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1일 하자센터 신관 4층 하하허허홀에서는 세월호 이후의 교육을 생각해 보는 심포지엄 ‘자울과 공생의 교육은 어떻게 가능할까’가 열렸습니다. 세월호의 비극이 일어난지 어느덧 1년. 사람보다 이윤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시스템이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참사 이후 각계에서 참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우리 사회가 왜 이 지경이 되었고, 어떻게 하면 달라질 수 있을까?” 1년이 지난 지금 하자센터와 격월간 민들레, 공간 민들레가 함께한 이 심포지엄은 모두의 마음 속에 맴도는 이 질문을 함께 나눠보는 자리였습니다. 우선은 서로를 배려할 줄 아는 감수성과 그 토대 위에서 적절히 처신할 줄 아는 자율성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진정한 민주사회로 나아가는 길이자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실제의 방안이 아닐까, 하는 발제 및 토론자들의 제언이 기본이 되었고, 볕 좋은 토요일 오후 일부러 시간과 마음을 내어 봄나들이 대신 참여한 이들의 의견이 보태져 4시간 내내 충만한 자리였습니다.
시작은 하자작업장학교 고등과정을 비롯한 청소년들이 열어 주었습니다. 지난 2월 겨울방학기간 중 하자센터에서 열린 청소년 춤 워크숍 ‘남정호 즉흥춤 교실’을 수강한 이들입니다. 이 날 선보인 작품은 워크숍의 총괄 기획을 맡았던 남정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의 작품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였습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충격과 위로를 담은 작품이죠. 특히 이들 모두 무용을 전공하지 않았으나 그래서 더욱 소박한 열정이 배어나왔던 무대. 이번 심포지엄을 위한 더할 나위 없는 오프닝이었습니다.
이후 1부에서는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이 ‘자율, 공동체의 규율과 개인의 자유 균형점 찾기’라는 제목으로 첫 발제를 발표했습니다. 그는 세월호 이후의 교육이 민주시민교육이어야 한다는 제언을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수업 방식의 전면적인 변화, 즉 토론과 협력을 통한 문제 해결형 프로젝트 수업으로 넘어가야 하는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유와 책임 속에서 서로 돌보며 ‘학교의 시민’으로 성장해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이들이 학교의 주인이 되어서 학교의 일을 관여하고, 결정하고, 참여할 수 있는 학교 민주주의가 꽃피어야 하겠다. 이것이 민주시민교육의 실질적 내용이라고 짚어 주었습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현병호 격월간 <민들레> 발행인은 교통량이 많은 번화가인데도 일체의 표지판과 신호등을 없앤 유럽의 거리 사진을 보여주면서 발제를 시작했습니다. 4차선 도로가 그냥 광장이 되어버렸는데 왜 사고도 없고 교통체증도 없을까. 그건 공유공간의 철학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통합과 자유, 분리 대신 통합, 규제 대신 자유…. 그는 신호등 없는 거리를 보면서 우리의 학교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과잉규제는 눈을 가리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시야협착을 낳는다고 합니다. 마침, 말의 눈가리개가 라틴어로 ‘커리큘럼’이라고 한다는 발제자의 말에 많은 참여자들이 공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의식 없이 혼자 어떻게든 빨리 갈 생각만 하게 만드는 곳, 우리의 학교에서 자율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발제자는 신호등 없는 거리에서처럼 서로 눈빛과 몸짓으로 소통이 되고 온몸이 안테나가 되어 움직이는 신체성의 언어를 키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웃을 믿으면 이웃도 너를 믿을 것이다’라는 랠프 에머슨의 말처럼 그런 협력과 공생이 우리 삶과 교육의 기본이 된다면 어떨까. 특히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의 변화를 요구하기 보다는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도 보태졌습니다.
잠깐의 휴식을 거쳐 재개된 심포지엄 2부에서는 학교 현장과 지역 기반의 마을 공동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성원중학교 권재원 교사와 문탁네트워크 이희경 연구원이 각각 ‘자율’과 ‘공생’을 맡아 풍부한 의견을 덧붙여 주었습니다. 스스로를 ‘비표준교사’로 소개한 권재원 교사는 자율을 기르는 교육은 다시 말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술들을 갖추게 해주는 것이며 바로 인문학(Liberal Arts)이라고 말합니다. 교육은 원래 위험한 것이다. 다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다칠 권리, 죽을 권리가 바로 교육이라며 발상의 전환을 촉구한 권재원 교사는 인문, 사회, 과학 교육을 하면서 이것을 세상을 하나 하나 알아가는 도구로 써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몇 명의 동네친구들이 아파트 거실에 모여 꾸렸던 공부 모임에서 시작해 이제는 많은 마을 사람들이 공부하고 또 일하는 공동체가 된 문탁네트워크의 이희경 연구원은 “세월호는 정말 시스템이 없어서 비롯된 비극일까요?”라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혹시 역으로 그것은 시스템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닐까. 인근 섬의 어부들이 채 30분이 안 되어 현장에 도착한 것은 시스템도 이념도 아닌, ‘살려야 한다’는 자기 몸의 소리에 자연스럽게 따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호등이 없을 때, 매뉴얼이 없을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스스로 구원할 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합니다. 현재 일주일에 두 번, 네 과목을 공부하는 1년제, 열 다섯 명 정원의 작은 학교 ‘파지스쿨’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희경 연구원은 제도(공교육), 제도밖(대안학교 등)을 구분하지 않고 수없이 다양한 실험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시스템이 지배하는 단 하나의 큰 길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소리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내놓은 수없이 작은 길들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김찬호 하자센터 부센터장의 사회로 4명의 발제자 및 청중이 참여한 자유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서로의 발표 속에 영감을 얻은 4명 발제자들의 코멘트도 좋았으나 이 시간의 주인공은 질문 속에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녹여낸 참여자들이었습니다. 자율의 공간을 만들어내고는 싶으나 모두 대입에 집중해야 하는 학교 분위기 속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교사, 파지스쿨 같은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는 지역 활동가도 있었습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지 않고 자신을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개인학교’라고 소개한 당찬 고3 여학생도 의견을 밝혔습니다. 큰 아이가 7살인데 대안학교 입학을 고민 중이라는 학부모도 있었고요.
심포지엄, 이라는 딱딱한 이름을 붙이긴 했으나 모두 세월호 이후의 교육을 고민하는 마음들이 모였기에 어떤 학술행사도 따라올 수 없는 공감과 소통의 장이었습니다. 이 날 이야기했던 것들은 일회성으로 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 큰 화두인 셈이어서 공간 민들레의 경우 계속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우선 5월 16일 공간민들레에서 역사학자 김기협 선생, 정치학자 채효정 선생과 함께 근대성에 대한 공부를 해보려고 한답니다. 하자센터도 5월 중 계속 자공공아카데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저 공부하는 것이 아닌, 실제 행동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교육의 장. 앞으로도 계속 소식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