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좋아하고, 만화가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웹툰 작가님들께 멘토 인터뷰 제의를 드렸다. 만화가를 꿈꾸는 내게 ‘웹툰 작가’는 좋은 멘토일 수 있다. 작가님들께 궁금한 것도 많고, 어떤 사람일지 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인터뷰 제의 메일을 보내고 답변을 받지 못할수록 의문이 생겨났다. ‘이분을 인터뷰해서 뭘 얻어갈 수 있을까?’
예술은 주관적인 분야다. 각자의 스타일과 방식에 따라 표현할 수 있는 것, 표현하고 싶은 것이 바뀐다. 작가님을 멘토로 선정해도 개인적인 존경과는 상관없이 그분들이 내게 해줄 수 있는 얘기엔 한계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해답’을 알려줄 멘토보단, ‘나만의 색깔’을 만들기 위한 경험과 넓은 시야이다. 내 주변 사람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어떤 식으로 ‘예술 작품’를 만나는지, 왜 예술 작품을 보는지, 어떤 예술 작품을 보는지. 이 궁금증들을 좆다 보면 결국 ‘그럼 나는 어떤 예술 작품을 그려야 하는지’에 가까워질 거라 믿는다. 그래서 멘토 인터뷰 대상을 ‘워너비’나 ‘선배(멘토)’가 아닌, ‘내 주변인’으로 변경했다.
‘예술 작품’이 주는 재미는 무궁무진하다. 위로와 공감이 될 수도, 그저 재미와 흥미가 될 수도, 대리만족이 될 수도, 교훈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세상 여러 콘텐츠로부터 다양한 감상을 받고 산다. 각자의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모두 다르게.
그래서 이번 러닝 크루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하며 정을 쌓은 러닝 크루 죽돌들의 관심사를 인터뷰해 보려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떤 취향과 관심사 속에 살아가고, 어떤 예술 작품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지 알아보는 방향으로. 어쩌면 이 방식이 내 작품활동에, 나만의 색깔 만들기에 도움을 줄 ‘멘토’ 역할이 될 것이다.
그린
그린의 요즘 취미는 무엇인가요?
요즘은 요가랑 책 읽기, 산책 이 세 가지 정도인 것 같아요.
어떤 책을 주로 읽으시나요?
저는 사실 자기계발서는 많이 안 읽어요. 예를 들어 돈을 더 많이 번다거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 이런 느낌의 누군가가 조언하는 책이요. 소설이나 에세이 종류를 많이 읽고, 시는 가끔 읽어요. 주로 에세이를 많이 읽는 것 같아요. 특히 제가 관심 있는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의 에세이라든가, 청소년, 환경, 어린이, 이런 소수의 인권 쪽 관련된 에세이를 많이 읽어요. 아니면 여행도 좋아해서 여행 관련 에세이도 많이 읽는 것 같아요.
소설도 읽으시나요?
소설도 읽어요. 근데 편식이 좀 심한 게,(웃음) 한국 젊은 여성 작가님들의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기는 해요.
최근에 읽었던 소설이 있을까요?
가장 최근에 읽은 거는 최은영 작가님의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소설인데, 그전에 읽었던 <밝은 밤>이 조금 더 인상 깊었던 것 같아요.
<밝은 밤> 책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 줄 수 있나요?
여자 주인공이 남편과 이혼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는데 오랫동안 교류가 없던 외할머니를 만나게 돼요. 외할머니랑 주인공 어머니랑 사이가 안 좋은 상태였거든요. 외할머니를 만나고 외할머니의 과거 이야기를 듣는 식의 스토리텔링이 이어지면서 세 모녀라고 해야 될까요? 그들이 가지고 있던 앙금이나 인생의 고민, 숙제 같은 게 조금조금씩 풀려가는 과정들을 담은 책이에요. 굉장히 재밌어요.
그 책의 매력 포인트는 어떤 건가요?
일단 몰입감이 엄청 크고요. 사실 저는 스스로 타인의 시선을 어느 정도 신경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책의 여자 주인공도 좀 그래요. 자기 일을 잘하고 싶어 하지만 타인의 시선도 어느 정도 신경을 쓰고, 그렇지만 또 신경 쓰고 싶지 않아 하는 태도가 너무 잘 보인다고 해야 될까요? 거기에 플러스로 나보다 삶을 오래 살아온 사람인 연장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것저것 따뜻함을 깨닫는 과정들이 잘 녹아 있어서 그게 이 책의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생각해요.
