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혜정 칼럼] 수컷들의 정치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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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은 트럼프의 손이 하얘지도록 힘을 주었다. 독단적이고 호전적인 수컷성과 그것을 참을 수 없어하는 수컷성의 6초간의 대결이었다. ‘이성애 부부 중심 정상 가족’ 개념을 고수하며 세 차례 결혼한 트럼프와 25살 연상의 선생님과 결혼해서 지속적 우정과 존경의 관계를 맺어가는 마크롱. 수컷들이 힘의 대결을 즐기면 그 사회는 도태된다.

 

가능한 한 남녀를 갈라서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건만 5월25일 나토 정상회의 때 트럼프와 마크롱의 악수 장면에서 ‘수컷들의 정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한 일본 아베 총리와 19초간 힘찬 악수를 했고 메르켈 독일 총리의 악수는 거절했다. 사전에 트럼프의 악수 방식을 ‘연구’했다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자기 쪽으로 당겨 유리한 자리를 만들고 손이 하얘지도록 힘을 주었다. 트럼프는 손을 풀려고 했지만 마크롱은 한 번 더 세차게 손을 흔들고서야 놔주었다. 독단적이고 호전적인 수컷성과 그것을 참을 수 없어하는 수컷성의 6초간의 대결이었다. 미국과 유럽의 대결일까? ‘이성애 부부 중심 정상 가족’ 개념을 고수하며 세 차례 결혼한 트럼프와 25살 연상의 선생님과 결혼해서 지속적인 우정과 존경의 관계를 맺어가는 마크롱, 이 두 남자의 행보가 궁금하다. 인류사를 통해 다음 세대를 낳고 키우는 영역에서 암컷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수컷들이 한 일은 가족을 아우르는 더욱 큰 공동체의 생존을 살피는 일이었다. 수컷들이 그것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힘의 대결을 즐기게 되면 그 사회는 도태된다. 크고 강한 것을 욕망하는 수컷들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회의 일주일 후 세계 195개국이 합의한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나는 파리가 아니라 피츠버그 시민들을 대표하기 위해 선출됐다”며 독자 노선을 선포했다. 이 선언은 ‘내 가족’을 돌보기 위해서는 지구를 돌봐야 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그의 무지의 소치이자 지난 70년간 세계 인재들을 끌어모아 군사, 과학기술, 경제발전을 주도하며 나름 안정된 세계 질서를 보장하고자 했던 ‘제국’으로서의 미국이 그 역할을 포기한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간 미국의 제국적 질서에 마냥 기대왔던 한국은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그 유아독존적 거대국가의 우산 아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다자 공존하는 유럽연합의 벨기에와 네덜란드처럼 플레이를 할 것인가? 현재 진행 중인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둘러싼 협상이 그 선택의 시작이 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대로 사드가 한국 방어용이라면 한국이 비용을 지불하고 설치나 관리 방식을 적극적으로 협의하면 된다. 그간의 관계를 근원적으로 바꾸어야 하는 일이지만 어쨌든 미국이 각자 알아서 살자고 천명하는 마당에 한국도 주변국과 상의해서 자신을 방어하는 새 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간 사드 관련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한국은 8조5천억원 손해를 보았다고 한다. 사드 네 대를 설치하고도 남는 비용이다. 외교 부재가 초래한 엄청난 손실이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공론화와 국회 동의 절차, 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치겠다며 일단 조정에 나섰다. 이런 국내 절차를 거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제대로 지역 거버넌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단독방어 관리체계에서 벗어나 중국과 한국, 미국, 러시아 등 당사국들이 모인 지역 단위의 다자위원회가 구성되고 제대로 작동되는 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미세먼지와 황사 문제도 그런 시스템을 구성할 때 해결 가능하다. 민족적 반감을 부추기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 다각적, 다층적인 차원의 동아시아 차원 위원회를 구성하고 자발적 시민들과 전문가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해결책을 찾아나서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광화문 시민혁명 이후 시민들과 정부가 협력해서 놀라운 일을 벌이고 있다. 지난 5월27일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미세먼지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시민 3천명이 참가하는 초대형 원탁회의가 열렸다. 내년에는 동아시아의 주민들이 함께하는 자리로 만들면 어떨까? ‘성숙해진 실세, 386 전성시대’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으면서 갑자기 이 ‘실세’들이 그런 자리를 만들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된다. 그들이 글로벌 시민 감각을 키운 ‘포스트 386’ 후배들, 그리고 좀 다른 감수성과 시각을 가진 여성들을 논의 테이블에 초대한다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하겠다고 선언한바, 투명하고 공평한 정치, 서로의 약함과 부족함을 채워가는 살림의 정치를 보고 싶다. 정치의 기본은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이며 정치인의 자리는 지혜와 존경과 명예의 자리이다.

 

2017.06.06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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