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 Z ! 오늘은 나의 긴 소비인생 중 유난히 특이하고 특별했던 때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아이돌에 푹 빠져 세상 모르고 돈을 쓰기만 하던 2017년, 대안학교에 진학하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배우고 경험하기 위해 소비했던 2018년, 하나의 목표를 위해 돈을 모으고 있는 현재 2020년.
어쩌면 Z와 닮아 있을 수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른 모습일 수도 있는 나의 이야기를 보면서 Z도 지난 시간들을 되짚어보고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미운의 2017~2020년 경제생활 그래프
[2017년] 과소비로운 덕질생활
#덕질 #과소비 #과몰입
나는 여지껏 19년의 인생을 살면서 덕질, 그러니까 무언가의 팬이 되는 행위를 쉬지 않았어. 대상과 장르를 셀 수 없이 바꿔가며 대가 없이 시간과 마음을 쏟는 일을 해 온 거지. 그 중 2017년은 유독 나의 팬심이 크게 차오른 시기였어. 이전까지 나는 다양한 무언가들을 좋아하면서 절대 돈을 쓰지 않았어. 그들의 작품을 통해 행복을 만끽하고 사진과 영상을 저장해 틈이 날 때마다 보고. 그게 내가 하는 덕질의 최대치였어. 어디서 어떻게 돈을 써야하는지도 몰랐고, 그렇게 쓰여지는 돈의 의미도 전혀 알지 못했지.
그런 의미에서 16~17년 덕질은 정말 남달랐어. 내가 처음으로 아이돌 그룹의 앨범을 사기 시작한거야! 아이돌 덕질은 정말 여차하면 돈이 나가는 구조임에도 여태껏 꿋꿋이 버텨왔던 나는 결국 종류도 많은 앨범들을 전부 샀어. 그간 모아둔 용돈으로 말이야. 17년도 겨울엔 처음 내 돈을 주고 아이돌을 보러 갔어. 팬미팅이 진행되는 동안 얼굴도 안보이는 아주 먼 곳에서 소리만 질렀어. 그런데도 있지, 내가 동경하는 아이돌과 한 자리에서 함께 소리지르고 노래 부르는 기분을 느끼고 나니 정말 겉잡을 수 없이 그 아이돌에 대한 마음이 커지더라. 그때부터 나는 굿즈를 사 모으기 시작했어. 전시회도 다녔어. 아이돌의 사진을 한 공간에 가득 채워 전시하는 팬문화가 있는데, 입장료와 전시 굿즈를 위해서도 돈을 적지 않게 썼지. 그 해 여름엔 처음으로 단독 콘서트에 갔어. 콘서트 티켓의 가격은 보통 10만원을 웃도는 편인데 그것도 삼일씩 해서 삼일 가면 30만원이야. 난 이틀치 콘서트를 다녀왔어. 아침부터 콘서트 장에 친구들을 만나 밥을 먹고, 또 굿즈를 사고. 티켓값은 20만원이지만 아마 그 이틀동안 내가 쓴 돈은 50만원이 넘을거야.
정말 놀라운 일이야. 어릴적부터 나는 돈 쓰는 일을 굉장히 무서워했거든. 그런데 그 아이돌이라면 고민도 없이 결제를 하고, 며칠 사이에 50만원을 그냥 써버린다니. 엄마도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는데 결국엔 뭔가에 미쳐보는 것도 중요하다며 나를 내버려뒀어. 그래, 정말 미쳐있었던 것 같아. ‘내 인생 너네한테 다 걸어!!’라고 생각할만큼 그 그룹에 과몰입해있었어. 그 아이돌에 대한 마음이 확 식어버렸을 때는 그렇게 써버린 돈이 너무나 아까워서 화가 났었어. 무턱대고 쓴 돈은 이젠 사랑하지 않는 것들의 흔적으로만 남아버렸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소비가 아주 특별하게 기억돼. 하나하나 꺼내보면 전부 나름의 추억이 있는 굿즈들을 산 것도, 비를 맞으며 환호하고 방방 뛰던 콘서트도 나에겐 너무 소중한 경험인거지. 그 때 이후로 다신 덕질에 돈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던 나는 요즘 또 x터파크, x스24를 둘러보고 있어. 아, 그 마음이 다시 솟아나 버리고 있는거야!
[2018년] 대안학교에서 살아남기
#기숙사형대안학교 #티끌모아_태산 #적자
17살이 되면서 나는 대안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지금 살고있는 곳에서 3시간 거리의 경상도 지역으로 거취를 옮겼어. 대안학교는 학교 특성상 학비가 좀 많이 들어. 특히 기숙사 생활을 하면 더욱 그렇지. 다행히 내가 다니던 학교는 인가를 받은 학교라 대안학교들 중에서는 학비가 적은 편이었어. 그래도 고정적으로 드는 돈과 불가피하게 쓰여지는 돈들을 생각하면 결코 만만한 금액은 아니었지. 학비자체는 부모님이 지원을 해주셨으니 내 돈은 생필품을 사는 데나 밖에 나가 놀 때 쓰는 것이 대부분이었어. 용돈으로 한달에 10만원을 받았지만 돈이 모자랄 때는 다음 용돈을 당겨 쓰거나 내가 모아놓은 돈을 썼어. 사실 큰 돈을 쓸 일은 거의 없었어. 그렇지만 작게 나가는 돈이 아주 많았지. 기숙사에서 먹을 간식거리를 잔뜩 사거나 기숙사 생활이 따분해질 때마다 시내에 나가서 친구들과 맛있는거 먹고 놀거나. 가끔은 동아리 회비도 내고, 제빵 동아리에서 파는 빵도 사먹고.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무서운 줄 모르고 조금씩 돈을 쓰다보면 통장은 어느새 텅텅 비어버리고 말았어.
