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이사를 간다. 나의 초, 중, 고 시절을 보낸 집을 떠난다. 이 집에 산지 10년 째 되는 해였던 작년은 그 전과 확연히 다른, 특별한 해였다.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고 하자나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멋진 사람들을 만났고 이제는 케케묵은, 혹은 새로 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그리고 내가 가진 오래된 질문 중 하나는 ‘대학에 안가면 안 되나?’였다.
집 근처엔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가 있다. 지금은 그 학교에 동생이 다니고 있다. 초등학교에 갈 때면 이따금 그 때의 나는 어땠는지 떠올려보곤 한다. 시간이 흘렀지만 어떤 장면은 잊히지 않는다. 전학을 온 후 예전 집과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울던 날, 누군가에게 모진 말을 했던 사람의 표정, 혼자 운동장을 걸을 때 귓가에 스치던 바람소리, 꾀병을 부리고 방에 웅크리고 있었던 날 우리 집의 정적. 물론 즐거운 기억도 있지만 아픈 기억의 잔상은 더 선명하게 남는다. 그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작년에 고등학교 생활이 많이 생각났다. 네모난 교실과 마찬가지로 네모난 책상과 서류. 나도 그 네모난 규격에 맞춰 잘라내는 것 같은 무기력함. 나도 힘들고 친구들도 힘들어보였다. 그게 나의 아픔이었다. 1년을 보내면서 그게 여전히 나의, 우리의 아픔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가 겪은 것들을 함께 이야기 나누고 파헤쳐보고 싶었다. 하자의 여러 활동들이 도움이 되었지만 특히 10대 연구소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입시와 자기착취를 주제로 다른 분들과 함께 연구했다. 최종발표회까지 갔고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 어떤 분이 질문했다. “그럼 이 입시와 자기착취 속에서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정도의 질문이었다. 나는 대답하다가 울어버렸다. 내 경험들이 떠올라서 북받쳤다. 나는 입시 시스템이 잘못됐다고 말했지만 막상 시험에서 손 놓을 수 없었다. 대학을 가지 않는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입시가 우리 스스로를 착취하게 하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연구원분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고 나는 거기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비상식적인 상황을 견디고 있는 그들을 안타까워하고 위로할 뿐이었다. 나는 우리가 살아남아, 먼저 살아남아서 힘을 모아 바꿔야한다고 대답했다. 지금도 이 대답밖에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대답까지 온 것으로 새로운 질문을 해보려 한다.
10대 연구소 최종발표회 포스터
나는 비대학 청년이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비대학 청년으로 살면서 힘든 일도 많았다. 그러나 못지않게 마음 깊이 충분한 느낌을 듬뿍 받았다. 지난 1년의 가장 큰 수확을 꼽는다면 너무나 많지만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서 말 한 것이다. 계속 말했다. 다듬어서 얘기하다가 어쩔 땐 한이 서린 듯 토해내고, 어쩔 땐 분에 차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말이다. 비단 대학 얘기 뿐 아니라 뭐든 얘기했다. 이제는 다들 내 얘기가 지겹지 않을까 싶을 때쯤엔 나도 지겨워서 그만 말하고 싶었다. 내가 너무 과거에 얽매여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스스로가 미련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가감 없이 내 감정을 돌아보았고 원하는 것을 원한다고 했다. 그러고 나니까 나라는 사람을 진짜로 드러낸 기분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내가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 비대학을 선택했다. 나는 앞으로 그런 선택을 하기로 결심했다.
비대학 청년인 나나, 대학생인 내 친구들이나 열심히 살아야 겨우 살 길이 보일 듯 말 듯 하다. 열심히 사는 건 이제 기본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 와선 내가 그렇게 다른 길을 간 건가 싶다. 물론 대학이 기본이 된 사회에서 비대학인 내가 겪는 어려움은 분명히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내가 비대학을 선택했기 때문에 대학에 간 친구들을 비판하지 않는다. 비대학을 선택한 이유가 다르듯이 대학을 선택한 이유도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대학 안가면서 즐겁게 살고 싶고 구조에 순응하지 않고 내가 만들고 싶은 사회와 지키고 싶은 가치를 위해 가지 않겠다고 한다. 물론 등록금이 아깝고 걱정되고 수능공부를 다시 하기 싫어서 안(못)가는 이유도 있다. 그러나 못가는 것이든 안 가는 것이든 내 선택을 했고 거기에 만족한다. 만약 후에 내가 대학을 선택하더라도 내가 있는 자리에서 힘껏 목소리를 내고 싶다.
언젠가 “나무를 보면 나도 대학 안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때의 내가 했던 고민을 하고 있는 이였다. 내 말하기가, 표현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더 깊고 트인 시각으로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 때 내겐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에겐 내가 있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다른 길을 선택하는 사람의 존재는 상황을 훨씬 명민하게 보게 한다. 나는 지금도 그 존재들이 무척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지난 시간들을 거름 삼아 그 존재들을 찾아가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다.’ 새 집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 내 책은 책장에서 뱉어낸 듯 나와 있고 옷가지들이 흩어져있다. 내 청소년기와 어수선한 밤을 보내던 작은 방은 곧 텅 비워져 새 사람을 맞이할 것이다. 동생은 새 학교에서 새 학년을 맞을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집과 거리가 변하고 사람이 변하고 사회가 바뀐다. 스무 살에 대학을 가지 않으면 인생에 오점이라도 남긴 듯이 호들갑 떠는 사회도 바뀔 것이고, 사람을 못살게 구는 입시와 학교도 바뀔 것이다. 나는 바뀐다고 믿는다. 내가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나의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어떤 이의 말이 떠오른다. 비대학 1년, 잘 지냈다. 앞으로도 나의 세상을 바꿔보겠다. 잘 꾸려보겠다. 그게 누군가의 세상을 바꾸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