주로 그런 소설을 좋아하시나요? 공감되고 스토리가 따뜻한 거.
그렇긴해요. 공감되는 거. 근데 그것만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공감되는 요소가 있으면 좋고, 아니면 뭔가 깨달을 수 있어도 좋아요. 단순히 그냥 ‘재밌어’가 아니라, ‘이런 걸 얘기하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게 느껴지면 대부분 잘 읽는 것 같아요.
<밝은 밤> 소설책에서 그린이 깨달은 건 어떤 게 있을까요? 사소한 거라도.
사실 다른 사람도 그렇겠지만, 저는 누군가 ‘이렇게 이렇게 해!’라고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사람마다 경험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데 ‘내가 해보니까 이게 낫더라. 너도 이렇게 해.’라고 어떻게 보면 강요식이 될 수 있는 그런 말을 안 좋아하는데, 이 책을 읽고 ‘그렇게 말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그냥 위로해 주는 것도 충분히 삶의 방향성을 잡아줄 수 있겠구나.’라고 깨달았어요.
책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여자 주인공한테 이것저것 잔소리를 많이 하거든요. 이혼은 왜 했냐, 이혼하고 시골에 내려와서 사냐, 잘 나가던 직장도 있는 사람인데 충분히 거기서 다시 할 수 있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딴지를 건다고 해야 할까요?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조언이고 친구라서 그런 거지만 제가 읽을 때는 되게 불편했는데, 고향에서 할머니가 해주시는 이야기들은 잔잔하게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얘기라서 그런 삶의 태도도 좋겠다고 깨달은 것 같아요.
그러면 만약에 그린이 책을 발간할 수 있다고 쳐요. 에세이도 좋고 아까 얘기한 것처럼 소설도 좋고요.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를 써보고 싶을 것 같아요?
제 이야기를 쓰겠죠. 소설은 아무래도 좀 더 하드한 느낌이 있어서(웃음) 제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담은 에세이를 내지 않을까 싶어요.
앞서 취미로 요가, 책 읽기, 산책을 말해주셨는데 그 세 취미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일단 제가 페스코 채식을 하고 있잖아요. 육류를 아예 먹지 않고, 생선까지는 먹되 안 먹을 수 있다면 최대한 먹지 않는 채식이요. 이제 1년쯤 하고 있는데, 채식을 하는 사람 중에서 요가를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뭐랄까 자연을 존중하는 듯한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매력을 느꼈어요. 그리고 요가는 ‘운동이 아니라 수련을 한다.’라고 말을 하거든요. 그 말 때문에 궁금하기도 했어요.
사실 요즘 취업을 앞두고 생각이 많았거든요. 어떻게 해야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같은 거요. 고민이 굉장히 많아서 아침부터 밤까지 엄청 속이 시끄러웠어요. 그런데 요가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당장 요가 동작을 이어나가야 하니까, 이게 너무 힘드니까, 다음 동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만 집중하다 보니 생각이 많은 저도 아무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책도 마찬가지예요. 책이 하나의 친구이자 소통 창구가 되는 느낌이에요. 내용에만 집중하다 보니까 다른 생각을 할 새도 없이 거기에만 푹 몰입하게 돼요. 산책도 그래요. 길거리 구경하고 노래 듣고 산책을 하는 동안은 나에게만 집중해야 하잖아요. 다른 생각할 거 없이. 그게 저에게는 하나의 휴식인 것 같아요. 평소에는 너무 생각을 많이 하니까 잠시 생각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준다.
그린과의 인터뷰는 그린의 하자이름(green)처럼 풀내음이 나는 것 같다. 그린의 관심사인 요가, 책, 청소년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내가 도서 [밝은 밤] 속에 들어온 사람처럼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린의 소개 덕에 읽고 싶은 책을 하나 얻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도서 [밝은 밤]과 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구나 고민을 가지고 있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헤쳐 나가는 중이다. 남들의 어설픈 조언이나 한마디가 오히려 생각의 꼬리를 늘리는 꼴이 될 때도 많다. 그럴 때 그냥 ‘요가’처럼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이 행위에 집중할 수 있는 활동이 어떨까.
