 최저시급의 1.5배인 거 아시죠? 저희가 다 챙겨드릴게요.”
사람보다 돈을 더 높은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었어요.
어느 날, 계속된 초과근무를 견디다 못해 가장 연장자인 직원이 내일부터 나오지 않겠다고 점장에게 얘기했어요. 그 직원에게 퇴사 통보를 들은 점장은 심한 욕을 했어요. 물론 뒤에서요. 하지만 직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 분 앞에서는 잘 맞춰드리겠다며 살살 달랬어요. 저는 그 때 즈음부터 그만 둘 생각을 했어요. 사람 신경 안 쓰고 일만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생각했어요.
마침내 저까지 그만두겠다고 말했을 때, 점장은 정말 폭발해버렸어요. 제 말을 듣고 그가 한 첫 마디는 “나 엿 먹이기로 작정했어?”였죠. 그리곤 주방에서 조리를 하고 있는 제 옆에 와서 계속 소리를 질렀어요. 그때는 진심으로 무서웠어요. 정말 맞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도 어찌어찌 버텨서 시간을 채우고 퇴근을 했어요.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카톡방에 점장이 공지를 올렸더군요. 저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저는 별로 당황하지 않았어요. 점장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저는 근로법 위반에 대한 처벌이 꽤나 무겁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다음 날, 고용노동부에 가서 노무사와 함께 그동안의 초과근무 수당과 주휴수당을 포함한 월급을 계산했어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점장의 말은 전혀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말도 듣고 왔어요. 그렇게 월급날이 되고 들어온 돈은 70만 원 남짓이었어요. 계산해보니 40만 원 정도를 떼어먹혔더라고요. 회사 책임자와의 통화 끝에 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돈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악몽 같았던 일들은 비로소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당시 정신적·육체적으로 받은 스트레스는 아직까지도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어요.
많은 친구들이 너무 쉽게 “알바하고 싶다”고 말해요. 저도 처음에는 알바를 가볍게 생각했어요. 내가 가게의 주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알바’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제 주변에 누가 그런 말을 하면 말려요. 돈을 받으면서 일을 한다는 건 그 환경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또 그 상황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는지조차 확실치 않은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만 저처럼 최악을 겪게 될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그런 최악의 경험은 절대로 사회생활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트라우마고 상처일 뿐이에요. 모임 같은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책을 많이 읽는 게 사회생활에 훨씬 더 좋은 경험이 돼요.
저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오래 걸려도 좋으니 천천히 생각해서 기회가 왔을 때 도전해보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물론 들어간 곳의 환경이 좋지 않으면 다시 나와야죠. 나보다 더 소중한 건 없으니까요.
저는 고용주가 피고용자를 배려하거나 지켜주는, 환상 속에나 나올 법한 일을 믿지 않아요. 모든 알바생들, 직원들이 스스로를 지키면서 일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