2019년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는 내가 사는 마을에서 나에게 장학금을 줬어. 한 학기에 백만원이라는 큰 돈이었지. 그 돈을 나는 노트북을 사는데에 썼어. 아주 오랫동안 써왔던 낡고 무거운 노트북으로는 내가 계획한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백만원 가까이 되는 돈을 들여 중고 노트북을 샀어. 그 노트북으로는 책 제작 작업을 했어. 자신이 하고 싶은 주제를 한 학기동안 연구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프로젝트 수업이 있었는데, 그걸로 난 내 시집을 만들기로 했거든.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기도 했고 당시 시를 많이 쓰고 있기도 했었어. 사진을 찍고, 시를 읽고 쓰고, 책 디자인을 편집하여 모든 과정을 나 스스로 한 책을 만들었어. 그 과정에도 돈을 들였지. 필요한 자료를 사고 제본을 하고. 책을 팔긴 했어도 확실한건 큰 적자가 났다는 거야.
사실 대안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내가 쓴 돈보다 부모님이 나를 위해 쓴 돈이 더 중요하고 커. 제주도보를 위한 경비와 해외 이동학습을 위한 경비, 축제 준비 비용이나 기숙사 수리비까지. 끝도 없이 학비를 지원해주셨지.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위한 돈인만큼 그로 인해 내가 얻은 경험과 기억들은 정말 잊지 못할 반짝이고 중요한 순간들이야.
[2020년] 독립을 위하여!
#독립 #수입 #청소년과_돈
2020년, 지금 현재의 나야. 학교를 자퇴하고 처음 새해를 맞은 나는 ‘20살이 되는 해(2021년) 독립’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2020년을 살아가고 있어. 난 여건만 된다면 이 외지고 답답한 시골마을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을 항상 품고 있었거든. 마침 자퇴도 했겠다, 차근차근 준비하면 못 할게 뭐있나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 연초 새해와 명절을 맞으며 어른들에게 용돈이나 세뱃돈을 받았어. 이전의 나는 그런 돈이 생기면 어디로 나가는지도 모르게 써버리곤 했는데 올해는 최대한 그 돈들을 꽉 붙잡아 두고 있어. 또 올해는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경험을 했어. 음악 공연을 해서 페이를 받은거야. 교통비와 식비를 빼면 거의 남지도 않는 작은 돈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이었어.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게 되면서도 작은 수익들이 생겼어. 사회적 거리두기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원고비를 받기도 하고, 오빠의 농사일을 도와주면서 소소한 일당을 받기도 해. 아빠는 대신 수령한 내 재난지원금을 맘대로 쓸 수 있게 계좌에 넣어줬어. 반면에 집에만 있다보니 외출할 일도, 약속도 잘 없어서 소비는 거의 없어.
솔직히 말하자면 2021년 완벽한 경제적 독립을 하는건 어렵다는걸 알고 있어. 게다가 어떻게 살아갈 건지 계획을 짜 놓은 것도 아니라서 견적을 내보기도 힘들지. 만약 갑작스럽게 여행이 가고 싶어지면 모은 돈을 깨서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릴지도 몰라. 오래된 내 핸드폰을 무작정 바꿔버릴 수도 있어. 다만 ‘독립’이라는 추상적 목표를 정해놓는 것 만으로도 돈에 대한 생각이나 개념이 많이 달라지긴 하더라. 돈을 쓰는 즐거움보다 모으는 즐거움을 더 크게 느끼고, 노동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더 많이 짚어보게 돼.
청소년, 특히 나같은 십대들은 학업이나 나이로 인해 수입을 얻기가 참 어려워. 학교를 자퇴하고 나서도 미성년자라서, 고등학교 졸업을 못했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도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 하지만 나와 우리는 언젠가 성년이 되고 또 언젠가는 나를 책임지며 살아가야 해. 돈 버는 일을 원하지 않아도 우리의 삶은 모두 돈과 연결되어 있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 이것이 나의 인생 목표이자 꿈이라 나는 요즘 열심히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러. 아직은 나의 노래를 듣는 사람이 없고 아는 사람도 없지만 누군가 나의 음악을 사랑해줄 언젠가를 위해서 말이야. 어릴적부터 돈이 무서웠고 어려웠어. 그 가치나 단위를 모르면서도 두려워했어. 성년을 앞둔 지금은 내가 돈에게 지지 않을 방법을 모색중이야. 내가 돈에게 이용되지 않고 내가 돈을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 역시 마찬가지고.
Z! 인생에서 아주 소중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을 너는 돈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사용하고 있어? 습관처럼, 혹은 계획처럼 쓰이는 돈들이 대개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고 특색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어? 청소년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돈과 더 가까워지고 돈에 대해 행복한 생각들을 할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 해보고 생각해볼 수 있길 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