항상 ‘작품에는 교훈이 있어야해’를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독자들이 무언가 배워갈 혁명같은 작품과 메세지를 만들어야 한단 강박이 있었는데, 행위를 하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단 걸 새삼 깨달았다. ‘예술작품’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밝은 밤]의 할머니같이 조언을 구할 대상으로, 누군가는 ‘요가’처럼 당장 잡생각은 잊고 행복하기 위한 창구로 예술작품을 소비한다. 나도 ‘할머니’에만 갇혀있지 말고, 풀내음 한 번 쭉 들이켜 생각을 환기해 보면 좋을 것 같다.
풀
풀이 요즘 즐기고 있는 취미가 있을까요?
자주 말했듯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해서 뜨개질이나 자수 등 하는 것을 취미로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 자수 배우고 계신 거죠? 배우게 된 계기나 취미가 생긴 이유가 있을까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그런 걸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어요.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 이런 데서 배울 기회가 많았어서, 그때를 계기로 계속하다 보니 손에 익게 됐어요. 그러면서 뜨개질 말고 바느질 같은 것에도 흥미를 느꼈고, 점점 다른 만들 수 있는 것들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자수는 제대로 배워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배우면 내가 만들 수 있는 것의 범위가 넓어지겠다 싶어서 최근에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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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는 주로 어디에 새겨 다니는 건가요?
다양한 데 사용을 할 수 있는데, 실 종류가 여러 가지예요. 면에다가 사용하는 실이 있고, 뜨개실 같은 울실에다가 사용하는 실이 또 따로 있고 그런데, 보통은 그냥 천에다가 새기는 것 같아요. 작품으로서. 면천이나 식탁보에도 자주 새겨요.
‘만드는 것’에 풀이 느끼는 매력이 뭔가요?
가장 큰 매력은 제가 사용할 거를 직접 만들 수 있다는 거? 뜨개질이랑 바느질로는 옷이나 소품들도 다 만들 수 있고, 필요할 때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인 것 같아요.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생각보다 되게 넓거든요. 특히 자수는 실의 색에 따라서도 섬세하게 표현하기가 가능한 분야다 보니까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을 표현하고 싶을 때 좋은 것 같아요.
작품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노트북 파우치요. 제가 만든 건데, 계속 남들 선물용으로만 작품을 만들다가 처음으로 ‘내가 필요한 걸 나를 위해 만들자!’ 하고 만든 게 파우치였어요. 되게 많이 아끼고, 기억에 남는 작품입니다.
자수로는 앞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게 있을까요?
자수는 진짜 해보고 싶은 게 많아요. 세월호 같은 이야기를 기억하는 의미의 작품도 만들어보고 싶고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수로 표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다양성을 담아서요. 성별이나 형태가 명확하지 않고 되게 모호한 느낌으로. 사회에서는 비정상적으로 여겨지지만, 그런 게 자연스러운 작품을 만들어 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마을 같은 느낌으로요. 아무도 만들어 보지 않은 걸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되게 강한 것 같아요.
풀이 즐겨보는 예술 작품이나 콘텐츠가 있을까요?
사전 질문지를 봤을 때, 예술 작품이라 하길래 ‘뭐가 있지?‘하고 고민했었어요. 예술 쪽으로 생각했을 때는 전시나 공연 같은 걸 자주 보는 편인데, 뮤지컬이나 연극 같은 걸 주로 보는 것 같아요. 이런 대답도 괜찮을까요?
네. 그런 것도 전부 수용하는 거라 상관없어요. 사실 풀 얘기를 듣다 보면 행사나 페스티벌에도 참석을 많이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것도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주 하는 활동.
페스티벌도 많이 가려고 최근에 시도해 보고 있는 것 중의 하나예요.
제가 러닝 크루 하면서 봤던 풀의 모습은 사회적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그런 이야기를 많이 접하고 사는 것처럼 보였었거든요. 그거랑 관련해서 하는 활동 중에 페스티벌도 있는 걸까요?
그렇죠. 사람들이 모인 안전한 공간에 가는 거를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하고요, 좋아하는 편이기도 해서 비건 페스타나 퀴어 문화 축제 같은 것들은 즐기려고 자주 가는 편인 것 같아요.
그럼 만약 풀이 작품을 할 수 있다면 어떤 내용으로 만들어 볼 것 같나요? 혹은 시위나 행사, 페스티벌처럼 풀의 의견을 세상에 전달할 기회가 온다면 어떤 메세지를 전달해 보고 싶나요?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가 보지 못한 존재들의 이야기? 예를 들면 노동자 쪽에서도 청소 노동자처럼 열심히 일하고 계시지만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잖아요. 성소수자도 비슷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수 있는 걸 해보고 싶어요. ‘내 일상에도 저런 사람들이 있었나?’하고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은 것 같아요.
