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하자센터 본관 1층에 들어서면 보이는 작은 공간에 쓰레기가 실험 재료가 되는 어린이 작업실, ‘FROG LAB (청개구리 작업실)’이 만들어졌습니다. 겨울의 휴식기를 지내고 3월부터 본격적으로 오픈한 청개구리 작업실은 어떤 배경과 생각에서 탄생되었는지, 그간 어떤 발견이 있었는지 전해보려 합니다.
1. FROG LAB이 만들어지기까지
FROG LAB은 앞으로의 세계를 살아갈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감각과 관점 그리고 환경을 고민하며, 여러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어 만들었습니다. 버려진 재료들이 ‘살아있는 매체’로 전환되어, 어린이들이 다양한 소재를 관찰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다루며 궁리하는 일에 사용되길 바라면서요. 그렇게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놀이와 작업의 힘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하는 모토를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소재 디렉팅은 져스트 프로젝트(JUST PROJECT), 어린이 콘텐츠 개발은 페이퍼풀즈(paperpools), 공간 및 브랜딩은 마음스튜디오(maum studio)에서 파트너로 함께 하였습니다.
‘청개구리들’에 대한 신뢰의 공간
FROG LAB의 가장 큰 탄생 배경에는 지난 6년간 하자센터가 한국암웨이의 후원으로 진행한 어린이창의교육사업 ‘생각하는 청개구리’가 있습니다. 놀이터, 클래스, 작업장, 캠프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서 어린이의 놀이력, 작업력은 이미 수백번이고 확인이 된 상태였지요. 스스로, 또 함께 놀며 성장하는 힘을 가진 어린이 시민들을 만나게 해준 ‘생각하는 청개구리’ 사업을 마무리하면서, 그 유산으로 하자에서 자주 빈 시간을 보내는 동네 단골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창의적 공간을 남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까지 보아 온 것처럼 ‘놀이력 충만한 어린이들이 있다면’ 즐거운 공간이 될 것은 분명했으니까요. 그래서 ‘청개구리’라는 기존의 브랜드를 없애지 않고 변주시켜 다시 살려내는 방식을 택한 것이, 새롭게 장난기 가득한 로고로 탄생한 ‘FROG LAB’의 아이덴티티입니다.
하자의 리사이클 문화
수많은 어린이 공간 중에 왜 버려진 소재, 리사이클 소재를 활용하는 작업실을 만들게 되었는지는 하자의 발자취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미 10여년전, 일상의 버려지는 소재를 재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기업들을 키워낸 경험이 있고, 폐목재와 자전거를 되살리는 리사이클 공방은 지금까지도 청소년을 비롯한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하자가 펼쳤던 팝업 놀이터 역시 환경적 요소에 무감각하지 않은 소재와 방식을 장려해왔지요. 플라스틱을 비롯한 쓰레기 문제가 점차 날선 이슈가 되어가는 오늘날, 미래를 살아갈 어린이들의 작업에 버려진 물건과 소재를 연결시키는 일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습니다.
재료에 대한 영감을 주는 지역적 맥락
영등포 시장과 청과물 시장, 문래 철공소 등을 주변에 둔 하자의 위치는 생산, 그리고 생산물, 재료와 소재에 대한 영감을 주는 곳들로 가득합니다. 이런 흥미로운 지역적 맥락을 살려, 영등포의 다양한 생산 부속물, 재료들이 하자에서 재활용되는 폭이 확장되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이제까지 근처의 자동차 매장에서 버려지는 파렛트를 수거하여 하자 목공방에서 사용해왔던 것처럼요.
파렛트 수거 중인 청개구리 작업장 어린이들
이탈리아의 ‘레지오 에밀리아(Reggio Emilia)’ 시에는 200여곳의 로컬 업체가 제공하는 버려진 소재들을 교육 재료로 가공하고 전환하는 ‘레미다(REMIDA) 센터’가 있습니다. 시 전역의 (혹은 그 너머의) 영유아, 어린이 교육기관에서 리사이클 소재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아뜰리에를 열기도 하는데요, 지역 전체가 그런 시스템을 갖추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큰 영감이 됩니다. FROG LAB에서는 현재 져스트 프로젝트가 선별한 60여종의 리사이클 소재들이 서울 전역에서 도착해있습니다. 하자에서 접근이 용이한 거리의 로컬 업체/기관과의 협력도 앞으로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실험실(LAB)’으로서의 정체성
작업실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어린이들의 움직임에 비해 공간이 협소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활동의 영역은 다른 공간으로 분리하여, 소재를 보여주는 전시형 공간으로만 활용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논의 끝에, 작더라도 어린이들의 탐색, 장난, 시도와 실패, 작업의 활동이 일어나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실험실(LAB)’이라는 이름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흡사 실험실과 같은 흰 조명 아래, 알록달록한 소재들이 눈에 잘 보일 수 있도록 흰 바탕의 공간을 조성하고, 소재 연구원이 되는 마음가짐으로의 전환을 돕는 실험 가운을 준비했습니다. 한 가지 포인트는, 져스트 프로젝트가 제작한 공간의 시그니처 소재 또한 ‘실험의 결과물’이라는 것인데요, 아름다운 마블링의 소재는 비료포대, 비닐하우스였던 LLDPE라는 경질의 플라스틱을 녹인 후 압축한 소재로 어린이들이 아주 좋아하고, 자주 질문하는 소재입니다.
프로그랩 시그니처 소재
공간을 연 이후, 어린이들의 작업과정을 보며 ‘LAB’이라고 이름 붙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머릿속에 상상하던 ‘실험’이라는 과정이 실제 어떻게 구현이 되는지 자세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어린이들의 실험은 ‘팅커링(tinkering)’이라고 불리우는 ‘놀이와 만들기의 중간 단계’의 작업이 많습니다. 탐색하며 가설을 세우고, 시도하고 실패하며, 경로를 재설정하고 목표를 수정하는 ‘빙- 둘러, 구불구불하게 가는 길’이지요.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 과정의 핵심은 ‘요리 조리 다루어 보며 궁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서로 다른 이종 혹은 다종 간의 결합이 발생하고요. 다음 글에서는 FROG LAB의 사례를 통해 이 과정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좀 더 상세히 풀어볼 예정입니다. 그 가운데 발견한 개방형 놀이에 대한 이야기도요. FROG LAB의 자세한 소식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frog_lab을 방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