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우울함을 남들에게 드러내도 될까요? 친구가 저에게 속상한 일을 털어놓는 것은 상관 없는데 내가 괜히 우울한 것을 드러내서 이 친구가 부담을 갖거나 안좋은 영향을 받게 될까봐 걱정이 됩니다. 처음에는 남 탓으로 돌리다가 매번 상처받는 나를 보면서 상처에 무뎌지게 되었어요. 하지만 그러다가도 한 번에 무너지는 저를 보면서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나는 항상 주변 사람들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주 우울해하는 제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내 우울함을 남들에게 드러내도 될까요?"
고민 편지에 적힌 첫 문장이었습니다. 단 한 마디만으로도 글쓴이의 진심이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수 백 통의 편지를 읽으면서 수 백 개의 감정을 느꼈다고 해도 절대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타인의 감정이 꾸밈없이, 솔직하게 쓰여진 고민 편지를 읽는 일은 생각보다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하였습니다. 어떻게 그 숱한 감정을 안고 지내 온 건지,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전해줘야 할지 까마득했던 것도 여러 번이었고요. 솔직하고 귀여운 마음에 슬쩍 웃음이 번지기도 하였습니다. 위의 글처럼 나와 타인 간의 관계를 비롯하여 꿈, 진로, 취업, 연애 등 삶 속의 크고 작은 걱정들을 편지로 받게 되었고, 그 편지를 함께 읽고 익명의 답장을 보내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모든 것들이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우리는 또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지요. 그래서 이 편지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도록, 풍성한 답장으로 전해질 수 있도록 애썼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는, 작은 전시가 지난 2018년 12월 29일부터 2019년 1월 12일까지 하자 신관 2층 갤러리에서 열렸습니다. 장장 10개월에 걸쳐 주고 받은 편지들을 다시금 훑어보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그동안 손편지 쓰기 캠페인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하기도 했어요. ‘편지를 쓰는 일이 어떻게 자원 활동이예요?’ 그럴 때마다 이렇게 답하곤 했고요. ‘자발적으로 모인 우리가 하나의 문화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라고 말입니다. 굉장히 사소하고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무려 100명이 넘는 사람들과 300통이 넘는 편지들이 모였다면, 더욱 자신 있게 ‘문화를 만드는’ 이야기로 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릴레이 손편지 쓰기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손편지 고민 상담소’는 특히 자신의 고민 편지를 보내면서도 익명의 누군가에게 답장을 받게 되는 독특한 컨셉으로 진행되었어요.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는데, 이처럼 비유할 수 있었습니다. 어딘가 아픈 곳이 생겼을 때,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약을 먹는 것이 아니라 어릴 적 엄마 곁에 누워 ‘엄마 손은 약손’을 들으며 몸과 마음을 달래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아마도 누군가 명쾌한 해답을 알려주지는 않아도, 그저 어딘가에 툭 터놓고, 공감 받고 싶은 마음으로 적어 주셨을 거예요. 이렇게만 들으면 참 궁금하실텐데요, 크게 아쉬워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일상의 소소한 진심을 글로 전하는 문화, 손편지 쓰기 캠페인은 앞으로도 이어질테니, 혹 편지를 남기거나 받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꼭 찾아와주세요.
끝으로, 어설픈 글 솜씨로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말들은 아래 글로 대신해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떠한 양식의 삶이 옳은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
편지는 분노나 미움 보다는 애정과 배려에 더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늦은 답서를 할 것이다.
우리의 편지가 길게 이어질 것이다.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
:: 글_장수(10대 청소년때부터 하자와 연을 맺기 시작하여 파니, PM, 동아리원, 크루 갖가지의 이름으로 하자를 오가는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