항상 생각하는 작품의 방향성 중 하나가 ‘소수자들의 이야기’이다. 예술만큼 대중성을 탈 수 있는 분야가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시야를 넓혀주면 어떨까? 풀과의 인터뷰는 이와 같은 아이디어의 향연이었다.
풀의 예술세계는 자수와 같이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이다. 생전 거의 접해보지 못한 분야인데, 풀이 그 분야로써 표현하고 싶은 건 나와 비슷한 ‘다양함’이었다.
생각해 보면 ‘대중성’은 언제나 내게 부담이자 숙제였다. ‘대중성’을 타자니 내가 하고 싶은 ‘소수자’와 ‘다양성’의 의미가 쉽게 퇴색되곤 했다. 작가로서의 줏대와 작품으로서의 매력을 둘 다 잡기는 쉽지 않았다. 어떤 의무감이었던 것도 같다.
풀과의 인터뷰는 공감이었다. ‘나도 저런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어쩌면 풀과의 인터뷰는 내게 ‘대중성이나 의무감이 아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시 깨우치게 되는 시간이었다.
자동문
자동문의 취미는 어떤 건가요?
모형이랑 그림을 좋아합니다.
자동문에게 모형이랑 그림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것 같은데, 뭔가 만드는 걸 자주 하시는 건가요?
네. 대부분은 종이만으로 만들죠.
그럼 자동문이 모형과 그림 같은 시각 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기가 언제인가요?
모형의 경우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계속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림도 솔직히 엉터리 그림이라고 하면 7살쯤부터 계속 그려오긴 했는데, 그땐 도저히 그림이라고 불러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어요.(웃음) 그래서 제대로 된 그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 그린 시기는 작년입니다.
자동문의 모형 작품 ‘지하철’
그것들을 취미로 갖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모형은 어릴 때부터 제가 주변에서 보고 느낀 걸 작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림은 그림을 잘 그리는 분들을 동경해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잘 그리는 분들 그림을 보면 ‘아 나도 잘 그리고 싶다.’ 이런 생각이 마구 들거든요.
모형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모형의 매력은 세상을 작게 볼 수 있다고 할까요? 내가 갖고 싶은 거를 나만의 작은 사이즈로 가질 수 있는 게 제일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군요. 제가 본 자동문은 모형, 건축, 건축 철학에 관심이 많아 보였는데 건축 모형을 만들어 본다면 어떤 혹은 누구를 위한 건축물을 만들어 보고 싶나요?
항공기가 무거운 사람이 탄다고 요금을 더 받지는 않잖아요. 사회에서의 혜택을 제공받기 힘든 개체, 어떻게 보면 약자겠죠.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영상을 많이 보다 보니까 이런 사회적 소수자들이 아무래도 생각나는 것 같아요.
장애인 이동권 관련 영상은 어떤 영상일까요?
제가 자주 보는 건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 연대 영상’이에요. 전에 지하철 지연으로 굉장히 말이 많았잖아요. 그분들이 이동권을 주장하기 위해 열차를 멈춰 세우고, 일부러 지연을 시켰던 방식이 그렇게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기는 해요. 그것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일반 시민들도 있고. 그런데 그걸 알아주지 않으니까 계속 그렇게 얘기가 나오는 거잖아요. 과연 저들이 잘못되기만 한 건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걸 보면서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그 시위의 불법적인 내용만을 다루지, 사람들이 외치는 진짜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굉장히 안타깝게 느껴졌어요.
그럼 그런 것을 다 아우르고 포용할 수 있는 건축물에 관심이 많으신 건가요?
네. 실제로 제가 예전에 다니던 학교도 엘리베이터가 아예 없는 4층짜리 건물이었거든요. 그때 선생님이 ‘우리 학교는 장애인을 정말 배려하지 않는 학교구나.’라고 하셨던 기억이 있어요. 그 영향도 살짝은 있는 것 같아요.
자동문은 장애인 혹은 사회적 소수자 이야기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도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철학 같은 게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되는 매체가 있을까요?
뉴스를 많이 보기는 합니다. 신문도 조금씩 보긴 하는데 뉴스가 편하다 보니 더 자주 보는 것 같아요.
그럼 자동문이 작품을 만들게 된다면 자동문만의 어떤 철학을 담고 싶을지 궁금하네요.
저는 사람들이 ‘이런 건물도 점점 많아지고 있구나.’ 이런 걸 느끼면 좋겠어요. 집에서 못 나오는 장애인들도 있잖아요. 항상 집에만 있는 것도 힘들고, 마을버스는 아직도 대부분의 장애인이 탈 수 없는 버스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 문제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해봤던 것 같아요. 또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에 웹툰이나 만화 같은 형식으로 전쟁에 대한 얘기를 쓰고 있어요.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내용이라든가. 그냥 역사 속에서 사라져가는 분들을 다양하게 기록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되게 좋은 것 같네요. 작품적으로도 메세지적으로도. 웹툰이나 만화 형식에 관심이 있는 건, 웹툰이나 만화를 많이 보셔서 그런 건가요? 요즘 꽂힌 웹툰이 있을까요?
웹툰을 의외로 많이 봅니다. 조금 깊은 내용을 담는 스토리 위주로 많이 보는데, 가끔씩 사이다스러운 내용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도 있어요. 제가 레진코믹스에서 봤던 것 중에는 [여우비 내리는 날에]라는 작품이 있거든요. 그 작품 그림체가 상당히 좋았어요. 그냥 좀 잔잔한 로맨스물이라고 해야 할까요? 잔잔하면서도 진지한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네이버 웹툰 중에는 [내가 죽기로 결심한 것은]을 재밌게 보고 있어요. 재밌다기보단 슬프지만.
그럼 각 작품의 매력은 진지하고 딥한 스토리일까요?
네. 좀 정적인 느낌이 흐르는 작품들이죠.
자동문과의 인터뷰엔 자동문의 취향이 잔뜩 묻어있다. 자동문의 철학, 작품 취향 등이 보인다. 자동문과 대화하다 보면 아직 사회의 나아지지 않은 점이 실감된다. 아직도 차별이 만연히 남아있지만 들춰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 자극적인 것들 속에서 잊혀지고 있는 중요한 이야기들. 그런 것들의 중요함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또, 항상 ‘웹툰은 재미가 다야!’라고 생각하던 사람으로서 자동문의 취향은 놀람이자 반가움이었다. 재미를 잡으면 진지한 이야기를 담을 수 없어서 힘들었는데, 세상에 다양한 작품과 다양한 독자가 있듯 나도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제이
예술작품이나 콘텐츠를 즐기는 취미가 있으신가요?
근데 대체로 모든 면에서 얇고 넓게 즐기는 편이라 막상 ‘예술작품 뭐 좋아해?’ 했을 때 딱 나오진 않는 것 같아요. 전시 관람하는 건 좋아합니다. 요즘은 바빠서 자주 가진 못하는데, 예전에 시간이 많았을 때는 자주 보러 갔었어요.
처음 주셨던 사전 질문지에는 ‘예술작품을 좋아하시나요?’가 첫 질문이었는데, 그 질문을 보고 특정 작품 이름을 대야 할 것 같아서 멈칫하는 감이 있었어요. 근데 당연하게도 잘 만든 물건이나 디테일이 살아있는 샵이나 공간들도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생각하면 많은 예술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바빠서 전시를 가지 못한다고 했는데, 즐기고 있는 다른 취미는 무엇인가요?
아까 마침 콘텐츠에 대한 얘기를 해주셔서 생각이 났는데, ‘모빌스 그룹’이라는 곳의 ‘모베러웍스’라는 브랜드가 있어요. 여기서 이 모빌스 그룹에서 활동하는 ‘모춘’을 메인 출연자로 운영하는 ‘모tv’라는 유튜브 채널을 하나 해요. 거기 콘텐츠 즐겨보는 것 같아요.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요?
모빌스 그룹의 창업자분들이 퇴사 후로 모빌스 그룹과 모베러웍스를 만들고, 모베러웍스에서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 등을 다양하게 다루는 채널이에요. 뭐랄까 좋아하는 브랜드의 뒷이야기를 볼 수 있는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브랜드 제작에 관심 있는 사람으로서도 소위 말하는 ‘잘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브랜드 제작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나 관심 있어!’라고 당당하게 얘기하진 못하겠는데, 그런 인테리어 소품이나 문구류나, 어떤 디자인 결과물을 내는 브랜드들을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 제작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 브랜드나 전시, 유튜브 콘텐츠 무엇이 됐든 제이만의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떤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나요?
디테일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일상도 그렇고 제 삶도 그렇고, 공간을 가도 그렇고 물건을 봐도 그렇고 작은 디테일에 감동을 받는 사람이거든요. 디테일들을 잘 챙기면 어떤 식으로 봐도 재밌어진다고 생각해서, 디테일을 잘 챙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최근에 작은 디테일에 감동을 받았던 경험이 있을까요?
모tv 콘텐츠 중에 ‘인센스 챔버’랑 애쉬 트레이? 도자기? 이런 걸 만드는 영상이 있었거든요. 본체를 제작하고, 포장재를 선택을 하는 과정이 다 담겨있는 영상이에요. 소위 저희가 말하는 ‘뽁뽁이’까지요. 그런 작고 툭하면 버려지는 것까지 신경 써서 작업을 하는 디테일이 재밌었던 것 같아요.
제이가 말한 만드는 거나 그런걸 즐기는 데 흥미를 가지게 된 이유는 뭘까요?
일단 주변 환경 영향이 분명 있었을 것 같고요, 본능적인 게 큰 것 같아요. 주변 환경의 경우엔 부모님도 그런 것에 관심이 있으시고, 관련업에 종사하시기도 해서 보고 자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본능적인 건 말 그대로 본능적인 건데, 물건을 보거나 공간을 가거나 작품을 보거나 노래를 듣거나 그럴 때 본능적으로 딱 꽂히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설명하기 되게 어려운? 그리고 이거를 ‘본능적이야’ 외에 다른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면 변질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서, 본능적이다 라고 밖에 말씀을 못 드릴 것 같아요. 그냥 뭔가, 본능적으로 ‘와’ 하게 되는 것들?
본능적인 것도 주변 환경 영향이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
맞아요. 자연스럽게 쌓인 것 같아서요.
이건 아까 전시를 자주 보신다 해서 떠오른 건데, 전시관을 볼 때는 어떤 류의 전시를 많이 보시나요?
저는 진짜 그냥 다양하게 다녔거든요. 좋아하는 작가 혹은 좋아하는 사람이 참여를 했다면 갔던 것 같고, 아니면 제가 관심 있는 분야다! 하면 갔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한창 타투에 관심이 있을 때가 있었는데, 당시에 마침 타투이스트들이 협업해서 열었던 전시가 있었어요. 그런 것처럼 관심 있는 분야 따라서도 가는 것 같고, 좋아하는 사람 따라서도 가는 것 같고, 특별히 어느 한 분야를 보러 간다는 건 또 없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사람의 전시를 보러 간다고 말했는데, 제이는 어떤 사람에게 빠지게 되는 것 같나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거를 하는 사람들?
아까 모티비도 비슷한 느낌이겠네요?
네. 그런 것도 있고, 그냥 제 기준에서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잘’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이의 인터뷰에선 섣부르게도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제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러고 보면 나도 저런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이가 디자인적으로 다재다능한 면에서 관심을 보이고, 그것들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이 왜인지 내게도 해당하는 이유는 뭘까. 나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말을 잘하는 사람, 사람의 심리와 관련해 ‘배울 점’이 있는 것에 관심이 많다. 분야는 다르지만 어떻게 보면 ‘배움에 대한 열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함부로 추측해 본다.
‘장인 정신’에 환호를 보내는 마음. ‘퀄리티’에 혼신을 다하는 프로. 제이가 언급한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고 신경 쓴 작품. 이런 것들이 우리들에게 어떠한 ‘만족’을 준다면 이 또한 내가 배울 점이 될 듯하다. 우리는 누구나 멋진 이들을 좋아하고 동경하면서 사니까.
러닝 크루 죽돌들을 인터뷰한 이유는 하나였다. 아직 서로에 대해 많은 걸 알진 못하지만, 생각이 깊고 진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 중인 청소년이란 공통점 때문이었다. 그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인터뷰를 하면서 사소하게 나와 닮은 부분을 발견하곤 했다. 비슷한 관심사 속에 크고 작은 다른 점들이 모여 서로를 개개인으로 만드는 걸 느꼈다. 이렇게 주변의 개개인을 인터뷰하고 나니,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일지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만의 색깔은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이제는 나에게 인터뷰 질문을 던질 시간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님에도 시간 내서 인터뷰에 응해준 러닝 크루 동료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우리 모두 각자의 진로 고민이 이번 인터뷰로 가까워졌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